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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갸리 Oct 11. 2017

말의 품격 [이기주]

꼭 소장하고 싶은 책!

말의 품격 [이기주]                    


페이지 38 / 경청

경청 / 상대는 당신의 입이 아니라 귀를 원한다.

자신의 서재이자 집무실이었던 '운주당'의 문을 활짝 열어 마을 사람들 누구나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게 한 이순신. 1591년 전라좌수사로 임명돼 여수로 온 이순신. 그에겐 왜적을 물리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부임한 마을의 사정을 깊이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에 힘을 써야 했고,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든 자신의 서재에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수 앞바다는 어떻고 물길이 센 곳이 어느 곳인지에 관해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경청이라 한다면, 경청은 관심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자신이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새겨듣기가 힘들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 서너 명과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도 서로의 말이 겹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난다. 누군가 먼저 말을 시작하면 그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소리들이 끼어든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까먹기 전에 무조건 말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강력하게 내뱉는다. 말이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것 이거늘 듣는 귀는 닫아버린 채 자신의 말만 하게 된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남의 말을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지금 바로 말하지 않으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말하고 싶어도 서너 명이 대화를 하는 공간은 내 순서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말을 적게 한다고 해서 손해 볼 일도 아닌데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기분. 그래서 귀보다 입이 먼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귓속으로 다 들어오기 전엔 입이 움직이는 일이 없었던 것 같다. 상대방이 가슴으로 퍼 올린 말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려면 '관심'밖에는 없다.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된다.

웹툰 작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니 스스로 듣는 귀가 익숙해졌다. 가슴에서 울어 나오는 그들의 말을 내 가슴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슬픈 가족사의 이야기에 같이 눈물이 글썽이는 경험은 내 귀를 상대방에게 열어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상대방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잠시 입은 닫아두는 것이 현명하다. 

      


페이지 43 / 공감

공감 / 당신의 아픔은 곧 내 아픔

공감은 내가 상대방이 경험한 것을 겪어보지 않은 이상 공감하기 어렵다. 무심코 "나도 네 말에 공감해."라는 말을 쉽게 하곤 한다. 나 자신은 실제로 공감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동의한다는 '습관성 공감'은 주위에서도 많이 겪는다. 나는 청년기에 병원에서 1년을 지낸 적이 있다. 그 기간 큰 수술을 세 번이나 했고, 병원이 내 집처럼 편했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과 후, 나의 내면에 일어난 큰 변화에 놀랐던 적이 있다. 내가 아프기 전에는 다친 사람이나 아픈 사람을 보더라도 별다른 감응이 없었다. 그런데 내 몸이 아프고 수술대에 오르고 병원에서 오랜 시간 지내면서 아픈 사람들을 보면 내가 아픈 느낌을 들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이런 것이 공감이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는 감정은 정말로 나 자신이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공감은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닐까. 


페이지 56 / 반응

반응 / 대화의 물길을 돌리는 행동

마흔여섯 인생살이에 근심과 답답함은 산처럼 쌓여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쌓이고 쌓인 근심거리를 누구한테 풀어놓은 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나오는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더라면 내 상처의 모서리도 둥글게 다듬어졌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근심과 걱정거리가 있는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되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나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용기가 없어서 일까. 그래서 내 상처는 더 뾰족하게 날카로워지는 것일 수도.

 


페이지 86 / 침묵

침묵 / 때로는 말도 쉼이 필요하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게 말이 길어진다는 것이다. 중언부언. 했던 말을 또다시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에 취하면 그 기운을 빌려 했던 말을 또 하고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부류는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맨정신에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비슷한 말만 열거하는 사람의 말은 참고 듣기가 힘들다. 짧게 끝낼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뜨려 듣는 이의 인내를 요구한다. 내 경우도 말은 하면 할수록 실수가 잦아진다는 것을 느낀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다. 업무에 필요한 말만 하면 된다. 필요 이상으로 말을 이어가면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 종종 생긴다. 그 넘친 말은 결국 뾰족한 창끝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오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회사에서의 침묵은 나에겐 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긍정 / 말은 종종 현실과 공명한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리게만 보이는 딸이 아침 식탁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는 왜 그렇게 말해!" "말이 씨가 된단 말이야!" 


