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미담
25년 10월 15일 07시 58분
어젯밤에 늦게 자더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 아니 이래야 맞는 거다. 이게 나니까. 오늘도 어제와 같이 일찍 일어났다면 그건 내가 정말 변했구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 알람이 울렸을 텐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니 벌써 07시 30분. 평소 같았으면 ‘아 지각이다’ 이런 각성을 하면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침대를 뛰쳐나와 씻으러 갔을 것이고, 그 누구보다 민첩하게 행동하면서 출근을 준비했을 것이다. 지각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각성은 개나 줘버렸고, 느긋하게 시계를 보며, 아 어제 일찍 잘 걸 하는 짧은 후회만 하면서 그대로 계속 누워 있었다. 미적대다 이제야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어제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K를 소개했다. K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앞서 둘이 만난 상황과 그 주변인물들에 대해 소개를 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S의 무리들과 술자리를 같기 전까지 나의 블랙리스트는 내 학교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 언젠가 저놈들을 박살 내리라. 걸려만 봐라는 식으로 항시 독을 품고 살았었다. 그런데 그 회동 이후 나는 블랙리스트를 모두 지우게 되었고, 지금은 둘도 없이 친한 친구들로 S와 그리고 무리들과 지내고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무리들’이라고 표현한 친구들에 대해서도 한 명씩 차례차례 소개를 하겠다.
K와의 일화 중 먼저 K의 덕을 본 미담을 소개하겠다. 우리 학교는 기숙사가 있었고, 언제부턴가 기숙사 입사 조건이 각 학년별 외지출신 우선이 아닌 성적순으로 입사를 허락하는 프로세스로 절차가 바뀌었다. 대부분 기숙사에 입사하는 애들은 부산에 연고가 없는 외지 출신들이 대부분이어서 같은 학년 외부인 숫자를 파악하고 누가 기숙사를 지원할 건지 알아보면 기숙사 입사 가능 유무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성적순으로 바뀌었다고 하니 부산에 사는 친구들도 아무나 지원할 수 있게 바뀐 것이다. 이것이 문제였다. 나는 간신히 3학년들 사이 기숙사 지원하려는 후보자의 커트라인 성적을 거두었다. 그래서 당연히 기숙사에 입사할 거라 생각하며, 집에 가서도 다음 학기 생활을 위한 거처를 알아보는 일들은 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방학 중 기숙사 입사 명단이 발표가 되었고, 나는 그곳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3학년 외지 출신 중 기숙사에 입사하려던 사람은 나포함 4명인데 누가 또 지원을 한 것이었다. 나를 제외한 예상후보자 3명은 당당히 입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생각지도 못했던 S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K는 집이 부산이라 기숙사 입사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는데, 그의 이름은 예상 밖이었다. 당장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전화를 했다. “야 니네집 부산인데 왜 지원한 거야? 너 때문에 내가 떨어졌잖아.” 하며 하소연을 하다못해 타박을 했고, K는 다음 학기 학생장이라 집에 자주 못 갈 거 같아 지원했다는 상당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게 말해주었다. 맞다. 학생장 했던 형들을 보면 대부분 학과방에서 생활하며 기숙사 아닌 그렇다고 자취도 아닌 그런 이상한 형태의 숙식을 취하면서 학교 생활을 했었더랬다. 학과방에서 생활과 학교생활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걸 알고 K는 기숙사를 지원한 것이다. K의 지원으로 나는 떨어졌다. K가 나보다 성적이 높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버지의 덕을 보고 붙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둘의 성적은 거의 비슷했 던 거 같긴 한데, 아마 K가 조금 더 높지 않았나 싶다. 여하튼 나의 기숙사 입성이 좌절되어 멘붕이 왔었다. 마침 이번학기는 신축 기숙사가 오픈되어 아파트 형식의 기숙사라 더욱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기대는 보기 좋게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 학기는 어디서 지내야 한담. 저번처럼 외삼촌 댁에서 학교를 다녀도 되지만, 그냥 독립이 하고 싶었다. 자취를 하지니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불안하고, 하숙집에 들어가 자니 뭔가 좀 불편할 거 같고. 기숙사가 딱인데, 난 거기에 입성할 수가 없었다. K가 너무 원망스럽고 밉다 못해 정말 죽이고 싶었다. 이래저래 다음 학기 숙소를 정하기 위해 친구가 머물고 있는 하숙집과 기타 여러 방들을 돌아다녔다. 마지막 대안은 외삼촌집으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개학하기 몇 주전 K에게서 연락이 왔다. 기숙사를 포기했으니 빨리 과 사무실로 전화해서 기숙사를 신청하라고.
