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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May 30. 2022

과일 좋아하세요?

 20개월 군 복무를 시내에서 할 요량으로 의경에 지원했다. 다행히 한 번에 합격을 했고 18년 6월 군번으로 입대한 나는 자대 배치 후 취사병에 지원했다. 취사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당시에는 구시렁거리며 선임들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생활관에서 우리는 모두 사이가 좋았다. 영원히 막내일 거 같았던 나는 차츰차츰 계급이 올라가고 후임을 받았다.


 그날은 토요일에 혼자 100명분의 밥을 해야 했다. 주말 식단은 영양사님의 배려로 준비하기 어렵지 않아 혼자서도 가능하다. 그런데 부대 긴급 출동으로 잔류하는 인원 수가 바뀌었다. 100인분 재료를 20명 남짓 남은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이런 날은 냉장고, 냉동실에 소분해둔 식재료로 혼자 식단을 정해 요리해야 한다. 원체 먹는 걸 좋아했던 터라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만들면 꽤 호응이 좋은 한 끼가 된다. 완성된 음식, 오일 파스타, 수프, 샐러드, 볶음밥, 빵, 닭찜을 먹고는 한 대원이 지나가며 말했다.

 "오늘 밥 쩔었습니다! 완전 맛있었습니다 상경님."

 그때 처음으로 요리하는 기쁨, 누군가에게 땀 흘려 음식을 제공할 때 느끼는 행복을 느꼈다.


 3,000평 땅을 증여받은 아빠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가정을 꾸렸다. 그동안 막내 삼촌이 경작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퇴직에 맞춰 자리를 비켜주셨다. 올해는 귀농 첫 해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와 동행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보였지만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로 이미 결론이 났었다. 혼자 3,000평 땅은 무리라며 우는 소리를 하셨지만 우린 아버지의 귀향을 응원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자연 앞에서 보였던 기고만장함은 농번기를 맞이하고 한풀 꺾이며 땀과 후회로 얼룩졌다.


 농번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일 손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자처하여 올라갔었다. 분명 겨울과 봄을 견디며 유유자적한 삶과 솥뚜껑 위 삼겹살, 오랜 친구들과의 술자리 속에서 건강하셨는데, 저번 주는 축 처진 어깨와 왜소한 체구의 남성이 대문에 있었다. 아버지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꼭 안아드리기도 했지만 영 반응이 신통치 않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으니, 2시간 반 거리에 살고 있는 아들이 더 자주 오지 못하는 게 야속하다 생각하셨단다. 아버지께서는 그만큼 바쁘고 절박하셨다. 일을 끝내고 떠나는 나의 발걸음도 가볍지 않았다. 액셀을 밟을 수 없어 창문을 열어 놓고 한참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라고 손짓하시는 아버지의 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쭉 충혈돼 있었다.


 해드릴 수 있는 거라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땀 흘리는 것뿐이다. 해가 떠있는 5시부터 8시까지 식사 시간 외 농사일에 전념했다. 첫 주에는 자두 알 속기를 했다. 포도처럼 알알이 열린 자두 알 중 모나지 않고 예쁜 것만 남기고 모두 속아야 한다. 우수수 떨어지는 알들을 보고 있으니 어쩌자고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은 건지 나무가 야속하기만 하다. 고개를 치켜들고 팔을 높이 들어 하루 종일 자두만 쳐다보았다. 어깨와 목이 빠질 거 같았다.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려고 몇 년을 고생한 미켈란젤로의 신앙심이 존경스러웠다.


 그다음 주에는 포도밭에서 가지를 정리했다. 포도의 생김새가 꼭 좁쌀 뭉쳐놓은 것 같았다. 오히려 자두가 포도처럼 생겼는데 식탁에 놓이는 과일의 탄생을 지켜보는 일이 신기하기도 했다. 가지 정리는 자두와 마찬가지로 손과 목을 혹사시키는 노동이었다. 그새 단련이 된 건지 포도일은 할 만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 내가 없는 동안 아버지 혼자서 하셨을 여러 일들을 떠올려 본다. 정말 예전에는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현대화된 도구와 기계를 사용하는 지금도 이렇게 힘들고 손이 많이 필요한 걸 보면 선조의 고봉밥이 이해되는 구절이다. 임용 때 친구들과 '공부 양이 너무 많아서 자살하러 갈 시간이 없다'는 우스게 소리를 하곤 했는데 농사일이 딱 그랬다. 몸은 죽을 거 같다고, 그만하라고 외치지만 해 떨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포도나무와 한 몸이 됐다. 물아일체의 경지, 어렵지 않다. 농가로 오시라.


 일을 하는 며칠 동안 감사함으로 일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먹던 과일들, 농작물들이 얼마나 많은 걱정과 눈길과 손짓으로 이루어져 있었을까. 맛있는 과일을 앉아서 먹기만 했던 나의 과거에 감사했다. 사는 동안 음식을 등한시한 적 없던 나에게 감사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탈락되고 떨어졌을 나무와 열매들의 희생에 감사했다. 떨어지고 남은 가지와 열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자니 모든 쭉정이를 태워버리고 나를 선택해 기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모두가 농부일 필요는 없으나 누군가는 농부여야 한다. 과일을 좋아한다면 농부와 그 일가족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땀에 감사하라는 뻔한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모두가 자신의 생업에서 농부만큼 열심히 일했을 테니 거저먹는 것이 아닌 과일은 그저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다만 좀 맛이 없어도 맛있게 먹는 것에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당신이 먹은 좀 덜 달달한 과일은 어느 초보 농부의 아픈 손가락일 수도 있으니까.


 과일을 맛있게 먹겠다고 다짐한 모든 사람들에게, 올해는 사서 먹든 얻어먹든 항상 만족할만한 과일만 먹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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