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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실패』의 저자, 루시 클라크와의 인터뷰

‘SKY캐슬’이 된 학교와 억압의 피라미드가 된 교육을 고발하다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출판팀에서는 지난 3월 말 '21세기교육연구소' 출판 브랜드로 출간한 교육 비평 에세이 『아름다운 실패(Beautiful Failures)의』의 저자인 호주 저널리스트 루시 클라크(Lucy Clark)를 인터뷰했습니다. 


루시 클라크(Lucy Clark). 저널리스트 겸 에디터. 현재 호주판 〈가디언(The Guardian)〉지의 수석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한국에서는 작년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케이블채널에서 방영된 드라마 <SKY캐슬>이 인기였습니다부유층 가족들의 자녀교육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는데요드라마에서는 전교 1등을 놓치는 것을 절대 있을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는 아주 우수한 학생이 등장하고학부모들은 자녀가 서울대 의대에 확실히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고액의 입시 코디네이터들을 고용하기도 합니다이러한 한국 교육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호주의 상황은 어떤가요?     


루시 클라크호주에서도 자녀의 학업성취를 둘러싸고 수많은 부모가 불안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제가 『아름다운 실패』를 쓰게 된 것도 바로 그 불안 때문이었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삶을 살고 어린 시절을 잘 보내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학업성과에 대해 그렇게 걱정한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부모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아동기란 행복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생에 단 한 번이잖아요. 교육도 즐거워야 하는 건 당연하고, 이건 누가 1등으로 들어가느냐 하는, 이기기 위한 경주가 아니에요. 경쟁이 된 교육에서 사교육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과외교사를 두면 내 아이를 앞서나가게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죠.     


한국은 OECD의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기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을 만들어내는 나라로 유명합니다. 특히 불붙은 시장은 사교육이죠.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이 아이들의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은 차치하고, 또 다른 문제는 사교육에 고액이 드는 탓에 부(富)가 성공의 핵심 열쇠가 된다는 점입니다. 이건 정당치 못해요. 사교육이 계층 격차를 더 크게 벌이고, 거기서부터 사회 내 불평등이 한층 심화되는 셈이죠.     



편집자아름다운 실패는 한국의 교육문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한국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읽힐 듯합니다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책에서 다룬 학원’ 문화인데요호주에서도 근래 사교육 열풍이 일어났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그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루시 클라크한국의 학원에 대한 이야기는 호주에서도 유명합니다. 아니, 악명 높다고 해야 할까요! 어린 아이들이 매일같이 밤늦도록 공부를 한다는 이야기에 많은 호주 학부모들이 충격을 받았습니다만, 실상 지난 5년여 간 호주에서도 대학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큰 시장으로 자리 잡았어요. 높은 점수를 받고 더 나은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여기서도 커진 거죠. 이제 전체 인구가 2천4백만 명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1년에 60억 달러가 사교육에 쓰이고 있습니다. 불안은 전염되지요! 호주에서는 원래 사교육이 어떤 학과목에서 문제가 있는 아이들에게만 제공하는, 이른바 추가적인 지원에 가까웠어요. 이제는 다른 아이보다 더 잘하고 고부담시험(high-stakes exams)에 더 철저히 대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 되었죠.     


문제는 경쟁입니다. 그런 식으로는 교육 받는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경쟁이 실은 학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많습니다.     



편집자: ‘타이거 맘(tiger mom)’에 대해 얘기해보자면애초부터 타이거 맘이 되겠다고 마음먹는 어머니들은 드문 것 같습니다하지만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뒤처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자녀의 학업에 과도한 투자를 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호주와 다른 나라의 학부모들도 자녀의 교육에 크게 관여하시나요?     


루시 클라크많은 경우 답은 ‘네’입니다. 우리 모두 교육은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최선의 방책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를 위한 ‘최선의 것’을 원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교육적 측면에서 ‘최선의 것’이란 아이가 뒤처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부지불식간에 그 메시지를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교육체제에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고, 아이가 일등이 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저는 부모들이 아이의 숙제를 대신 해주고, 아이들의 학습이나 그 결과에 너무 많이 관여한다는 얘길 많이 듣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정 유익한 것은 아이들 스스로 자기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각자의 교훈을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잘못된 현상이지요! 부모가 그렇게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을 알면 아이도 그만큼 불안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편집자한국정부는 다양한 대안적’ 교육정책을 제안하고 실행하고자 노력해왔습니다일례로몇 년 전 대입시험제도를 과감하게 뜯어고쳤는데요호주정부는 교육체제 개혁을 위해 어떤 일을 시도해왔는지 궁금합니다.     


루시 클라크: 『아름다운 실패』가 나온 뒤로 아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엄청난 압박과 고부담시험이 양산해내는 부정적 영향들, 한 사람의 지성을 드러내는 진정한 지표로서는 너무 부족한 대입시험점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왔습니다. 아이들을 점수대로 줄 세운다는 생각도 지지를 많이 잃게 됐고요. 하지만 개혁은 느리고, 최근에는 중요한 개혁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비록 많은 아이들이 대입시험점수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게 훨씬 쉬워지긴 했지만요. 어쨌든, 대학입학을 위한 ‘대안적 경로’가 마련됐고 그건 좋은 일이지요.     