아침밥을 깨작깨작 먹는 딸내미에게 "뭔가 또 싫어하는 게 들어있군!" "안 먹는 거 보니" 내가 내뱉은 말은 편식하는 딸내미의 모습이 싫어서 비꼬는 듯한 억양의 한마디였다. 나의 말이 억울한 듯 딸내미는 울먹이며 대꾸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재료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먹고 싶지 않을 뿐. "아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음식에 내가 싫어하는 게 들어있는 것 같잖아" 나의 말 때문에 더 안 먹게 된다는 투정을 부린다. 생각해보면 내 입에서 나간 말도 살가운 말투가 아니었다. 이제는 딸도 그런 날카로운 말을 곱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성이 생겼다는 현실에 약간 놀랐다. 아주 사소한 아침 식탁에서 벌어진 대화에서조차도 말속에 어떤 기운을 집어넣느냐에 따라 상황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흐른다. 어린 딸에게서 말이 현실과 공명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아침 식탁이었다.


페이지 141 / 언행

언행 /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

뉴욕 시장 줄리아니의 행동은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나보고 물러나라고요? 난 괜찮아요. 일단 사람들을 북쪽으로 대피시켜요! 북쪽 길부터 뚫어요!"

줄리아니 시장이 외친 말에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세월호 사건'이다. 이 두 건의 사고는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사건이다. 세월호가 바다에 빠졌을 때 우리에겐 줄리아니가 없었다. 리더로서 말과 행동을 보여야 할 그 누군가가, 그 시기에, 그곳에 없었다. 정부 관료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라고는 거짓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현장에서 자신의 안위는 중요치 않았던 뉴욕 시장 줄리아니. 갑자기 불어닥친 재앙에 맞서 말과 행동의 일치를 보여주었다. 언행일치가 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재앙이나 사고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말과 행동은 일치해야 한다'라는 문장은 현자들이 남긴 말이라 치부하며 살아간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고 무슨 큰일이 벌어지겠어"라고들 하며 쉽게 생각한다. 사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줄리아니 시장처럼 언행일치하게 되면 큰 재난과 재앙이 닥쳤을 때, 막대한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페이지 176 / 소음

소음 / 뾰족하고 시끄러운 소리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사람 중에 거친 말을 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회사에서도 묵묵히 아무 말 없이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동료의 사소한 실수에 자신이 피해나 보지 않을까 싶어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렇게 일을 잘하고 있다'라고 떠벌리며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 없다. 한쪽에선 고생 고생하며 야근까지 해야 그의 칼퇴근을 보장해주니 말이다. 그런 동료들의 고생은 나 몰라라 하고 뾰족한 가시 돋친 말만 내뱉는다. 그런데 세상은 그런 경박한 말을 내뱉는 사람보다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이 더 많은 스트레스와 해로움이 뒤따르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경솔하고 천박한 말이 튀어나오지 않게 노력하며 산다. 이것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페이지 193 / 지적

지적 / 따듯함에서 태어나는 차가운 말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로 상처를 받는 건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팔에 달린 완장에 걸맞은 대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부서가 달라 상하관계가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경우 심해진다. 저 인간은 분명히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에게 윗사람 대우를 하지 않는 것에 분해한다. 정작 그를 상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 처사에 격분한 그는 흉기 같은 날카로운 말을 날린다. 반대로 따듯한 격려의 말이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그를 더 존중할 텐데. 그저 팔에 맨 완장만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듯 행동한다.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에겐 굽신거리며, 밑에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겐 비수를 꽂는 비겁한 겁쟁이라 말하고 싶다. 따듯한 말 한마디가 자신의 위신을 올려준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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