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에 시작한 글쓰기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다

by 갸리

딸내미의 어느 날 일기 살짝 공개합니다.

2017년 3월 5일 일요일 날씨 해님.
오늘 과천 이마트를 갔다왔다.신발은 휠리스를 신고 갔다.나는 이마트에서 휠리스를 타면서 엄마 아빠를 졸졸 따라다녔다. 이언이는 집에 들렀다가면 휠리스를 탈 수있는데 집에 안 들렸다가서 휠리스를 못탔다.우리 엄마는 오늘 저녁에 먹을 음식이랑 따른 임식도 많이 많이 샀다.아빠는 엄마가 음식을 사는걸 보면서 엄마 옆에 서 있으면서 걸어갔다.나는 그런 아빠를 조금씩 봐 가면서 갔다.아빠가 과자를 초콜릿 소스에 찍어먹는걸 사줬다.너무 맛있었다.
딸내미 일기장

피는 물보다 진했다.

위에 소개한 일기는 초등학교 3학년 딸내미의 일기다. 띄어쓰기 맞춤법을 무시한 채 딸내미가 쓴 그대로를 옮겨 적어 읽기 불편하리라 생각한다. 일기 내용은 사실의 열거로 끝나고 그날 먹은 것과 논 것이 대부분 차지한다. 매번 너의 일기에 감정을 담아보라고 주문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이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 아들 딸내미의 일기를 읽으면서 뼈 절이게 실감한다. 과연 피는 물보다 진했다. 내 어릴 적과 너무나도 똑같은 일기다. 일주일에 두 번 쓰는 일기는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두려워하는 숙제다. 아이들이 일기를 쓰는 날이면 우리 집엔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두 데시벨 이상은 올라간다. 아들 녀석의 일기 쓰는 시간은 적어도 두 시간은 넘어가기 일쑤. 그나마 딸내미는 빨리 끝내는 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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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지고 하루 일과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빨리 일기를 쓰라고 방으로 들여보낸다. 그 시간이 얼마나 싫은지는 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된다.

딸내미는 그래도 일기 쓰는 데 익숙해졌는지 지 방으로 들어가 길어야 30분 정도면 다 써서 가지고 나온다. 물론 글씨는 괴발개발에 글의 어순은 앞뒤가 틀리고 띄어쓰기 맞춤법도 틀리지만, 속도만큼은 빨라 “그래 잘했어”라고 OK 사인을 한다.


반면 아들내미는 지 방으로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넘어도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이쯤 되면 엄마 아빠의 참을성도 한계에 도달할 시점이 다가온다. 그냥 꾹 참고 더 기다려 본다. 그러고 또 한 시간이 흘러 두 시간 째. 혹시 자기 방 책상에서 일기 쓰다 조는 건 아닌지 고양이 발로 슬그머니 들어가 본다. 다행히 졸지는 않는다.


“얼마나 썼어?”

“다 썼어?


이미 이 시간이면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목소리 톤은 한 레벨 올라가 아들내미를 다그친다. 죄인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일기 공책을 보여줄 자신이 없는 아들내미의 쥐새끼 소리만 한 목소리가 기어 나온다.


“아… 지…이… 익…”

“…….”

“…….”

“뭐라고?” “안 들려 크게 말해”


답답해서 공책을 보는 순간 머리 위로 활화산이 터져 검붉은 용암이 콸콸 쏟아질 기세다. 장장 두 시간 동안 쓴 일기가 고작 석 줄이다. 일기장은 지우개로 몇 번을 지웠든지 연필 자국이 번져 검게 남아있고 종이는 구멍까지 뚫렸다. 책상에는 몇 달 만에 목욕탕에서 떼를 밀어 떨어진 떼 가루처럼 지우개 가루가 한가득이다. 가슴에선 천불이 나고 억장이 무너질 듯 화가 치밀어 올라 일기 쓰는 날이면, 와이프와 나는 도를 닦는 기분으로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되지 않는 이상 그날 하루 저녁은 전쟁터가 된다. 물론 제일 힘든 건 아들내미 겠지만.




나도 일기 쓰기가 제일 어려웠어!

