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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Mar 28. 2024

리얼리즘의 승리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읽기

순전히 독단적인 변증법으로 인해 사실상 전혀 변증법에 도달할 수 없으며, 변증법에서 차용한 고정된 개념들로 온갖 가능한 가치 판단들이 날조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여러분에게 한 가지 구조만 말하자면, 루카치는 상승하는 시민계급과 몰락하는 시민계급 이론을 만들었는데, 그의 경우 예술에 대한 관계가 문제인 한 이른바 상승하는 시민계급의 작품들은 훌륭하고 높은 질을 지닌다고 합니다.(번역본 175쪽)


48년 혁명 이전까지는 부르주아들이 반봉건 투쟁의 선봉에 서서 적극적으로 싸웠다. 진보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48년 혁명기에 절충을 한다. 봉건 개혁과 적당히 손을 잡아가지고 부르주아 계급들이 지배 계급으로 상승을 한 것이다.     


프로이센의 경우는 봉건 지배 계급이 부르주아로 된 것이다. 봉건 영주들, 융커들, 땅 부자들이 자본가로 전환을 한다. 그러니까 프로이센식 자본주의 발전 얘기를 한다. 그럴 때 옛날 지대만 받아서는 부자가 안 된다. 그래서 자기들이 직접 산업 전선에 뛰어든다. 이게 프로이센 형태인데 그 이후에 부르주아들은 다 보수화한다.      

48년 이전에는 하이네가 절정이고 그 이전에 괴테나 레싱이 봉건주의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시민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할 건가. 시민혁명 없이도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작품화한다.      


그때 레싱이 절정에 있었는데 레싱이 문학적 진실, 문학적 진리를 어떻게 구현할 건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한다. 문학적 진리는 부차적인 것을 뒤로 미루고 본질적인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것에 집중해서. 이런 얘기를 한다.     


그때 본질적인 건 봉건 계급과 시민계급 간의 갈등 이런 것이다. 레싱이 ‘시민 비극’이라는 걸 쓰는데 그걸 루카치가 진보적이라고 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들로부터 뭘 배워야 한다면 바로 이런 걸 배워라. 본질을 딱 짚어내는 문학을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48년 혁명 이후에는 그러지 않는다는 거다. 비본질적인 것들을 지리멸렬하게 늘어놓는다. 자연주의의 특징이라고 본다. 에밀 졸라가 그 대표자다. 계급 관계 다 흐린다. 레싱이나 괴테나 하이네는 핵심적인 사회적 갈등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본질을 보여주려고했다. 근데 부르주아들이 자기들이 먹고 살 만하니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연으로 도피하고, 내면 세계로 도피하고, 과거로 도피하고, 그러면서 문제를 흐려먹는다.


자연주의 다음에 나오는 인상주의, 표현주의 이런 것들이 다채롭게 변해가지만 실제 내용들이 다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부르주아 문학들의 타락상, 퇴폐주의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루카치의 악명 높은 테제들에 부르주아 이론가들이 열받아서 루카치 욕을 한다.     


그게 뭐냐, 도대체 그런 게 어디 있냐. 루카치가 보기에는 시민계급 중에도 가끔씩 예외가 있다. 그래서 자기 계급의 기본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조류를 거슬러서 헤엄치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은 부르주아라고 호칭하기도 그렇고 시민, 국민, 공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급으로서의 부르주아라기보다는 정치의식이 있는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 토마스만, 하인리히 만이다. 출신은 부르주아인데 사회주의자들이다. 루카치 이론은 그 안에 들어가면 나름 충분히 납득할 만한 논리가 있다. 그걸 아도르노는 싫어하는 것이다.
 
루카치도 부르주아들로부터 배울 게 있다고 분명히 얘기한다. 그런데 퇴폐주의자들한테 배우지 말고 48년 혁명 이전에 상승하는 계급 시대의 그들로부터 배울 거 배워라. 발자크,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48년 혁명 이후지만 러시아는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본다.     


졸라나 플로베르한테서 배우지 말고 발자크한테 배워라. 그게 랑시에르가 보는 발자크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개념이 있다.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데도 작품은 진짜 진보적인 작품을 썼다. 그런 게 톨스토이한테서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자크로부터 배우라는 거다. 그렇다고 발자크처럼 쓰라가 아니다. 발자크로부터 뭘 배우냐면 전형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 그걸 생생하게 형상화하는 능력 이걸 배우라는 것이다.                



2024. 3. 28.



*위 글은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번역자(홍승용)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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