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행은 삶이 되었고, 사진은 타임머신이 되었다.

by 그루터기

아버지의 시대, 여행은 사치였다

가족여행은 사치였고, 사진도 없었다. 그래서 그리움조차 배울 수 없었다.

X세대, 그러니까 70년대생이라 불리는 우리 세대는 어쩌면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어릴 적, 가족여행은 낯선 단어였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생계를 책임지느라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식 교육은 학교에 맡기면 그만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집안의 역할은 명확했다. 그런 시대에 ‘여행’은 사치였고, 가족이 함께 어딘가를 간다는 건 영화 속 이야기 같았다.

지금도 여행을 자주 다니지 못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유는 조금 달라졌다. 돈보다 시간, 마음의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그 시절엔 정말이지,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특별한 행사였고, 많은 집은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우리 집도 그랬다. 더구나 아버지는 몸이 약하셨기에, 여행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진으로 남겨진 추억도 거의 없다. ‘추억’이라는 말 자체가 어색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당연히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 빈자리를 느끼지도 못했다.

한편으론, 그 시절의 공백은 나의 선택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 시절까지—미래는 뒷전이었다. 그저 그날그날이 중요했고, 과외로 번 돈은 유흥비로 흘러갔다. 남들보다 졸업도, 취업도 늦었고, 그게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편하게 번 돈에 취해 생각이 흐려졌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세대의 기준은 정장이었다.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직업이라 인정받던 시대. 과외는 직업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대학을 졸업했고, 그해 여름에서야 첫 직장을 갖게 됐다.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여행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부자간의 여행, 그날이 마지막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첫 출근을 앞두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단 한 번도 '아버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왜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취업을 하면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일주일 후의 변화를 앞두고 마음이 먼저 준비하라고 보낸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취업도 했겠다 싶어 중고차를 하나 구입했고, 그 차를 몰고 아버지와 여행을 떠났다. 매일 아침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잠은 집에서 자고, 낮에는 길 위에서 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내시던 아버지를 위해 바다도 가고, 산도 가고, 특히 회를 정말 좋아하셨기에 포항에 가서 회도 실컷 먹었다. 마지막 날에는 부자간의 여행에 샘을 내시던 어머니까지 모시고 함께 다녀왔다. 아마도, 그날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 못한 채,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때 함께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던 기억이 있다. 싸이월드에 올려두었던 그 사진 한 장. 하지만 그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함께 사라져버렸다. 출력도 못한 채, 그 마지막 여행의 장면은 그렇게 흔적 없이 날아가버렸다. 그 사진이 있었다면, 이 글을 시작하는 데 더 큰 용기를 줬을지도 모르겠다.



사진 한 장 없는 밤

영정사진 하나 찾지 못한 그 순간, 나는 아버지께 아무것도 드리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금요일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고,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몸과 마음을 쉬이 내려놓으려는 그 밤. 새벽 2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오랜 병이 있었기에 예감은 있었지만, 그래도 갑작스러웠다.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준비해 오라는 말을 듣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버지의 쓸 만한 사진이 없다는 걸. 아무리 앨범을 뒤져봐도, 마음에 남을 한 장이 없다는 걸. 돌아볼 수 있는 추억조차 얼마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께 해드린 것이 없었다는 것을.

그래서 어머니와는 달라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가족이 생기고,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들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시간의 파편들을 붙잡기 위해서. 사라지기 전에 기억을 붙들어 두기 위해서.



그날 이후,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차박을 시작으로 이어진 여행의 시간들, 사진은 이제 내 기억의 타임머신이다.

주일에는 예배를 드려야 했기에, 주로 금요일 저녁 퇴근 후 출발해 토요일 하루를 이용하는 여행이었다.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거의 매주 나갔다. 처음에는 숙소를 이용했지만, 늦은 출발로 인해 잠만 자고 아침 일찍 나오는 여행에 숙박비는 아깝기만 했다. 그래서 차박을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났다. 수많은 길을 달렸고, 십여만 장의 사진이 남았다.

여행은 어느새 내 삶이 되었고, 사진은 그때그때를 붙잡아 주는 타임머신이 되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떠나시고, 아이들도 제각각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이 사진들을 꺼내어 조용히 들여다볼 것이다. “그때 우리가 참 좋았지...” 그렇게 시간여행을 하듯, 웃으며 떠올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행을 한다. 사진을 찍는다. 그날이 왔을 때, 마음껏 추억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순간을, 조용히 저장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무대포 차박으로 시작된 우리의 여행은, 어느새 모터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 여정의 장면들을 한 편씩 꺼내어, 천천히 펼쳐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