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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yu Jun 19. 2022

내가 써야 하는 이유

 나이를 먹을수록 말하는  무서워진다. 어디 가서 나이 들었다고 뒷짐 지고  있다간 아직 어린  무슨 나이 타령이냐며 꾸지람 듣기 십상이지만, 어제처럼 내가 내뱉은 말에 흠칫할 때면 묵언수행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고수하는 스타일도 없는데 깔끔해 보이려면 머리를 주기적으로 다듬어 줘야 한다. 거울을 보며 잘라야겠다고 마음먹은 지가 벌써 몇 주 지난 거 같은데 도저히 미용실에 갈 시간이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길이의 머리를 흩이며 엄마에게 투덜거렸다.

 "아니 머리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야."

 부지불식간에 대머리가  나의 모습이 거울 속에서 겹쳐 보였다. 주책이다. 대머리를 상상한 거도 주책이고 그런 불만에  머리칼을 거두실까 걱정한 거도 주책이다. 이럴  나는 차라리 말을 하지 말걸 싶다.


 던졌든, 툭 떨어뜨렸든, 샜든, 읊조렸든 내 혀를 떠난 단어들은 번복할 수 없다. 듣는 이가 없더라도 하나님께서 들으시니 함부로 배출하면 안 된다. 생각이야 막을 수 없으니 고개 한 번 휘저으며 '아니야 아니야'하면 그만이지만 말은 내 의지가 강력하게 개입된 행동이다. 흔히들 말에 힘이 있다고 하니 건강하게 자라던 머리칼이 듣고 기분 상했을까 염려된다.

 언어에는 2가지 입력과 2가지 출력이 있다. 말하는 게 편한 사람이 있으면 쓰는 게 편한 사람이 있고 입력에만 능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말하는 걸 가장 못한다. 말에 마음을 담는 실력이 부족하다. 30년 간 제일 많이 한 걸 가장 못한다면 타고난 재능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내가 써야 하는 이유다. 잘 써서가 아니라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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