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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장을 이대로 둘 것인가

by 영진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집안일이나 돌봄에 특화돼서 능력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승진을 못 한 것… 유리천장 때문이 아니라 무능해서 그렇다.” 믿기 어렵지만 무려 국가인권위원장이 한 말이라고 한다. 특정 기관의 고위직 여성을 거론하며 “독해서 그렇다”고 말했다고 하고, 한 직원에게는 “동성애자 아니죠?”라고 물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여성 직원의 머리카락을 만졌다는 제보도 있었다.


인권위 노조가 내부 게시판에서 안창호 위원장의 반인권적 언행과 부적절한 인권위 운영 등에 대한 제보를 받은 결과다. 지금까지 모두 130여건, 구체적 내용이 담긴 제보만 해도 40여건이 접수되었다고 한다. 어떤 맥락에서 발언했더라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발언이다. 문정호 노조 지부장은 “직원들은 여성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가진 분이 어떻게 인권위원장으로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노를 많이 표출했다”고 덧붙였다. 만약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당연히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안 위원장은 애초에 부적격자였다. 차별금지법, 양심적 병역거부, 낙태죄, 수형자 선거권, 사형제 등 주요 인권 쟁점에 대해 국제인권기준과 배치되는 입장을 개진해왔으며, 보수 개신교 일부의 극단적인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대변해온 인물이다. 인사청문회 때도 기존 입장을 번복하거나 대충 얼버무리지 않았다. ‘신체 노출로 성범죄가 급증한다’는 발언을 문제 삼자, ‘그게 왜 성범죄를 두둔하는 거냐’고 당당하게 반문했고, ‘동성애는 공산주의 혁명의 수단’이라는 기존 발언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제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육과정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학교에서 실시되는 성교육에도 반대했다. ‘평소 소신대로’ 국가인권위원회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오죽하면 보수 언론에서도 이런 인물을 굳이 임명해야 하느냐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취임 뒤 예상대로 인권위 내부에서 여러 인권 현안 추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윤석열 대통령이 위헌적 비상계엄 후 탄핵 소추되자 노골적인 본색을 드러냈다. ‘총리 탄핵심판을 신속 심리하라’는 등 인권위 업무와 무관한 정치적 내용의 안건을 상정했고, ‘탄핵심판 절차가 윤석열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결정문을 채택했다. 윤석열 탄핵을 막으려는 정치적 입장을 공표하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결정문에서 ‘인권’은 동원된 수사에 불과했다. 논리에 얼마나 자신이 없었는지, ‘주장되기도 한다’, ‘의심을 받기도 한다’, ‘논란도 있었다’, ‘견해가 있다’ 등의 문구로 가득 차 있었다. 단언컨대, 인권위 역사상 최악의 결정문이다.


가장 좋은 해법은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결국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론 독립 기구 위원장의 임기를 중단시키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다. 위원장의 임기 보장은 인권위 독립성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권위원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목적은 인권위가 독립적으로 인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인권위가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안위와 반인권적 혐오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징표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도 한국 인권위에 대한 특별심사를 개시하면서, ‘인권위의 독립적 임무 수행을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위원장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이 문제를 ‘전 정권의 코드 인사 물갈이’와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안창호 위원장은 정권과 코드가 맞지 않는 게 아니라 인권위원장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인권위라면 어느 정권에나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인권위가 정상화되면 오히려 정권에는 부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정권의 코드에 맞는 인권위원장으로 교체하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인권정책을 국제인권기준에 따라 철저히 감시하고 비판하여, 정권에 부담될 수 있는 인권위원장으로 교체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차제에 다시는 이런 인권위원장이 임명되지 않도록 인선·임명 절차를 개선하는 입법도 추진되어야 한다.


국제인권기준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위원장, 위헌적 비상계엄을 옹호하기 위해 최악의 결정문을 통과시킨 위원장, 반인권적·차별적 언행을 하는 위원장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2025.8.13. 기사, <국가인권위원장을 이대로 둘 것인가> 전문




인권은 지키려 애쓰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게 여기는 이유는 ‘권력’ 때문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고유한 존재로 존중되어야 하지만,

‘권력자’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권리’를 누리지만,

‘사회적 약자’들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권리다.


인권은 지키려 애쓰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권리는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국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국가를 만드는 데 앞장서려고 국가인권위원회가 있고

국가인권위원장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2025. 8. 13.




국가인권위원장을 이대로 둘 것인가 [홍성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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