일기라는 것이 그날 일어난 일을 쓰는 글이다. 말로는 정말 쉽다. “그냥 오늘 뭐 했어?” “오늘 한 일 쓰면 되는 거야””오늘 하루 느낀 것들”이라고 아이들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얘기를 해줘도 소용이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도 어릴 적 선생님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기억한다. 그냥 오늘 뭐했는지 쓰면 되는 거고 오늘 하루 어땠는지 쓰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 초등학생에게는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다. 어디 특별한 장소에나 놀러 가야 그날 일기 분량이라도 나오는데, 아무 데도 안 가고 집에만 있는 날은 더더욱 쓸 게 없는 것이 일기다. 절대 간단하지 않다는 건 여러분 모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고개가 끄떡일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일기는 무조건 ‘밥 먹었다’ ’~~ 했다’’~~ 와 놀았다’이게 내 일기의 전부였다. 어린 나의 생각과 느낌이라고는 벼룩의 간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오로지 그날 내가 했던 사실만을 적었다. 일기장의 날짜는 다르지만, 항상 같은 내용으로 채워졌다. 그러니 어디 새로운 곳이라도 놀러 가지 않고서는 일기장 한 페이지를 채우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나의 일기가 허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매일매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뻔한 하루였다고 핑계를 대고 싶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유전자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 딸내미도 어디를 가지 않는 이상 일기장에 채워지는 내용은 나의 어릴 적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머릿속에 강력하게 남을 무언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하지 않는 이상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채운다는 것은 힘겹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원고지는 다른 세상이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일기를 쓰다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 원고지라는 네모칸이 그려진 종이에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작가도 아닌데 왜 이런 데다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200개의 빨간색 네모칸이 있는 원고지를 처음 받았을 때 느낌은 막막 그 자체였다. 반듯하게 줄이 그어진 일기장에도 쓰기 힘들었던 일기였는데, 이젠 이 빨간 네모칸을 채워나가야 한다. 일기보다 더 어려운 글쓰기가 시작됐다. 원고지에 처음 썼던 글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시간. 지금도 독후감은 여전히 어렵다. 책을 읽은 뒤 200자 원고지 한 장 채우는 것은 거짓말 쪼금 보태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보다 더 어려웠다. 어릴 적 책이라도 많이 읽는 아이였다면 200칸 정도는 금방 채웠겠지만, 그런 아이는 아니었기에 200자 원고지에 기껏해야 세 줄 정도 채울 수 있었다. 잘될 놈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이미 이때부터 나에게 글쓰기는 세상 어떤 수학 문제 보다고 어려운 수업이고, 그 이후로 글쓰기 수업은 아예 포기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백일장에 나가봐야 대충 끄적이고 제출할 뿐. 글쓰기가 아니라 네모칸 채우기 작업으로 전락했다.




일기도 못 쓴 내가 출간을 하다!

초등학교 3, 4학년 이후로 내 인생에 글쓰기라는 단어는 35년간 사라졌다. 그리고 작년(2016년)에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을 잡았을 때 이런 내가 무슨 용기가 있어 책을 쓴다고 했는지 지금 돌이켜봐도 이상할 정도다. [나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수필이나 소설 장르가 아니었고 애니메이션 제작 소프트웨어 학습서라서 내가 아는 지식만 담아내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책은 책이다. 아무리 학습서라 해도 글이 빠질 수는 없다.


글쓰기 첫 번째 난관


처음 출판사 관계자와 전화 통화 중 책에 대한 목차를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난생처음 해보는 작업이라 ‘목차’라는 말에 갸우뚱했다. 목차가 왜 중요한지는 그때는 몰랐다. 내 원고는 이미 70% 이상 끝난 상태였다. 이쪽으로는 전혀 지식이 없어 목차는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내가 아는 지식을 잘난 채 하듯 막 풀어서 써 놓은 상태의 날것이었다. 그런데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목차가 중요하다는 것을 출판사 관계자와 미팅하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목차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굵직굵직한 대략적인 헤드라인 정도라고 이해했다. 목차를 정하는 일도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었고 여러 차례 수정에 수정을 한 끝에 출판사의 OK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글쓰기 초보인 내가 본격적인 글쓰기 무대에서 처음 배웠던 것이 ‘목차’였다. 목차 정하는 일은 아직도 초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글쓰기 두 번째 난관


