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온 지 5일 차, 처음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코지마 씨께서 아침 11시쯤 우리가 있는 숙소 앞으로 오신다고 했다. 나는 며칠 동안 비도 맞고 무리해서 그런지 어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잠이 들었다. 기억도 안 난다. 자야지 하면 5초 만에 자고 자기 전에 무엇인가를 꼭 해야겠다 하면 다 끝낸 후에 자는 스타일이다. 심지어 방바닥에서도 잘잔다... 내가 먼저 씻고 지만이가 샤워하는 동안 난 잠에 들었다고 한다. 지만이가 씻고 나와서 장난인 줄 알고 흔들어도 보고 깨워도 보았지만 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이 되니 난 잘 일어났는데 옆에 지만이는 못 일어난다. 새벽에까지 게임을 한 것인지... 일본에서 와서 한 번도 먼저 일어나서 날 깨운 적이 없다. 그러나 이해한다. 연구비로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최저가에 가격에 숙소에서 자야 한다. 물론 가끔씩 이벤트 할인으로 좋은 숙소에서 잘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지난번 태풍으로 인해 하루 고베에서 좋은 호텔에서 자긴 했지만 돌아가면 그 무엇보다 무서운 A4용지에 사유서를 빽빽이 써야 한다. 물론 오기 전에도 빽빽이 연구 일정과 목적 허가서 등을 첨부해야 했다.
내 삶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일인 보고서 작성
우리는 9시쯤 밖을 나섰다. 우리는 말리고 있던 옷을 하나씩 집어서 주섬주섬 입고 아침 식사를 먹으러 갔다. 일본에서는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잘 먹고 다니지 못했다. 내가 팀장이기 때문에 계획도 내가 세워야 했고 돈 관리도 내가 해야 했기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항상 아끼고 다녔다. 일본에서 가장 싸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맛있었던 오야꼬동(계란덮밥)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밥을 젓가락으로 먹는다. 처음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점차 잘 적응해갔다. 젓가락질 마스터가 되는 기분이랄까.
고베에서 즐겨먹었던 오야꼬동
에어컨으로 인해 아침에 나올 때는 따뜻한 기분이 들었는데 밥을 먹고 11시가 되니 날씨가 찜통이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여름은 덥고 습하다. 우리나라보다 더 아래쪽에 있어서 훨씬 더웠다. 일본에서 뉴스를 보면 일사병으로 죽는 사람의 소식이 종종 들릴 정도로 더웠다. 코지마 씨는 우리를 자신만의 민민매미를 볼 수 있는 장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참고로 내 일본어는 형편없다. 영어도 실험실에 외국인 친구들이 많아서 배우게 되었지만 일본어는 어쩌다 보니 일본에 자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생존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정도이다. 예를 들어 일본 출장이 끝나면 한국에 돌아가서 보고서 및 영수증을 제출해야 한다. 영수증은 꼭 받아야 하므로 영수증을 달라고 부탁할 때 "리시또와 모리에 마스카?"와 얼마인가요 할 때 쓰는 "이꾸라 데스까?"실례합니다는 "스츠레시마스 또는 스미마셍" 등 정도만 할 줄 안다. 내 소개와 인사 정도도 할 줄 안다.
코지마 씨는 나에게 일본 매미들을 일본어로 어떻게 부르는지 계속 알려주면서 장소로 향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일본에 사는 매미들을 일본어 말할 수 있다. 매미는 일본에서 "제미"라고 부른다. 민민매미를 일본어로 말하면 "민민제미"인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는 코지마 씨의 비밀 장소에 도착했다.
2019. 08. 16. 일본. 고베. 코지마씨의 비밀 민민매미 채집지
2019. 08. 16. 일본. 고베. 코지마 씨의 비밀 민민매미를 잡고 있는 나.
생각보다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쉽게 접근이 가능한 곳이기에 하루 종일 이곳에서 매미를 잡았다. 어느 정도 잡고 정상에 올라와보니 지만이는 코지마 씨랑 이야기하느라 한참이었다. 속으로 일본에 왔으면 일을 해야지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기타큐슈에서 나는 한 마리밖에 못 잡았고 지만이만 잡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매미를 잘 잡는 나지만 기타큐슈에서 한 마리 밖에 잡지 못했다.
우리는 색변이 개체들을 채집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물론 일반적인 민민매미의 색깔도 참매미와 많이 달랐지만 변이 색들이 눈에 띄게 차이가 있었다. 우연히 나는 에메랄드 빛깔에 색변이를 채집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참매미의 색변이 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그러나 신기하게 표본을 한 후 시간이 지나면 둘의 색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비슷해진다. 한국에 있을 당시 표본으로만 봤을 때는 민민매미와 참매미의 차이를 알기 힘들었으나 실제로 살아있을 때 야생에서 보게 되니 둘의 차이는 여러 방면에 나타났다.
한 가지 궁금증은 우리나라 참매미의 색변이는 주로 섬 지역에서 나타나는데 일본의 민민매미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섬이어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그 독특한 색이 섬 지역에서는 주는 이점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갖게 되었다. 주로 두 가지에 이점을 가질 수 있다. 수컷은 암컷에 선택을 더 잘 받을 수 있는 것인데 암수 모두에게 색변이가 나타나므로 그것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매미는 암컷을 유혹할 때 소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점은 포식자로부터의 위험성 감소이다. 포식자 눈에 잘 안 띄는 색깔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두 번째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서 지만이가 연구 중에 있다. 조만간 소개할 날이 올 수 있을 것 같다.
2019. 08. 16. 일본. 고베. 민민매미 색변이
2019. 08. 11. 한국. 인천. 참매미 색변이
잠깐 더위를 식히러 내려왔다. 코지마 씨와는 이때 헤어졌다. 코지마 씨께서는 내일 로코산 정상까지 차로 데려다준다고 하시고 이만 댁으로 돌아가셨다. 우리는 다시 숲으로 향했는데 숲으로 가는 길, 어린아이들이 잠자리채를 들고 우리와 같은 장소로 향하는 게 보였다. 순수한 그 아이들을 보며 어렸을 적 부모님과 같이 잠자리나 매미를 잡으러 매일 여름날마다 귀찮게 해 드린 것이 생각났다.
요 며칠 동안 연락을 못했는데 생각난 김에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는데 어머니께서는 "아이고 아드님 이제야 연락을 하시네요." 하시면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따금씩 연락을 하는 편인데 태풍도 피해 다녔고 부모님께서 걱정하실만했으니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2019. 08. 16. 일본. 고베. 매미 잡으러 가는 아이들
우리는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채집한 매미들은 측정하고 사진 촬영 및 라벨 정리를 한 후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11시가 넘었다. 내일은 코지마 씨께서 아침 8시에 데리러 온다고 하셨는데 우리가 일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밤을 꼬박 새우고 갈 생각으로 눈을 뜨고 있었다. 물론 안전하게 알람을 수십 개는 맞춰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둘 다 3분도 안돼서 잠에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