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게 짝퉁 신발을 사주었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3

by 이범용의 습관홈트

이 에세이는 제 삶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편지 3, 고마워


엄마. 잘 지내고 있어? 난 잘 지내고 있어. 벌써 이 편지가 세 번째네. 오늘은 이 편지를 통해서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고맙다는 말은 진작에 했어야 했는데 왜 못하고 살았을까? 아무래도 그 원인은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단 하나의 화두. ‘우리 집은 왜 돈이 없을까?’라는 분노와 원망 속에서 그 화풀이 대상으로 엄마를 선택했기 때문인 것 같아.


그거 생각나? 난 유명 메이커 신발을 신고 초등학교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시장바닥에서 '프로 스펙스' 상표의 짝퉁 신발을 환하게 웃으며 건네주었지. 한눈에 봐도 엉성했던 신발 상표였어. 물론 우리 집 경제사정을 감안하면 그 짝퉁 신발도 감지덕지였지.


하지만 친구들이 진품명품 감정단처럼 내 신발이 진품인지 짝퉁인지 집요하게 확인하려 했고 결국 들켜버린 거지. 설상가상으로 내가 입고 있던 하얀색 짝퉁 나이키 잠바도 짝퉁인지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며 입고 다녔었어. 결국 며칠 못 가 내 잠바 뒷목의 허접한 라벨이 친구들의 사악한 손들에 의해 까뒤집히고 나서야 내 자존심도 추락하기 시작했어. 그때 형성된 불안전한 내 심리 상태는 늘 나를 괴롭혔어. 모든 일에 당당하지 못한 나는 늘 햇빛 대신 어둠을 좋아했고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기를 원했어.


그땐 이런 생각까지 했었어. 엄마가 친부모가 아닐 거라 생각도 했어. 내가 건방져질까 우려한 돈 많은 친부모가 나를 훈련시키려고 세상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우리 집에 나를 잠시 맡겨 놓은 거라 생각했어. 그래야 숨을 쉴 수 있었거든. 고등학교 다니면서 술과 담배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그나마 엄마가 시골에서 고생하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 내 눈에선 세상을 향한 분노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흐르는 눈물 속에서 고생하는 엄마가 보였어. 그래서 눈물을 닦아 낼 수 있었던 거 같아.


그렇지만 눈물은 일시적인 치료제일 뿐이야. 불면증에 시달리면 먹는 수면제처럼 잠들면 그 효능은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인 치료제들. 엄마가 돈이 조금 더 많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더라면 난 엄마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그럴 운명이었을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과거는 다 그대로인데 우리 집이 남들만큼만 넉넉했더라면 나랑 엄마랑 부둥켜 앉고 펑펑 우는 날이 반으로 줄어들었을까?





분수에 맞게 살아라


엄마 그거 생각나? 난 돈만 모으면 옷을 사는데 다 썼잖아.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늘 잔소리를 했었지.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난 돋보이고 싶었어. 고등학교 때까지 우울하게만 보낸 내 청춘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었어. 왜냐하면 대학이란 새로운 무대가 내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어.


대학교는 상상보다 훨씬 컸어. 내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교정에서 마주친 학생 수 합보다 대학교는 몇 배로 많은 학생들을 무대에 초대했던 거야. 그런데 참 맘에 든 것은 그 수많은 학생들 중에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거야. 새로운 무대에 새 배역을 맡고 흥분하여 하루 종일 춤을 추고 다녔어.


서울은 딱 내 스타일이었어.


봄이 오는 3월의 캠퍼스에는 흩날리는 벚꽃의 잎들이 새내기 여학생들의 치마에 떨어져 살랑살랑 나를 유혹했어. 얼굴에 무지개 고운 색을 골고루 펼쳐 바른 여학생들의 한 무리가 내 앞을 지날 때면 아찔한 향수 냄새가 온 사방으로 터졌고 나는 그 냄새에 매혹되었어. 나는 영원히 그 화려하고 아찔한 신세계에 섞여 살고 싶었어. 나의 가난한 신분이 노출되지 않은 채 살며시 스며들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나도 그들만큼 화려해져야만 했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샀어. 셔츠는 빨간색, 분홍색, 초록색 노란색을 사들였어. 바지는 화이트 진, 체크무늬, 물을 빼 누더기 같은 청바지를 한 벌 한 벌 정성 들여 사재기했어. 머리는 빨간색 무스를 바르고 신발은 군화를 신고 겨울엔 노란 목도리를 칭칭 감았어. 캐나다 어학연수 때 뚫은 왼쪽 귀에 흔들거리며 반짝이는 금귀걸이는 화룡정점이었지. 그 당시 나에게 검은색이나 회색의 옷은 지팡이를 짚고 살아가는 희망이 없는 노인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어.


품위유지를 위해선 돈이 필요했어.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어. 호프 집, 과외, 물탱크 청소,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판매 등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 옷을 사들였어. 그런데 엄마 눈에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던 거야. 내가 새 옷을 사서 집에 들어오는 날은 엄마와 대판 싸우는 날이었어. 통과의례였지.


엄마는 늘 같은 레퍼토리로 날 다그쳤어.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다리 가랑이 찢어진다’, ‘사람은 늘 아래를 보고 살아야 한다’. 그럴수록 난 나라를 잃은 독립투사처럼 거세게 적군에게 반항했어.


"엄마가 날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어? 내 돈으로 내가 산 물건들이야. 뭐가 잘못된 건데? 이놈의 집구석, 지긋지긋하다." 방문을 쾅 닫아 버리고 숨어버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날은 현관문을 발로 차고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워댔지. 어렸을 때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 행동을 난 그대로 복사해서 엄마 앞에 떡 하고 붙여 넣기를 했던 거야. 어설픈 옛날 속담 몇 마디가 모든 사람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게 잘못 아냐? 분수에 맞게 살라니 그럼 엄마처럼 그렇게 불쌍하게 평생 살라고? 난 그렇게는 안 살아!!!!.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잠들기 전 내일 입을 옷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잠들었어. 난 그 행복으로 내일을 살아 냈던 거야.


싸구려 옷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웃고 사는 ‘피에로’처럼.





그런데 지금은 그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행복은 바로 여기에 이미 와 있는데 나는 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동경만 하며 불행하게 살았던 거야. 나랑 결혼해 준 아내, 토끼같이 귀여운 두 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일상 속에 행복이 가득 차 있는데도 난 그 감사함을 모르고 살았던 거야.


엄마가 그랬지. 두 번째 편지 (미안해, 죽기 전에 엄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를 카톡 배달부를 시켜서 보냈을 때 눈물이 흘러서 글을 읽지 못하겠다고. 내가 옆에 있으면 잡고 엉엉 울고 싶다고. 그리고 남들보다 환경이 부족한 것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나서 우리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맘 헤아려 속 안 썩이고 잘 커줘서 항상 감사하게 살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답장을 보냈지. 내가 직접 애들 키워보니 엄마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고. 철이 늦게 들어서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이렇게 답장을 보냈잖아. “응. 그러니 항상 감사하는 맘으로 잘 살자고요”


응 꼭 그럴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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