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들켜버릴 수만 있다면.
삐에로가 좋아?, 피노키오가 좋아?
삐에로가 좋은지
피노키오가 좋은지 묻는 다면,
나는 피노키오!
'난 차라리 웃고 있는 삐에로가 좋아'
삐에로가 좋다 노래를 부르지만
나는 피노키오.
웃음으로 감추는 건 지겨워.
차라리 들켜 버리고 말래.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처럼
내 검은 속을 속절없이 들켜 버리는 게
난 차라리 좋아.
체중계에 올라가면 길어지는
코 무게도 측정됐으면 좋겠어.
나는 숨기고 숨기다, 숨을 참아 버리니까.
그 숨까지 측정해서 잃어가는
외면의 무게에 힘을 보태주면 좋겠어.
거짓말이라도 뱉고 뱉고 또 뱉어서
무게 중심을 잃을 때,
늦었다 생각하고 톱을 꺼내
코를 잘라버리더라도
발 밑에서 나뒹구는
거짓의 말을 보며 깨우치기라도 하겠지.
그리고 비워내며 안도하는 거야.
검은 속을 게워내고 난 뒤에
시선에 걸리는 코가 없다는 것에
안도를 하고 숨길 필요가 없었다고,
어떤 숨을 뱉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될 거야.
코 끝을 매만지며 그제야 울음을 터트리겠지.
울어 본 적이 없는 나무인형이 서툴게 울어.
그게 다야.
피노키오가 된다면 나는 서툴게 울어 볼래.
'난 차라리 피노키오가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