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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선꽃언니 Jun 23. 2022

모난 돌은 정 맞기 마련이다

평범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남들 하는 대로 적당히 살아
평범하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냐

아빠와 심학산 둘레길을 걸었다. 해발고도 160m 정도의 얕은 동네 산이다. 안 가겠다는 아빠를 구워삶아 어떻게든 우리는 심학산 언저리에 주차를 하고 제일 빨리 정상까지 닿는 코스(가장 가파른 길)를 택해 뛰기 시작했다. 아빠와 나는 공통적으로 힘든 건 일단 빨리 해치워버려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산을 음미하는 것엔 관심이 없다. 다만 빨리 끝내자는 전투적인 자세로 산을 타고 둘레길을 뛰고 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


편은 우리의 산행에 따라나설 때 무슨 유격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왜 산을 뛰어다니냐며 얼굴이 허옇게 질려 서있곤 했다. 전투적으로 질주하는 식의 산행은 무척이나 쾌감이 크다. 온 다리가 근육통으로 찢어질 것 같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그 상쾌함을 사랑한다. 산이라는 게 사색을 하러도 많이들 오른다는데 내 경우는 힘들어서 상념을 없애주니 꽤 괜찮은 아웃도어 활동인 것이다. 생각을 지워주니 머리가 맑아진다. 몸이 피곤해지니 집에 와서 샤워한 김에 노곤노곤 잠도 잘 오고.


실컷 달려가고 있는데 진로방해를 하는 한 무리의 인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살금살금 하도 천천히 걷길래 답답하던 찰나, 이 사람들 뭐지. 신발을 안 신고 산을 걸어 다니고 있는 것이다. 동네 뒷산이라 쓰레기도 많고 아무튼 자연친화적인 액팅이라고 하기엔 장소가 그다지 적합하지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당황스럽게도 한 사람이 비껴지나갈까 말까 한 그 좁은 골목을 온통 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와 나는 한참을 낭떠러지 비스므레한데 나무를 붙잡고 서있었다. 그들의 행렬이 완전히 진로에서 이탈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우리를 보지 못한 건지 보고도 개의치 않는 것인지 그들은 전혀 속도를 올리지도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자신들만의 맨발 행보에 심취해 칙칙폭폭 지나갈 뿐이었다. 지나가는 내내 우리말고도 우리 뒤에 줄 선 타인들 역시 답답한 표정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빨리 좀 지나가라든지 하며 짜증 내지 않았지만 속에서는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표정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 저 사람들 여기 더러운데 왜 맨발로 걸어 다니고 그러는 거야? 이 좁은 길을 다 차지 하고서?"


"나도 모르겠다. 흙 밟으면 좋은 게 뭐 있긴 있다고 하던데. 너 보기엔 저 사람들이 어떻더냐?"


"이상한 사람들 같지. 양심이 있으면 여기 좁아터진 길에 자기들끼리 웃고 신나서 저렇게 사람들 기다리게 하고 그러겠어? 흙을 밟는 게 좋으면 좀 널찍한 데 가서 하던가. 나는 아까 그 아줌마(떠들고 있던) 보니까 열받던데. 빨리 지나갈 생각 안 하고"


"너는 나중에라도 저러지 마라. 다른 사람 생각도 좀 해야지. 이런 데서 흙 밟기 하는 게 어디 정상적인 행동이냐. 모난돌은 정 맞기 마련이야. 적이 많으면 세상살이 힘드니까 뭘 하든 아주 특출 날 게 아니면 평범하게 살아라"


어쭙잖은 개성을 추구하는 것보다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 살아가기에 훨씬 유리하다.

임용되고 몇 년 지나 가고 싶은 부서가 있었다. 내부망에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자리가 나면 꼭 가고 싶어서 틈만 나면 그 부서 계장님께 어필을 하던 중이었다. 그래도 자리가 안 나자 집안에 아는 분께 부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빠가 잘 아는 분이었다.


"네가 그렇게 가고 싶다니 내가 부탁을 한번 해볼게."


혹시, 하는 마음에 기대했다. 인사발령 철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리 부탁을 하면서 청탁을 한 것도 아니었고 부서에서 요구하는 기본역량(외국어)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었다. 난 청장 배 해당부서 주관 외국어 말하기 대회 전체 1등으로 선발되어 부상으로 2주짜리 해외 치안기관 연수를 제안받기도 한 상황이었다. 근무평정도 좋았고 꽤 인정받으며 직장생활을 하던 차라 자리만 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그해 인사발령에서 나는 나를 원하던 부서로 발령이 났고(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탁까지 해가며 간절히 원하던 그 자리에는 나보다 경력도 짧고 외국어 실력도 비루한 데다 사무실 경력도 없는 웬 신임 이름 하나가 떡 하니 올라가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네가 세평이 안 좋다더라. 회사에서 뭘 했길래 그런 말이 나오냐."


