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투라 서울
푸투라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 앤서니 맥콜의 전시를 만날 수 있다.
의외로 작은 규모의 전시에 당황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만족한 굵직함이 있었던 전시였다.
“내 작품들은 관객의 물리적 존재를 요구한다. 당신의 몸이, 지금 여기에서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안소니 맥콜 -
“My works require the physical presence of the viewer—your body, here and now, actively engaged.” - Anthony McCall -
앤서니 맥콜은 빛, 시간, 공간,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관해 탐구해온 작가로,
전통적인 영화 형식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영화적 언어를 탐색하며 '확장 시네마'라는 개념을 통해 영화를 재정의해왔다. 물질성과 이미지의 경계를 실험하던 그는 이후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를 통해 빛 자체를 조각하는 방식으로, 영화적 시공간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시간과 움직임을 다루는 방식을 전환시키려 한다.
이미지 기반 예술을 몰입형 환경으로 전환하는 그의 예술이 공간성과 감각을 재구성하는 시점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앤서니 맥콜의 작품 전반이 '확장 시네마'에서 출발한 만큼 개념에 빗대어 전시를 관람하면 조금 더 작품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수월하니 한번쯤 머릿속에 넣고 가도 좋다.
다만 이러한 사유에서 출발해 이미지를 공간성과 감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던 만큼, 개인적으로는 빛의 형태 표현과 이것을 설치한 공간에서 주는 개인적인 감상에 집중해 관람했기 때문에, (따라서 이 주제의식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에는 집중하지 않았다) 전시와 작가에 대한 정보 자체보다는 개인적인 감상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글을 남겨본다.
전통적인 영화 형식을 넘어서는 예술적 표현으로, 영화의 경계를 퍼포먼스, 설치,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와 결합한 새로운 형태를 의미한다. 앤서니 맥콜은 1970년대 런던과 뉴욕의 아방가르드 영화운동에서 이 개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가보자.
1972/2013
오디오 파일, 앰프, 5개의 바리톤 반구형 스피커, 연속 재생
순수하게 소리로만 이루어진 파동이 눈에 보일 정도로 방을 따라 이동한다
-앤서니 맥콜
전시장에 들어서면 첫 작품 '트레일링 웨이브'가 있다. 일렬로 배치된 스피커는 규칙적으로 거칠고 무거운 바람소리를 뿜는다.
백색 소음으로 구성된 고밀도의 음파는 12미터 길이의 전시장 바닥을 따라 반복적으로 이동하며 공간을 가로지른다. 점차 속도와 볼륨이 증가하다 한쪽 끝에서 폭발적으로 토이즌 파동은 시각이 아닌 청각을 통해 관람자의 감각을 사로잡는다.
전시의 전이공간에 배치된 의도가 있을 거라 추측컨대,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위한 몰입의 첫 수단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 마지막 전시 공간에 다다랐을 때 다시금 돌아보면 이 작품으로부터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를 위한 몰입이 시작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강한 비바람이 불어 밖에 나갈 수 없는 그런 날,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듯한 소리는 입장 전의 날씨와 외부 공간으로부터 관객을 단절시키는 장막의 역할을 하는 듯 했다.
'서큘레이션 피겨스' 를 지나가야만 다음 작품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직접 밟고 지나가야 한다. 관객을 그 안으로 초대하는 작품들을 이미 경험해본 관람객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밟아야만 하는' 작품을 앞에두고 잠시 당황한다. 바닥에 깔린 신문지들을 밟으며 작품을 관람한 뒤 다음 공간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 신문지들은 일정 기간마다 새롭게 교체되며, 관람객이 밟고지나가는 자체가 작품을 변화시킨다.
이 작품은 1970년에 처음 설치되었는데, 참여형 설치미술이 활발해진 1990년대 이전이니 꽤나 혁신적이었던 작품인듯 하다.
물론 밟는 신문지가 그 작품의 전부는 아니다. 서로를 찍고 찍히는 모습의 영상과 주위의 거울을 통해 관람객들 또한 찍고 찍히는 주체이자 대상이 된다. 끊임없는 이미지의 생성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작품. 사실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크게 와닿지는 않았고, 이번 앤서니 맥콜의 전시회를 공간에 재현해놓은 외부 환경과 그에 위치한 빛의 형태와 감각에 집중해 감상했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 형태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는 시대를 만들고 우리는 이제야 도착했다' 라는 전시 설명의 문구가 다시금 떠오르는 구간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관람객에게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아주 오래전에 만들었던 그는 작가 인생의 전반에서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 헤이즈 머신
단연 이 전시의 하아라이트다. 앤서니 맥콜 전시회를 방문하고자 마음먹은 사람에게 이 작품의 이미지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빛을 조각하다.' '빛을 고체의 형태로 표현했다'는 개념 그 자체는 충격적일만큼 신선하진 않았으나, 연출을 위한 작가의 고민과 연구 과정, 그 다양한 결과물이 보고싶어 전시를 방문한 이유가 가장 컸다.