편집자한국에도 직업교육체제가 존재합니다가장 일반적인 직업학교는 마이스터고등학교로 반도체로봇 등 가장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열 가지 분야와 관련된 특수기술을 가르치는데요호주의 직업교육체제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루시 클라크호주의 직업교육체제는 중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는 아이가 학업을 계속하기로 마음먹고 일반 대학에 입학하거나 직업진로를 택해 기술대학에 입학하거나를 결정하는 제3차 교육(중등학교에 이어지는 대학 및 직업교육 과정의 총칭) 시점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국가교육과정을 공부하는 셈이죠. 하지만 이 교육과정에는 아이들이 좀 더 직업적인 학문을 배울 수 있게 해주는 선택지들이 존재합니다.     



편집자한국에서는 대학입학시험제도가 그 초점을 수능에서 학생부종합평가로 옮겼습니다일생에 단 한 번 치러지는 시험인 수능의 악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인데요호주의 대입시험제도는 어떻습니까교사가 평가하는 학생부라든가 자기소개서독서리포트 등이 포함된 학생들의 포트폴리오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요?     


루시 클라크최근까지 호주 학생들은 대입시험인 ATAR(Australian Tertiary Admission Rank)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12년 교육과정 중 최종시험의 결과에 따라 아이들을 줄 세우는 식이었지요. 교육의 초점이 ATAR 점수를 잘 받는 것에 맞춰지면서 교육 자체는 물론 아이들이 느껴야 할 학습의 즐거움까지 망친다고 많은 교육자들이 생각했던,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방식이었습니다. 다행히 최근에 ATAR 점수에 대한 중요성이 조금 줄었어요. 대학들이 ‘대안적 경로’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ATAR 점수가 아주 뛰어나지 않아도 자신이 선택한 대학 전공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지요.     



편집자한국의 새로운 대학입시정책은 일반 대중이 학생들의 평가자즉 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때에야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지요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호주 교사들의 지위는 어떻습니까학부모로부터 객관적인 평가자로 신뢰 받고 있나요?     


루시 클라크호주에서는 교사들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보수도 좋지 않고, 사범대학 입학 자체가 쉽다 보니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학생들을 그 직업에 유치하지 못하는 실정이죠. 호주의 이런 상황은 분명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큰 문화적 전환이 될 것이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겠지만, 더 나은 보수와 사범대학 입학기준 상향을 그 출발점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편집자한국에서는 1세대 대안학교가 90년대 말부터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최초의 대안학교라 할 간디학교를 세운 설립자인 양희규 씨는 당시 한국에서 한 해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자살했다는 CNN 보도를 보고 대안학교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한국에는 여러 종류의 대안학교가 있지만대부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과정이지대안대학은 없습니다게다가 소위 포스트 대안학교라 불리는 학교에서는 학업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학부모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이 대안학교들이 한국교육에 어떤 좋은 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혹시 그에 대한 조언이나 아이디어는 없으신지요?     


루시 클라크학교의 경쟁적 분위기 속에서 내 딸이 불안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나서, 그리고 제 책에 등장하는, 교육제도 아래서 너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나서, 특히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부담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녀를 둔 부모와 대화를 나누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아이의 정신건강이 학업성취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성적을 걱정해서 자살을 생각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청소년기는 아이들이 자아감을 형성하고, 어떻게 강해질 수 있는지를 배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 자존감과 회복력은 생각하고 놀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시간에서 나오는 거죠. 대안학교는 그 같은 요소를 교육에 포함시키는 점에서 주류학교를 능가하지만, 저는 주류학교에서도 대안학교 방식의 사고를 받아들임으로써 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전 세계 교육체제가 ‘성공’을 너무 협소한 개념으로 정의한 탓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느끼고 있어요. 이건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편집자공자는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란 말을 했습니다하지만 학교교육에 대한 장기계획을 갖는 건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루시 클라크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우선, 호주에서 교육개혁은 어렵습니다. 한 정당의 집권기간이 짧기 때문에 정권을 잡은 정당이 A를 계획해 추진하더라도, 몇 년 뒤에는 다른 정당이 정권을 잡고 B를 하려고 들거든요. 교육이 이런 식으로 정치판의 축구공에 지나지 않는다면, 정치가들이 아이들의 권익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 결과 충분한 개혁이 일어나지 못하는 거죠.     


둘째, 아이들로 하여금 일생에 걸쳐 학습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우리는 아동기 아이들에게 그토록 어렵고 불쾌한 과업을 떠안기면서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봐야 합니다. 학교가 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아동기를 앗아간다면, 아이는 학교만 졸업하면 더는 무엇도 배우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성공’의 개념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성공이 단지 고부담시험을 통해 검증된 높은 학업적 성취일 뿐이라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스스로 실패자라고 느낄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성공하는 아이들조차 높은 수준의 불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성공에 대한 집착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치고 있는지를 제대로 봐야 합니다. 학교성적은 아이들을 우울하게 해서도 자살하고 싶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결과를 내는 체제는 뭔가가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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