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육의 문제는 자본의 문제다. 교육의 문제는 주체의 문제다. 주체의 문제는 자본의 문제다. 자본이 교육을, 주체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화폐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만이 유용한, 상품생산 형태가 전면화한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에서 교육과 노동자도 상품생산 형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자본이 채워줄 리 없는 노동자의 해방, 노동자들이 서로를 채워주기 위한 노동자 교육 운동은 획득해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서로를 교육하는 과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자의 부족은 늘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자 교육 운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교육 운동을 실현하는 것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라고 할 수 있듯이 자본위기의 원인은 교육위기의 원인이기도 할 것이다.
2
교육과 주체의 문제가 자본의 문제라는 말은 이중적인 함의를 지닌다. 먼저, “대학서열은 돈의 서열”이라는 이범의 주장처럼 한국교육의 혹은 한국사회의 서열화는 자본의 문제다. 대학서열이, 서열이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사다리의 높은 곳을 차지하게 하듯이, 혹은 그렇다고 착각하게 하듯이 교육도 주체도 서열화되어 있고 그 서열을 결정하는 것은 자본이라는 것이다.
자본이 많은 대학이, “학생 1인당 교육비의 순위가 대학의 서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교수 대 학생 비율, 실험실습비 등 핵심적인 교육 여건을 좌우한다는 것이다.”(이범) “한국은 대학 간 격차가 극심함과 동시에 평균적인 대학 교육의 질은 낮은 것이다. 대학에 대한 국고 지원이 선진국 대비 매우 적기 때문이다.”(이범)
이에 대한 해결책은 이범이 지적하듯이 ‘돈의 서열’을 ‘돈의 균형’으로 맞추면 될 것이다. 하지만 자본권력이 자본을 공평하게 나눌 리 없다는 것이 ‘돈의 서열’을 돈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비교 우위에 서 서열이 높은 대학이 자본의 이윤 창출에 유리하기에 국가의 재정을 나눈다거나 하는 것은 자본의 윤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학재단이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학을 무상화한다거나 공립형으로 만든다거나 평준화한다거나 하는 일은 자본이 지배하는 한 우연에 불과한 일일 것이다. 사학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사립대학만이 아니라 자본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국립대학도 마찬가지다.
자본 권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국가가 대학을 국유화한다는 것은 자본 권력의 사유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육과 주체가 자본의 문제라는 말은 자본에 의해서 교육도 주체도 서열화되고 그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교육과 주체가 자본의 문제라는 말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함의는 노동자 주체가 자본 국가권력을 넘어설 때에만 자본에 의해 서열이 결정되는 자본 국가권력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 국가권력에 의해 교육도 주체도 서열화된다는 의미에서 자본 국가권력을 노동자 국가로 그 성격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노동자 교육 운동일 것이다. 노동자의 주체적인 운동 없이는 자본 국가권력을 넘어서는 것도, 노동자국가를 이루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3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기계적 유물론을 비판하면서 “환경의 변화와 교육에 관한 유물론적 교의는 환경이 인간들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교육의 의미는 자신과 타자를 포함한 환경을 탐구하고 상호 교육하며 능동적으로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과정은 노동자들이 공교육 제도의 안과 밖에서 교육 운동을 해 나가는 과정이자 결과일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현재의 상태인 자본주의의 발전 경향과 법칙을 탐구하면서 출판, 언론, 당(黨), 노동조합 등의 활동을 통해서 교육을 실천하였다. 자본 권력의 지배 질서를 살면서 또한 그에 맞서 만국의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삶을 통해 요구한 것이다.
4
노동자들 스스로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탐구하고 교육함으로써 자본독재의 구조를 변화시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현재의 상태에 대한 지양(止揚) 없이는,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는 요원할 것이다. 과학적인 인식과 실천에 의해 지양한 만큼의 노동자 주체와 자본주의 구조의 의미 있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노동자 교육 운동에서 필자가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이 속한 공교육 제도의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영역의 곳곳에서 교육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자치(自治)의 장(場)을 폭넓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명에서부터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소모임 형태에서부터 대규모 기구에 이르기까지 가능하다고 본다.
그 경우 무엇보다 자치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운영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애초에 운동이 자생적이거나 자발적이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타의에 의해서 운동이 시작되더라도 그 과정만큼은 스스로 해 나가야 하는 것이 운동이 가지는 힘 있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이 그러한 운동들이 연결하고 연결되어 언제든 연결할 수 있다는, 연결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하나의 단단한 힘을 지닐 수 있는 운동이 되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 그와 같은 연결을 통해 모종의 합의된 방향을 향해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노동자 교육 운동이 자본을 넘어 노동자들 스스로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를, 그 과정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행복한 노동자국가가 되어 가는 과정이기를 소망한다.
“ ”인용은 K. 마르크스/F. 엥겔스,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박종철출판사 1997 / 이범, 「대학서열은 돈의 서열」,『경향신문』칼럼 「이범의 불편한 진실」
2022.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