“숭고함이란 경이로움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으며, 이는 무한하고 형체 없는 공간 앞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 - 안소니 맥콜 -
For me, the sublime carries ideas of awe in the face of unbounded, amorphous space.” - Anthony McCall -
한국에서의 전시는 홍보 사진처럼 해외 전시 규모보다 스케일이 작아 처음엔 당황스러웠으나, 그럼에도 의외로 작품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예상을 뛰어넘어 다른 의미로 한 번 더 당황하기도 했다. 촬영 현장의 빛과 같은 단순한 강렬함보다도 압도감과 경이로움에 가까운 감각을 선사받은 것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1973년부터 시작된 솔리드 라이트는 안갯속에 투사된 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되며 공간에서 서서히 진화하는 3차원적인 조각의 형태를 띱니다
이 작품은 실물 크기로 전시된 것은 최초라고 한다.
마지막 전시공간으로 들어가면 이 실물크기의 전시가 왜 중요한지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스카이 라이트'라는 작품의 이름은 공간 전체에 걸쳐 전시된 작품의 크기로 관람객에게 단순히 빛의 형태를 넘어 이 빛의 형태가 어떤 감상을 주고자 하는지를 보여준다.
푸투라 서울에서의 전체적인 전시의 동선은 조금 독특하다. 작은 전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이 특성을 활용한 점이 마치 영화와 같이 의도한 연출을 따라가며 작품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주어 더 신선했다.
1층의 로비에서 티켓을 발권 후 1.5층에서 아카이브된 물품을 구경하고, 2층으로 올라가 '트레일링 웨이브'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써큘레이션 피겨스'를 지나 다음 전시 공간의 문을 열면 '당신과 나 사이', '스카이 라이트'를 만날 수 있다. 이 문을 열면 갑자기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공간은 1층과 2층이 합쳐진 공간으로, 2층에 위치한 관객은 1층까지의 뚫린 전체 공간을 위에서 아래로 조망하게 된다. 두 작품은 2층의 천장으로 부터 1층까지 아래로 떨어지는 형태로, 아래의 관객이 조그맣게 보이는 거대한 크기의 작품이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작품의 가장 윗부분으로, 계단의 난간 위로 희뿌옇게 안개와 구름이 낀 하늘에서 빛나는 달 혹은 해처럼 보이는 3개의 빛과 그 빛무리를 가장 윗부분과 비슷한 눈높이로 마주하게 된다. 실제로 보면 꼭 특정한 날씨의 하늘을 인공적으로 재현한 느낌이 들며 큰 규모의 작품 공간 자체에 들어간 상태에서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압도감과 강한 인상을 받는다.
계단 난간에 다가가면 이 빛의 경로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작품의 전체 광경을 감상할 수 있다.
좁은 구름 사이로 햇빛이 내리쬘 때 장막 혹은 커튼처럼 보이는 것처럼, 희뿌옇고 강하게 내리쬐는 빛의 형태가 묘한 신비감을 준다.
1층으로 내려가면 직접 그 빛에 들어가 그 경계와 위를 탐험할 수 있다. 위와 아래에서 각각 바라보는 작품의 이미지도 사뭇 다른데, 일상에서 신비롭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 (특정한 순간 빛이 커튼처럼 드리우는 광경을 목격하는)을 마음껏 탐구할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져 흥미롭다.
사실 2개 작품이 비슷하게 생겨 구분하기는 어렵다.
'스카이라이트'는 3개의 빛기둥 중 천둥과 번개음이 들리며 한번씩 깜빡이는 1개 작품이다. 초반에 언급했던, 시작점에 배치된 '트레일링 웨이브'와 마지막 전시공간을 지나갈 때 중간의 복도처럼 위치한 '써큘레이션 피겨스'의 위치는 명확한 나름의 의도를 갖고 배치된 기획 요소였을 것이라 추측했던 이유는, 거칠고 무거운 바람소리, 자작자작 밟으며 지나가는 눅눅한 신문지의 감각을 지나 어둡고 뿌연 공간에서의 빛 기둥을 마주한 곳에서, 천둥과 빗소리가 들릴 때 이 빛을 마주하는 내가 위치한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충분히 상상가능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스카이라이트'는 이따금씩 밝게 깜박일 때 천둥과 함께 번개가 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관람객에게 별도의 설명없이 이러한 이미지와 감각을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데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느꼈다. 그만큼 작품으로부터 단순한 빛 기둥을 벗어난 다채로운 인상을 받을 수 있어 전시의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당신과 나 사이'는 나머지 2개의 빛 기둥이다.
