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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18. 2022

사람 구해요

 내가 구직 시장에 간절히 몸을 던지게   영국 YMS 비자 취득  런던에 도착한 뒤였다. 당시에 YMS 5기를 선발했다.  년에   뽑으니 영국과 워킹홀리데이 결연을 맺은 2 뒤쯤 나는 홀연히 런던으로 떠났다. 블로그를 보며 준비를 했던 나는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 꽂혀 기필코 스타벅스에서 일하리라 다짐했었다. 그런데 일은 생각만큼  풀리지 않았다. 일과 집을 2 안에 구할 거라며 다짐했으나 구직에 애를 먹자 아무 교회에 쳐들어가 울며 기도했다(당시에 나를 들여보내  영국 신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며칠  원하는 일자리를 얻게 됐다. 스타벅스는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일자리였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바로 임용을 쳤으니  인생,  드라마가 없는 이상 남은 면접은 손가락 안에 꼽지 않을까.


 저번  금요일 아침이었다. 요즘 아버지의 돌연한 귀농으로 매주 추풍령에서 일손을 거들어드리고 있는데 토요일에 오기로 구두계약했던 일꾼들이 연락 두절됐다며 어머니께서 우는 소리로 전화하셨다.  일요일은 교회 출석으로 부산에 내려 가야 하니 토요일에 가능한 많은 일을 끝내야 하는 나로서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소식이었다. 나는 점심 식사  서둘러 목사님께 연락을 취했다.

 "목사님, 이런 사정으로 카톡방에 광고 좀 하려는데 괜찮을까요?"

 "아, 물론이지."

 흔쾌히 허락해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리긴 하나 구인 마감 시간이 4시간 남짓 짧았다. 사람이  구해지는 경우 17 기차를 타고 올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원자가 3 있었다. 토요일 새벽 6시부터 저녁 10시까지(이동 시간 포함)이지만 선뜻 봉사를 자원한 멋진 동생들 덕분에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포도 알솎기를 한다고 들여다보고 있자니 눈이 빠질  같았다. 한동안 초록색은 보지 않아도  정도로 충분히 봤다. 같이 가준 동생들이 해찰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해준 덕분에 하우스  동은 끝낼  있었다. 매형까지 4명이서 6시간 넘게 고된 노동을 하며 잡담   없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다.


 10 부산 도착이 목표라 6시까지만 일하고 집에 들어왔다. 급하게 땀을 씻어내고 자동차 시동을 켜려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부모님을 뒤로하며 떠나는 발걸음은 언제쯤 익숙해질까. 그런 생각이 객쩍다며 어서 가라고 손짓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양철 나무꾼처럼 마음을 잃은 듯했다. 몸을 혹사시키기 위해 마음을 어디 한편에 두고 다녀야 하는  농번기다. 돈을 쥐어드려도 뿌듯하지 않았다. 어지간히 많지 않은 이상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니 말이다.


 구직 시장 자체가 다른 종류이긴 하나 한쪽에선 일을  구해서 안달이고 다른 쪽에선 일손을  구해 발만 동동 구른다면, 무슨 나사인지는 모르겠으나   개만 빠진  같지 않다. 한국인이 하지 않는 일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주로 고용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로  새침할  있는 지위를 가진다.


 얄구진 효심에 젖어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당에 앉아 있을 때 이웃 중 한 분이 오셔서 말씀하셨다.

 "지금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바쁘고 힘들죠? 그런데 또 농번기 끝나면 괜찮아져요."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올해까지만 하시고 포기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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