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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소방관 심바씨 Oct 27. 2020

소방관과 컵라면

오해와 진실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 화재출동을 나간 소방대원이 땀에 젖은 채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화재가 되었던 적이 있다. 깡 마른 생수병 마저 짠해 보이는 이사진은 일파만파 온라인에 퍼져 소방관들의 현주소를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국가직도 이루었고 소방장비들도 쌩쌩한 놈들로 바뀌고 있으니 컵라면이 해낸 성과가 과연 적지 않다. 소방조직에 몸 담아 생활을 해보면서 느낀 컵라면과의 미묘한 상관관계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신기한 직장 문화

지역차가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는 곳에는 신기한 직장 문화가 있다. 그건 언제든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수는 모르겠다. 내동기는 먹을 때 한 번에 두 개씩 먹는데 돼지냐, 식충아, 돈 내라 소리만 듣지 따로 개수 때문에 이야기를 듣진 않는다. 이미 들은 건가. 아무튼 분명 직장인데 컵라면을 사무실에서 어느 때나 배가 고프면 먹어도 되는 신기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하다가 찬장에서 컵라면을 스윽 꺼내어 먹고 자리로 가서 하던 일을 마저 한다. 황당해 보이지만 내겐 익숙한 모습이다.

그래도 아직 막내이기에 동기 한 명을 꼭 끼고 먹긴 한다. 한 번에 두 개 먹는 친구로.


이 신기한 문화는 소방은 출동부대라는 특성 때문에 가능하다. 소방에도 내근직과 외근직으로 구분이 되는데 내근직은 주 5일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주로 하고 외근직은 내가 몸담은 구조대처럼 출동 업무를 담당한다. 외근직은  출동을 하여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게 주 업무이다 보니  늘 몸에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보통 불을 끄게 되면 모두 진화될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이게 된다. 배가 고프거나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에 큰 화재 출동을 나가게 되면 지옥을 맛보고 돌아오게 된다. 자칫 힘이 부치면 스스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게 때문에 수시로 에너지를 보충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한밤 중에 "라면 먹고 갈래?"는 순수하게 라면 먹고 가자는 의미로 사용된다.



사무실 필수품

"뭐야? 라면이 왜 없어?!" 최근 선임 반장님의 최고 데시벨을 경험했다.

소방서의 장점이라면 분위기가 좋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하하호호 소리가 난다. 아무래도 돕는 일을 하다 보니 생각도 분위기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간다. 하지만 사무실에 라면이 없으면 그 좋았던 분위기가 순간 푹 가라앉는 걸 경험한다. 일전에 물품 구매하는 대원이 바빴는지 일주일간 라면이 없었던 적이 있다. 소방 선배들은 소방조직이 조선시대에 금화도감으로 불리던 때 이후로 처음 있는 사태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공기통에 공기가 없는 건 숨 참고 넘어가도 사무실에 컵라면이 없는 건 참지 못한다.



평가의 잣대

구조대원들 각자 업무가 하나씩 배정이 된다. 현장에 나가면 다 같이 힘을 모아 구조활동을 벌이지만 사무실에 들어오면 행정, 장비, 방호, 현장대응 등 사무업무가 주어진다. 그중 일상경비라는 업무가 있다. 딱 한 사람이 맡고 있는 업무로 대원들의 초과근무 수당, 공금 지출내역, 물품 구매 등을 전담한다. 재미있는 건 일상경비 대원의 근무 평가는 라면을 고르는 센스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이다.  정작 중요한 초과근무 수당 정리는 당연한 거고 라면 선택이 센스 없으면 일을 좀 답답하게 한다는 평이 나온다. 뭐 이건 답이 없다. 암튼 컵라면 종류 다양하게 사 오면 센스 있는 축이다.



의용소방대

화재현장에 가면 녹색 조끼를 하나씩 입고 주민들이 한 명씩 나타난다. 연기가 풀풀 나는 현장에도 마스크 하나 없이 우리의 일을 열심히 돕는 조력자 의용소방대원들이다. 시골에서 이분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불 냄새가 났다 치면 조끼 걸치고 일단 모인다. 주민들 대피도 시키고 동네 김 씨한테 전활 걸어 포클레인도 단시간에 섭외를 끝마친다. 사진 속 컵라면의 출처도 사실은 의용소방대다. 포클레인 다음 단계는 냉커피다. 냉커피를 다 마셔도 불이 꺼지지 않으면 한쪽에서 물을 바글바글 끓여 컵라면에 부으신다. 함께 싸온 김밥과 어묵을 우걱우걱 먹고 우린 또다시 관창을 잡는다. 소방관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베트맨의 집사 알프레드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주신다. 이분들의 응원과 서포트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다. 이분들 없을 땐 뭐랄까 생라면 먹는 느낌?




사진 속 소방대원의 모습은 짠해 보이지만 사실 우린 컵라면을 사랑한다.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린 진짜 맛있어서 먹는 건데 사람들이 오해한다고 말이다. 종종 기자한테 사진 찍히지 않으려고 천막 안쪽에 모여서 먹곤 한다. 직업이 소방관인거지 우리도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다. 게다가 대부분 서민들이다. 돈이 많은데 공무원 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해보니 컵라면의 역할이 컸다. 공무원 준비하는 내내 나의 시간과 돈을 아껴주었고 이젠 내가 버틸 수 있도록 에너지가 되어주니 말이다. 그러니 어찌 컵라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전히 소방관들의 처우 개선이란 숙제가 남아있지만 컵라면은 좋아서 먹는 걸로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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