두 번째로 고민했던 부분은 경어를 써야 할지 반말을 써야 할지. ‘~~ 했습니다.’로 해야 하는 건지 ‘~~ 했다.’로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돈을 주고 보는 책에 반말로 써도 되는 건지 글을 써본 일이 없는 내게는 이런 것 하나하나가 고민거리였다. 글쓰기 기초지식도 없는 내게 문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출판사 편집부 직원의 많은 도움이 없었다면 컴컴한 터널에서 헤매는 꼴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글쓰기 세 번째 난관


글쓰기의 또 한 가지 장벽은 띄어쓰기와 맞춤법이다. 말을 할 때는 전혀 걱정거리가 아닌 것이 글로 써야 할 때는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 낱말을 뛰어야 하는지 붙여야 하는지부터 맞춤법이 정확한지 어려움의 연속이다. 초등학교 받아쓰기 시험에서 평균 30점 정도의 실력이었으니 나의 국어 레벨은 최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받아쓰기는 정말 어려웠다. 꼬박꼬박 100점을 받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부러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고 신기했다. “어떻게 다 맞을 수 있어?” 이런 감정이 먼저 들었으니. 그 여파가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창피할 따름이다.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부분은 컴퓨터의 발달로 한글 맞춤법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크게 걱정 없이 글쓰기를 하고 있다.


마흔다섯! 내 인생 첫 책인 [나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출판사의 도움과 무식함의 용기로 출간할 수 있었다.




글쓰기에 서광이 비추기 시작

첫 책이 출간되고 나에게도 글이라는 것을 써볼 수 있겠다는 아주아주 작은 불씨가 일어났다. 네 주제에 무슨 글이냐고 말할 사람도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나에게도 내 생각으로 빨간색 네모칸 200개가 그려진 원고지 한 장은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출간한 [우리 시대 웹툰 작가들의 생존기]는 첫 번째 출간한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글쓰기에 도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웹툰을 보고 감상문을 몇 편 적어보았다. 허잡한 수준의 감상문 쓰기도 내가 쓰면 몇 날 며칠이 걸렸다. 글쓰기 프로들이 쓴다면 몇 시간 정도면 나올 글이 며칠이 걸리지만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고 반복되는 수정 작업에 겨우겨우 한 편씩 써 나갔다. 더 나아가 실제로 웹툰 작가를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사이사이 나의 의견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발전했다. 어차피 나는 글빨이 있는 작가는 아니라서 혼자서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는 생각에 작가들의 인터뷰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책을 쓰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 출간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글쓰기 작업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글이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지면을 채워 나가는 속도도 빨라졌고 막막하게만 보였던 종이의 넓은 여백이 주는 압박감은 조금씩 사라졌다.


글쓰기를 하지 않았던 옛날. 마흔다섯 전까지만 떠올려봐도 원고지에 그려진 붉은색 네모칸을 마주했을 때 꽉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막막함이 있다. 조금씩 막힌 터널이 뚫리는 기분이 든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하얀색 종이에 나의 생각을 채워 나가는 작업은 한 자 한 자 검은색으로 채워지면서 즐거운 감정으로 바뀐다. 타인이 볼 때 엉성한 부분도 많겠지만, 이제는 원고지의 붉은색 네모칸이 무섭지만은 않다. 함박눈 내린 새벽에 누구의 발자국도 없는 새하얀 눈밭에 나 혼자만의 발자국을 새기는 즐거움처럼 새하얀 종이 위에 눈밭에 발자국을 새기듯 한 글자 한 글자 써 나가는 기쁨과 희열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무조건 써보자!

글쓰기 초보가 말할 수 있는 글 쓰는 법은 ‘무조건 써보자’라고 하고 싶다. 나의 생각을 말이 되든 말든 써보면 앞뒤가 맞지 않은 말들이 조금씩 들어맞는 느낌을 맛보게 되니까. 그렇게 나는 무조건 쓰고 있다. 쓰고 쓰다 보면 과거의 잊고 있던 추억을 깨워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후회되는 딱 한 가지가 있다면 어렸을 때 일기 쓰라고 했던 선생님이나 엄마의 말을 제대로 따라 하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문학적인 감각이 없어서 일기 쓰기를 일찌감찌 포기했지만, 일기는 힘들더라도 그 시절 계속 써 놓았더라면 지금 어마어마한 무기가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들 딸내미에게 매일매일 일기 쓰라고 스트레스를 주는 내 모습을 볼 때면, 35년 전 내게 소리 지르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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