관람객들은 이 공간에서 다른 전시들보다도 상당히 오래 머무르며 시간을 보낸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구경하기도 하지만 조금 지나면 모두 서로의 개인공간을 침범하지는 않으면서도, 서로가 작품과 함께 만들어내는 형태를 인식하고, 작품과 작품이 위치한 공간 자체를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10.8미터 높이의 천장에서 바닥으로 나란히 투사되는 두 개의 '솔리드 라이트' 형상은 32분간 서로의 흐름에 따라 겹치고 스며들며 변화한다.
작가는 영화의 본질적 요소인 시간과 빛을 매체로 삼되, 스크린을 완전히 제거한 공간에 빛을 투사함으로써 관객이 영화의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물리적 일부가 되는 경험을 유도한다.
다른 관람객들이 각각의 작품 앞에서 각자 관람하고 지나가는 존재가 아닌 고요하고 개방된 공간의 일부가 되어 자유롭게 사유하고, 물리적으로 작품 속에 들어가 함께 하는 존재가 된다. 입장한 관람객은 다른 관람객이 작품 속에 있는 모습을 따라 작품을 탐구하고, 고요하고 개방된 공간에서 천둥과 빗소리, 번개가 깜박이는 풍경 안에 함께 존재하게 된다.
해외 전시관련 사진을 보면서 다양한 작품이 많을 것이라 기대했던 것과 달리 푸투라 서울에서의 전시는 간결한 편이다. 다만 그럼에도 공간의 특성을 충분히 활용해 이 곳에서의 또다른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해 신기하기도 했고 충분히 만족했다.
솔리드 라이트는 앤서니 맥콜이 아주 오래전부터 작업한 시리즈이다.
1970년대 뉴욕의 어두운 다락방에서 처음 시도했을 당시에는 공기 중의 먼지와 관객들이 피운 담배연기에 필름 영사기로 빛을 쏘아 만들어냈다.
이후 스웨덴 전시에서 다락방이 아닌 전시장 공간에 전시되기 시작하면서, 깨끗하고 밝은 전시장에서 제대로 구현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는 1990년대 말까지 맥콜이 예술작업을 중단하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아트북 디자인과 출판에 집중하게 했다.
1990년대 후반 기술의 발전이 다시금 이러한 작업의 가능성을 열어주었으며, 맥콜은 2000년대 작품활동을 재개해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구겐하임 빌바오나 테이트 모던과 같은 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진행중이다.
맥콜의 작품이 재조명 받기까지는 20여년의 시간이 걸린 셈인데, 기술적 제약이 많았던 당시에도 몰입형 예술과 미디어 아트를 시도했던 선구자로서 '관람객을 작품의 일부로 포함시켜 이미지와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한 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인터렉티브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진정한 상호작용의 예술을 완성'했으며 '예술은 때로는 기술보다 앞선다는 걸 증명한 작가'라고 구다회 푸투라 서울 대표는 말한다.
그는 '푸투라 서울에서는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인 맥콜의 작품세계를 집약했다'고 말한 만큼 그의 배경으로부터 이 작품들의 의의를 알고, 작품 속에 들어가 본인만의 감상을 완성해본다면 꽤나 생각한 것보다도 근사한 경험이 될 거라 확신한다.
안소니 맥콜 작가는 28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솔리드 라이트는 어떻게 하면 영화가 단순한 기록매체가 아니라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지 않을지 고민하던 중 관객이 스크린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빛을 투사하면 3차원의 입체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작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의 작품을 이곳 푸투라서울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녹여내기 위해 미학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높은 천장고 덕분에 작품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어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스럽다”면서 “솔리드 라이트 시리즈는 철학적인 메시지보다는 조각을 감상하듯 작품의 주위를 둘러보고, 나아가 작품 안으로 들어가 직접 몰입해 보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처 : 컬처램프(https://www.culturelamp.kr)
인터렉티브와 몰입형 예술이 현대에 와서는 대중적인 개념이 되었으나, 그러한 작품이 모두 관객을 정말로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관객이 그 안에서 몰입할 수 있는 감각을 선사했는가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미디어와 각종 장치, 관객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완전한 참여와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기도 한데, 이를 통해 무엇을 느끼게 하고 싶은지가 명확하지 않거나 너무 사적이고 혹은 개인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 앤서니 맥콜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그의 시작이 기술보다 앞선 시점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잡아냈기 때문에 본질에 가장 근접해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푸투라 서울이라는 공간도 처음 방문했는데 북촌이라는 위치를 포함해 공간 자체가 마음에 들어 이 곳을 구경할 겸 전시에 방문하는 것도 추천한다. 곳곳에 유명 작가의 소장품들도 소품처럼 배치되어 있으니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티켓 발권하는 장소 벽면에 아무리봐도 필립파레노의 냄새가 나는 조명이 있어 눈이 갔는데 찾아보니 역시... 필립파레노 작품이었다.)
*멋지게 찍으려고 어둡게 찍은 것 같은데, 환한 대낮의 하얀 내부가 훨씬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