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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Apr 01. 2024

리얼리즘과 픽션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읽기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인식의 주관적 형식들이 사태 자체의 본질과 실제로 일치하게 되는 인식 형식에 도달할 때까지 집요하게 이 질서를 대상과 대질하도록 이끌어가는 방법인 것입니다.(번역본 231쪽)      


그렇다고 늘 괴리가 있으니까, 어차피 괴리가 있는데 좀 틀리면 어때 이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괴리가 있는 것 틀리면 어때? 하는 사고가 포스트 모던에 있다.  거기에 리얼리즘은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반영하는 거는 다 엉터리이기 때문에 재현이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할 만큼 하는 건데 마치 완벽한 재현이 아니면 재현이 아닌 것처럼 얘기하는 것이다. 완벽한 인식이 아니면 인식이 아닌 것처럼, 알 수 없다는 식으로 가는 거다.     


우리가 아는 건 부분적이고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건 어차피 파편적이고 왜곡되고 그러니까 우리는 알 수 없어 이렇게 가는 거다. 아주 야비한 논리다.      


리얼리즘에 대해서 그대로 적용한다. 언어라는 협소한 매체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현실을 반영하냐. 반영은 엉터리다 말도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다. 그래서 더 열심히 반영한 것과 엉터리로 반영한 거 거꾸로 반영한 것, 이거를 구분 안 하려고 그런다. 그게 리얼리즘에 대한 반론의 요체 중 하나다.     


어차피 다 시뮬라시옹인데 리얼리티 따라 우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식이다. 인식의 니체주의다. 모두 다 픽션이라는 거다. 픽션인데 진리라고 떠들어대는 것들은 자기가 픽션인 것도 까먹은 픽션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 자기가 픽션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픽션. 그걸 우리가 진리라고 착각한다. 이런 식이다.      


근데 픽션이라도 같은 픽션이 아니다. 더 적절한 픽션이 있고 그걸 효과로만 따질 게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봐야 한다. 아도르노도 니체 좋아하는데 아도르노는 거기까지는 안 가는 거다. 대상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
 
니체도 ‘동일성 사유’ 당연히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약간의 변증법적인 요소가 있다. 형이상학 비판하고 그런 건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니체는 거기서 너무 나가는 거다. 픽션으로 보는 건 칸트부터 시작되는 거다.     


현상에 대해서 알 뿐이라는 것. 현상은 ‘물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차하면 칸트주의는 불가지론으로 넘어간다. 알 수 없다는 거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표상 그런다. 표상 현상을 표상으로 바꿨다.      


근데 그 표상에는 뭐가 들어가냐면 인과관계나 이런 것까지 다 알고 있다. 그건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식하는 것들이다. 인과관계, 법칙 이런 것들은 다 표상 영역이다. 의지는 그걸 초월하는 ‘물 자체’의 영역이다.      


니체는 그 의지 대신에 권력이 들어가는 거다. 그다음에 인식 영역은 픽션으로 변하는 거고 허구라고 그러는 거다. 이게 현대 포스트 모던의 인식론적인 밑바탕이다. 이상한 논리인데 그것도 좋다고 따라간다.
 

그러니까 진지하게 뭔가 현실을 알려고 노력하는 변증법은 끝까지 알아보자. 이러는 거다. 괴리가 있다는 걸 알더라도 그 괴리를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냐. 역사적 한계 속에서라도 그러자는 게 변증법이다.


          

2024. 4. 1.



*위 글은 아도르노의 <변증법 입문> 번역자(홍승용)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테오도어 W. 아도르노, <변증법 입문>, 홍승용 역, 세창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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