아빠는 심히 언짢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조직생활만 오십 년 가까이했던 사람이라 늘 모나지 않게 생활하고 특이한 짓은 하면 안 되고 하는 규칙에 충실했다.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한 한 열외가 없어야 하고 좀 손해 보는 것도 감수하는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집단생활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딸이 세평이 좋지 않아 그 부서에 밀어 넣기가 좀 곤란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히 충격에 가까운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아빠의 표정은 그래 보였다.


나는 그 안 좋다는 세평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사회생활의 시작이 증권회사였던 나는 일을 잘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찾는 습관을 들일 것을 요구하는 문화에 젖어있었다. 어린 나이에 시작했던 사회생활이라 누군가가 가던 길을 답습하는 것조차 버겁다고 느낄 때였다. 신입 때부터 생존투쟁이 치열한 여의도 바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내놓기를 요구했다. 동기들 중에서도 막내였고 전사를 통틀어 최연소 신입이었던 나는 인간관계도 버거웠다. 때문에 잘해서 인정받아야 사람 취급받겠구나 하는 위기의식이 있었다. 내 풋내 나는 사고가 비웃음을 사지는 않을까 싶어 합리성 따위를 따지기 전에 네(Yes) 하는 게 편했다. 닥치고 일했다. 꽤 쓸만한데 소리를 듣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게 내 세평이었다. 종목분석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멋진 일이었다. 티브에 나오는 유명 애널리스트의 옆자리에 근무한다는 것만으로 약간의 우쭐함을 느꼈다.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여 경찰관이 되었을 때는 이미 이십 대 후반이었다. 임용이 될 때부터 중고 신입 냄새가 풀풀 풍기던 나는, 내게 주어지는 일들이 무척이나 따분하고 지겨웠다. 어쨌든 또 막내였으니 오만가지 자잘한 일들이 내 몫이었다. 가령 청사 내 로비의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내 초임지는 기획운영계였다)  나는 이런 일은 용역을 불러할 일이지 왜 내가 사다리를 타고 저 꼭대기까지 올라가 루돌프를 메달고 있어야 하는가 상당한 자괴감을 느꼈다(지금 생각해보면 마음먹기에 따라서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의경 몇몇에게 그 일을 맡겨놓고 사무실에 올라가 마감 독촉을 받던 다른 일을 했다. 부서에 무척 독을 부리는 경사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내 곁을 지나가며 남들 다 듣도록 큰 목소리로 비아냥 거렸다.


"야, 과장이 너한테 시킨걸 왜 애들이 하고 있냐. 넌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길래."


한 마디로 신임순경이 싸가지 없이 벌써 자기 일을 의경한테 시켜먹고 앉아있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이었다. 자기는 밥 먹을 때 빼고 항상 의경 두 명을 양 옆에 달고 다니면서 지랄하고 있네, 무척 분노스러웠지만 속으로 삭히는 수 밖에는 없었다. 나는 신임순경에 불과하고 그는 직장생활 몇 년 더 한 짬에 걸맞은 무리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짜증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외려 불리하면 불리했다.


내게 주어진 일들은 (내가 느끼기에) 무척 원시적이고도 비효율적인 것이 많았다. 출장여비 정산서를 작성하는 일을 처음 배우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 선임자는 이번에 알려줄 것은 좀 어렵다며 아주 친절한 어조로 내게 설명했다. 장황하게 뭔가 많이 말했지만 결론은 엑셀 양식에 맞춰 여비와 숙박비 유류비 등을 일일이 수기로 입력하고 다 더해 총액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 후 한 건 한 건 관련 공문을 찾아 편철해서 책처럼 만들어 경리계에 제출하면 된다고 했다. 그것을 매달 해야 한다니! 한 달분 책은 어림잡아 어른 손 반뼘 정도의 두께는 되어 보였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서원 열몇 명의 한 달치 출장 공문을 찾아서 출력하느라 한세월 보내는 건 왜 나여야 할까. 출장 다녀온 본인이 근거는 제일 잘 찾을 텐데. 그래서 메모를 뿌렸다.

