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은 힘들어요
25년 10월 13일 아침 06시 33분
긴 연휴가 끝나고 새로운 일상이다. 어제저녁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내일도 회사 안 가?” 걱정이 묻어 있는 듯한 어조로. 대답을 하려 할 때 집사람이 끼어들어 답변을 하지 못했다. 걱정을 하는 딸아이에게 안심을 시켜줘야 하는데, 내심 아빠를 걱정하고 있나 보다. ‘아빠 곧 일하러 갈 거다. 못하면 이렇게 계속 글 써야 하고.’ 쓰다 보니 10일과 같은 06시 33분이네. 또 점점 느려지고 있다.
저번주에는 현재도 연락을 주고받는 M을 소개했었다. M과의 자잘한 에피소드가 너무 많기에 틈틈이 기억이 날 때마다 소개하겠다.
오늘은 누굴 소개해야 하나?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어제는 내일은 누굴 소개할지 하는 섭외조차 못했다. 의식의 흐름에 맡긴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반성한다.
요즘 저녁마다 자전거를 타고 있다. 매번 타려고 습관을 들이려고 하는 중이다. 우리 동네는 곡각지가 많아 자전거를 타기에 적합한 곳은 아닌 듯한데, 난 여기서 자전거를 탄다. 많은 오르막이 있고 경사도 다양하다. 다행히 자전거에 기어도 있어서 어릴 적 타던 자전거에 비하면 많은 부분 업그레이드가 되어 있다. 기어도 앞에 3단 뒤에 8단으로 총 24단으로 되어 있어 내가 처음 자전거 배우고 탈 때의 일반 자전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체인도 벗겨지지 않아서 너무 좋다. 어릴 적 타던 자전거는 체인이 자주 벗겨져서 손에 기름을 묻혀 가며 체인을 끼우곤 했는데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시커멓게 묻은 기름을 없애기 위해 주변 흙에 손을 비벼 되든지 아니면 벽 사이에 손을 비벼 되며 검은 기름을 없애곤 했다. 그런데 요즘 자전거는 체인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어 이런 불편함이 없다. 자전거 타면서 이점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점이다.
자전거를 타면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다. 어떤 경로로 라이딩을 해야지 미리 경로를 정하면서도 오늘은 저 길로 가볼까? 저곳으로 가면 어느 곳이 나올지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생기면 주저 없이 경로를 바꿔 간다. 자전거를 타면 지금의 내가 아닌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것 같다.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나의 이런 호기심에 동네 구석구석을 다 알았다. 어떻게 가면 되는지, 어디로 가면 빠른지. 골목골목을 누비며 친구네 집이 어디고, 각 골목마다 이정표가 무언지 혼자만의 지도에 기억을 하곤 했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사 온 지 이제 4년 정도 되었지만, 주로 다니는 길만 다니고 차로만 움직이는 길 위주로 다니다 보니 알고 있는 범위가 한정적이었다. 그걸 극복하고 새로운 골목을 요즘 자전거를 타며 탐험하고 있다. 여기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 저 높게 펼쳐진 오르막을 올라갈 수 있을까? 등을 시험하며, 나는 요즘 우리 동네 구석구석을 알아가는 재미에 빠져들고 있다. 이곳도 수많은 골목이 있다. 누군가는 예전부터 알았을 골목. 이제 나는 내 지도에 이 골목들을 기록하며 새로이 알아가고 있다.
새로운 도로가 난 모양이다. (집들이 촘촘히 있어서 절대 이런 구조의 도로가 생길 수 없는데 직선 반듯하게 생긴 걸 보니) 가파르게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오르막 끝이 보이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불안했다. 어디까지 올라가야 평지를 만날 수 있을지 몰랐기에 더 힘이 들었고 고개를 다 오르려 할 때 조금씩 보이는 윗동네의 모습은 나의 승부욕을 불태웠다. 절대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완주해서 올라가야지 하는 나와의 승부 말이다. 직선코스로는 올라가기에 힘이 부쳐 S자로 지그재그 올라서 윗동네에 드디어 입성했다. 그것도 잠시 조금 더 올라가니 급 험악한 마지막 경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건 윗동네 버스가 다니는 나도 기존에 알고 있던 길과 연결된 길이었다. 아 이곳이 이렇게 연결되는 구나라는 기쁨과 동시에 허벅지에서는 더 이상 안될 거 같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저 험악한 경사는 도저히 오를 수 없다고 내려서 걸어가라고 허벅지들은 단결을 통해 시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숨이 차오르고 허벅지는 더 단단해져 갔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 보자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서 페달을 밝았는데, 힘이 빠진 건지 몸이 쇠약 해져서 그런 건지 자전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오히려 빨리 내리라고 재촉하듯 한쪽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고 자전거에 내려 그 짧지만 롤러코스터의 첫 오르막 같은 경사를 자전거와 같이 걸었다. 그래서 도착한 산복도로. 기존에는 몇 번씩 지나 봐서 아는 길이라 반가웠고, 다시 자전거를 타며 산복도로에서 라이딩을 시작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길과 만나지만, 이곳 골목에는 막다른 길들도 종종 있어서 새로운 길과 만나지 못했을 때의 번거로움을 알고 있다. 최근에도 딸아이와 골목길을 지나가다 막다를 골목을 만나 다시 회유한 적이 있기에, 항시 골목길 탐험은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며 날 기다리고 있다. 미로 찾기를 니가 얼마나 잘하나 지켜보는 것처럼.
산복도로를 라이딩하면서 추석을 보낸 달과 영도의 풍경을 보는 건 힘들게 올라온 나에게 보상인 듯했다. 조용한 바다 위 하현달이 되어가는 달과, 영도와 서구를 이어주는 남항대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버스 종점까지 다다른 후 돌아오는 길에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요즘은 어느 곳에 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게 어릴 때와는 다른 거 같다. 카메라를 쓰는 건 소풍, 운동회 또는 기타 이벤트가 있을 때만 꺼내 보던 기기였는데.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게 이치다. 집으로 복귀할 때는 허벅지들이 투쟁을 했던 그 험악한 오르막을 페달 한번 구르지 않고 편안하게 중력의 힘을 받아서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그리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던 그 고개가 내려올 때는 한방에 순삭이었다. 이래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 했나? 지금의 내 현실과 잠깐 비교해 보며, 지금 나도 이런 오르막을 오르고 있으니 곧 내리막을 만나 편한 삶은 살 수 있지 않을까? 를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건지 아니면 작은 언덕을 오르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르기에 조금은 불안한 게 사실이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알겠지. 이게 지금 내가 라이딩 한 고개가 큰 오르막이었는지, 아니면 잔잔한 언덕에 불과했는지. 요즘은 모두들 하루하루가 다 오르막일 것이다. 태산도 높다 하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르지 못한다 했지만, 너무 오르막만 주지 마시고 가끔은 쉴 공간을 주시면서 오르막을 오르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줄 모른다. 내가 그 배려를 못 느끼고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고.
오늘 친구 소개는 못 했고 자전거 타며 동네 탐험한 이야기를 했다. 서두에서도 소개했지만 자전거는 나와 어릴 때부터 친구였으니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오늘 글을 쓰면서 느꼈다. 자전거를 타면 어릴 때처럼 호기심이 많아진다는 걸. 현재와 과거의 나를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 같다는 느낌을 전하면서, 오늘 저녁 난 또 이 친구와 동네 탐험을 떠 나보려 한다. 비가 오면 안 되는데. 일기예보를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