그 어렵다는 학과방 생활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에게 기숙사를 양보해 주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고, 그때 K는 나에게 예수님 같았다. 십자가를 등에 업고 고난 받았던 예수님처럼 자기 앞의 고난이 훤 한 줄 알면서도 나를 위해 기꺼이 기숙사 입성을 포기해 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너무나 고맙고 내 너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 생각했다. 충성까지는 오버인가? 여하튼 이번 새 학기는 너를 지원하는 든든한 부학생장이 되겠다는 다짐은 확실히 했다. 그렇게 나는 K의 배려로 기숙사에 입성을 했고, 02년 학교 생활을 불태울 기지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 후로 4학년 졸업 때까지 줄 곧 기숙사 생활을 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참 여러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이건 기숙사 편으로 따로 묶어서 한번 소개를 해야겠다. 나의 학교생활에서 학부 생활과 기숙사 생활 두 개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엮어 있기에 이 둘을 떼어 놓고 볼 수가 없는데 다음에 차분히 소개를 하겠다. 기숙사 하니 벌써 독수리 5형제가 떠오르고, 치킨 킬러 M 양이 떠오른다. 그리고 온갖 사건사고들. 기숙사는 나의 대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과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아직도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고 글을 쓰려 는데 웃고 있는 걸 보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곳이라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기숙사라는 말은 항상 그 시절을 떠 올림과 동시에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단어가 되었다. 이런 이유가 작동했는지 모르는데, 조금은 했을 거다. 아들도 기숙사 학교에 보내서 지금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뭐 이러 쿵 저러 쿵 불만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분명 지나고 보면 좋은 추억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니가 그 시절을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오면 너 아빠한테 맛있는 밥 한번 사라.
K의 미담으로 내가 기숙사에 입성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K가 아니었다면 02년도 나의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생각도 하기 싫다. K로 인해 편하게 잘 생활하게 해 준 점 너무 감사하다. 혹여 이 배려가 아버지 빽으로 니가 기숙사에 붙었다고 해도 난 너무 감사하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빽으로 들어갔었나 싶기도 한데,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니 02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 드리라고 선물을 한 기억이 난다. 굳이 K에게도 아닌 아버지에게 선물을 한 거 보면 아버지 덕을 본 건가? K는 아버지 ‘덕’ (‘빽’이라고 하면 조금 정치냄새나고 왠지 부정부패 같은 느낌이 나니까 용어를 바꾸는 게 맞을 거 같다.)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국가에 공을 세워서 K는 유공자 집안 자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기숙사도?
K는 우리와는 조금 달랐던 게 있는데, 장학금이 바로 그랬다. 과 30% 성적우수자에게 장학금이 수여되었다. 1등은 전액, 2등은 육성회비 면제, 3등부터 12등 까지는 수업료 면제.
나는 운이 좋으면 12등 턱걸이를 해서 장학금을 타곤 했는데 그 외에는 항시 저 멀리서 부모님이 부쳐 주시는 향토 장학금으로 생활을 했다. 못 탔다는 소리다. 4년 동안 총 8학기 중 2학기만 장학금을 탔던 거 같다.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 민망하네. 죄송합니다.)
이런 우리와 달리 S는 항시 2등이 받는 육성회비 면제 장학금을 받았다. 평가의 최소기준 학점만 이수하면 준다고 들었다. 그게 바로 아버지의 ‘덕’, 유공자 자녀의 베네픽이었다. 내가 만약 1~2등을 다투는 학생이었다면, 열불을 토했을 것이다. 내가 매번 너 때문에 이런 피해를 봐야 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술이라도 같이 마셨다면 니가 술값 내라고 했을 판인데, 난 뭐 저 뒷줄에 이름을 넣은 랑 말 랑 한 상태였기에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매번 2등을 하던 GG가 생각난다. 이놈은 이런 피해를 당하고도(?) 매번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학교생활을 잘했다. 참 K와 GG는 지금 같은 회사를 다니며 생활하고 있다. 이 둘도 대단한 인연이다.
K의 미담을 소개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무슨 사족을 쓴 들 무슨 필요가 있겠나? K에게 고맙다는 말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너로 인해 나의 대학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들로 지금의 내가 있는 거 같다. 고맙다 K. 하지만 다음 에피소드부터는 너의 비밀이야기도 해야 할지 모르는데 미리 양해를 구한다. 철저히 너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테니 걱정은 말고. 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재수 씨는 모를 거야.
내일부터 우리 본격적을 학교에서 재미나게 생활했던 이야기를 해 볼 께. 니가 자주 등장할 거야. 그럴 때마다 힘들다고 뿌리치지 말고, 내 기억 소환에 잘 응대해 주기를 바란다. 오늘도 회사에 잘 출근했지? 오랜만에 회사에 우편물 한통 보내줄까? 갑자기 그 장난이 생각이 나네. 난 널 항시 VVIP로 생각하니까. (이 일화도 다음에 소개하겠다. 여러분이 이 우편물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재미난 이벤트였다. 다음에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