0일 00시까지 붙임의 리스트(엑셀 파일)의 본인 해당 출장 근거자료 제출 바랍니다. 미체 출시 근거 없음으로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엔 독쟁이 선임뿐만 아니라 모든 부서원의 눈이 똥그래졌다. 내 맞선임이었던 ○경장은 나에게 다가와 소곤소곤 귀띔을 하기까지 했다.


"○순경님, 메모 뭐예요? 나 때는 안 그랬어요. 빨리 메모 회수하세요."


"이미 다들 열람하셔서 메모 회수가 안 되는데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계장님도 보신 메모라 직원들은 큰 소리 못 내고 삐죽삐죽 본인들 출장 공문을 찾아서 내게 제출했다. 그 덕분에 나는 메모를 보낸 지 두 시간 만에 그것들을 묶어 책으로 만들었고 경리계에서는 하루 만에 여비를 지급해주었다(여비 예산은 넉넉지 못하기 때문에 몇 달씩 못 받기도 한다. 우리 과는 바로 받았는데 다른 과는 연말까지 넉 달 동안 자비로 출장 다녔다). 돈이 통장에 때맞춰 꽂히도록 조치하니 계장님은 우리 서무(나)가 일을 잘 챙긴다고 칭찬일색이었으나 출장 공문을 출력하는 직원들은 지치지도 않고 매달 투덜거렸다.


집단의 관행을 깼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방지다는 것이다. 물론 출장 공문 같은 것은 본인이 출력하는 게 맞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은근슬쩍 서무 일로 넘겨진 채 유구한 역사가 흘러왔다. 갑자기 임용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임순경이 관행을 깨고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무척 못마땅한 것이다. 내 맞선임도 그 맞선임의 맞선임도 그렇게 해왔는데 넌 뭔데 그래. 무언의 따짐.


시보 순경 시절의 나는 이전 직장에서 터득한 생존기술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것 같다. 효율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맞선임이 인수인계해주는 업무방식들은 무척 한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불만스러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일처리를 해나감으로써 해소했다. 계장님은 나만 보면 흐뭇하게 웃었다. 과장님도 마찬가지였다. 근무평정도 최우수 고과를 받았고 성과급도 두둑했다. 이 부서 저 부서에서 다음 발령 때 넘어오라는 러브콜도 꽤 받았다. 그러나 같이 근무했던 부서원들은 노골적으로 나를 못마땅해했다. 이상한 애. 잘난 척하는 애. 지 밖에 모르는 애. 나는 임용된 첫 해부터 양극단의 이중적인 세평을 얻었다.


매년 인사발령 때마다 꽤 괜찮은 자리에 추천되었다. 기쁜 일이었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한번 일해보고 싶었던 그 부서에서만은 내가 어떻게 어필을 하든 기회가 닿지 않았다. 신임도 가는 그 자리에 나는 왜 가지 못할까. 자존심이 상했다. 나중에 듣기로는 내가 계속 "까였던" 이유가 그 부서 반장급 직원의 결사반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첫 해 신임 시절의 그 독쟁이 경사와 절친한 사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내가 완전히 또라이 같은 애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카더라를 건너 건너 들었다. 나에 대해 이모저모 안 좋은 얘기만 잔뜩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짬이 찰수록 점점 이 조직에 맞는 사람으로 변모해 가기 시작했다. 관행을 존중하며 적당히 하는 법을 배웠고 반드시 내가 할 일이 아니면 자원하거나 말을 보태지 않았다. 효율이나 혁신을 따지고 창의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게 어울리지 않는 조직에서 괜히 튀는 행동을 해서 곤란해지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게 사는 게 신상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처음엔 이런 건조한 패턴 속의 내가 점점 시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기력해졌다. 나는 과연 이 직장에 맞는 사람일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러다 익숙해졌다. 평범한 나는 누군가의 비방에 상처받을 일도 없었고 야근해가며 고집스럽게 완벽주의를 추구하지도 않게 되어 몸이 편했다. 웃으면서 출근하는 날이 이어졌다.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는 게 좋아졌다.


그렇게 살다 보니, 연락이 왔다.


"국제협력팀입니다. 이번에 자리가 났는데 딱 적격자이신 거 같아서요. 오신다고 하면 추천 서열 1순위로 올려드릴 수 있는데 생각이 어떠세요?"


나는 답했다.


"저 휴직하려고요. 타이밍이 참 아쉽네요. 지난 몇 년 정말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박차고 아쉬울 줄 알았는데 심히 후련했다. 어느 부서를 가서든 열심히 평범하게 살면서 하루가 평온하면 그걸로 충분해. 난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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