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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빅토리아 Aug 12. 2024

그 남자의 밥, 그 여자의 밥

밥 한 그릇에 담긴 권력

  60대가 되기 전엔 좀 더 활동적인 운동이 좋았다. 마라톤, 등산. 골프. 매일매일 연습을 하고  좀 더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별 좋은 성과를 내진 못하고  올  들어 라인댄스로 종목전환을 했는데 은근 만족스럽다. 라인댄스는 의외로 몸운동이라기보다 두뇌운동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시간대가 오후 6시라  시간맞추기가 애매하다. 마치고 샤워 후 집에 가면 8시 전후.

멤버들은 대개 60대 전후의 여성이라  은퇴 전후의 남편이 집에서 저녁식사 차려주기를 기다리는지라 마치자마자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뛰어가는 멤버를 보곤


' 참 기특하네. 저렇게 아직도 남편식사를 위해 허둥지둥 가는 걸 보니 아직도 제 손으로 밥을 차려먹지 못하는 남편과 사네. 그래요. 그렇게 평생을 사는 것도 어찌 보면  행복한 여자의 일생일지도?'


직장 생활할 때 일 년에 한두 번 새벽 6시에 출근해야 할 때도 우리 집 남자는 나에게 요구했다. 이 남자는 은퇴 이전엔 정말 내가 차려주는 밥만 먹던 남자종족이었다. 내가 없으면 밖에서 먹고 들어오지 절대 자기 손으로 있는 밥을 차려먹진 않았다. 오히려 애들이 아빠식사를 차려 드려야 했다. 암튼


" 오늘 못 먹은 아침밥은 평생 못 찾아 먹으니 출근  전에 밥 차려주고 가" 라면서


그래서 5시 30분에 밥을 차려주고 나는 출근했고 이 남자는 아침밥을 먹고 다시 자고 난 후 출근했다.

아니 왜? 저렇게 아침밥에 집착하는 걸까?

도대체 왜?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목에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내가 경험에서 찾아낸 < 밥에 대한 단상>을 적어본다.


1. 남자( 60대 이후의 남자들에게 한함)에게 밥은 부여된 권력의 상징이다.

    남자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온 시대는 1950년~1980년일 것이다.  그들이 어렸을 때 우리나라는 농업국가에서 막 산업국가로 발돋움하던 시기다. 이들의 가부장적  대가족 구조에서, 가사를 전담해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당연하고 의무였기 때문에 집을 비우고 밥을 차리지 않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남자가 여자를 벌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목인 것이다. 갑의 위치에서. 그들은 그런 환경에서 보고 자란 종족이다.


2. 남자에게 밥은 자존심의 상징이다.

    이 시대 남자들의 아버지는 전근대적인 농업사회의 가부장적 혜택을 다 누리고 살았고 물론 노동도 무척 많이 한 경제적으로 힘든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지만 산업사회에서 지금 60대 이후가 겪는 은퇴라는 시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평생 농사일을 하신 거나 다름없다.  또 그만큼 가정에서 큰소리를 치고 사신 분들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의 아들들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버지가 받던 대우를 받고 싶어 하는데 그게 바로 여자가 차려주는 밥이다. 있는 밥을 스스로 차려먹는 아버지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심리적으로 무척 당황한다.  한 번도 보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 서툴기 때문이다. 서툰 일은 여자에게 보여준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다.


3. 남자에게 밥은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다.

이 시대의 남자들은 어릴 때 한 번쯤 어머니에게 이런 투정을 했을 터이다. 


" 이거 안 해주면 밥 안 먹을 거야" 

그러면

" 알았다. 아들 밥 먹으면 다 해줄게"


노후 보험인 어린 아들을 그 시대의 엄마들은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가? 아들은 밥 거부로 엄마를 부리기도 했을 터. 후후후 밥은 그렇게 엄마와 아들의 사랑의 매개체로 쓰이기도 했음이다. 

혹은 가난하여 배를 곰겨도 한 사람에게 밥은 생명줄이기도 했을 터이다.


4. 여자( 60대 이후의 여자에 한함)에게 밥은 사랑의 표현이다.

    정성 들여 밥을 차리는 일은 또한 그 시대의 여자들에겐 가족에 대한, 특히 남자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 전날 밤 일을 치르면 아침에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의 수가 늘어난다' 

이런 말은 남자들이 주로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만들어 낸 건 아닌지 모르겠다만.


5. 여자에게 밥은 족쇄다. 아니 기쁨일지도?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밥을 차려 남자에게 먹이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어딜 가도 아직도 때가 되면 집으로 달려가야 하는 할머니들이 많다.  오직 하나.  아무리 준비를 다 해 놓아도 혼자서 차려먹지 못하는 남편 식사 차려주려고. 


나는 이제 족쇄를 스스로 풀었다.

푸는데  4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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