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검증을

by 영진

루카치와 블로흐(Ernst Bloch)가 표현주의 논쟁할 때, 블로흐가 현실 자체가 분열되어 있는데 그것을 총체성으로 묶어서 얘기하는 것은 관념론적인 유산 아니냐. 루카치에게 관념론자라고 한다.


루카치는 이렇게 반론한다. 현실이 분열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르주아들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데서 나오는 직접적인 체험의 산물일 뿐이다. 엄연히 모든 경제 체제는 통일체다.


그 안에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대립하고 어쩌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통일 속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건 맑스주의의 기본이다. 그래서, 분열되어 있다고 체험하는 그대가 직접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대야말로 관념론에 빠져 있다. 그렇게 서로 관념론자가 된 것이다.


그럼 그걸 어떻게 검증하나. 참 어렵다. 합의 보면 끝나나. 그것도 아니다. 끊임없는 검증에 올라가 앉아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시험대에 올라가 있다. 이 모든 반론을 다 평정하고 이제 제대로 된 사태로부터 나온 올바른 이론에 와 있어라고 떠드는 순간 바보가 된다. 끊임없이 검증을 다시 받아야 한다.




상대주의를 넘어서는 첫째 척도로 헤겔이 들고 나온 것이 ‘진리는 전체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아도르노는 진리가 꼭 전체일 수는 없다. 그건 관념론적인 것이다. 유물론 입장에서는 열려 있다.


그럴 때 그래도 사태 자체를 놓고 진지하게 면밀하게 집요하게 들여다보면 그 자체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한계도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더 나아가야 하는 필연성이 나타난 것이다. 사태 자체로 강제성이 있다. 인식에서 구속성을 갖는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한 것이다.


그러니까 아도르노는 그걸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개별 인식 또는 사태 자체를 들여다봤을 때 그때그때 나타나는 인식이 벽에 부딪힌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걸 돌파해서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 건 필연이라고 봤다. 끊임없이 넓혀 나가는데 전체까지 가야만 진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영진, '매개와 상대주의', <도시의 무지개> 225-226쪽




도시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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