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논박할 때는 이게 절대적인 것인 것처럼 변증법 안에 완전히 몰입한다. 이게 진리라고 믿고 한다. 절대적으로 거기에 매몰돼야 한다. 안 그러면 진리를 그나마 얻을 수 없다. 그 안에서의 진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예를 드는 게 프랑스 혁명 주역들이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인류 전체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한다고 믿고 싸운다. 그렇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나중에 보면 부르주아적 상거래의 자유, 상거래를 위한 평등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 한계를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처음에 그렇게 믿지 않았으면 프랑스 혁명의 폭발력이 나올 수가 없다 그런 얘기다. 그런 점에서 아도르노 논의가 지젝이 얘기하는 ‘사라지는 매개자’ 개념과 접하는 부분이 있다.
‘사라지는 매개자’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희생을 하는 건 당연하고. 심지어는 반역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온갖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그런 걸 감수하면서 일이 되게 뭐든지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운동 윤리다. 여기서 변증법은 긍정적인 뭔가를 예상하면서 전체를 굽어볼 수 있는 상대적인 위치, 상대적인 태도 이런 것과 거리가 멀다. 변증법 운동 그 자체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영진, ‘몰입’, <감사히 한 걸음> 144-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