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였던 삶에게 보내는 박수

이찬혁 「장례희망」

by 하치

https://youtu.be/MPGRtpr5h3k?si=PK-pXIzEmIJHF2Bw


https://youtu.be/iIn_1_XDuBM?si=gevFvgKH0WQ-LAvl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 죽음 앞에서야 드러나는 관계의 진실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이 장면은 냉정하다.

사람들은 죽은 뒤에야 한 자리에 모이고,

정작 화자는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명확히 알지 못한다.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라는 문장은

슬픔의 진정성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 슬픔은 나로 인한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라는 상황이 요구하는 감정 연기인가.


이찬혁은 여기서 감정을 미화하지 않는다.

죽음조차도 오해와 과잉, 착각 속에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장례식이 ‘파티’가 되길 바란 이유 — 삶은 오류 투성이었기 때문에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이 장례식이 축제가 되길 바라는 이유는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그는 삶을 완성품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걸 알지 못했기 때문에 /
뭣 같고 즐거웠어 삶이란 게


이 고백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삶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괴로웠고,

동시에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업데이트 종료다.

오류를 수정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오류가 더 이상 오류가 아닌 상태로 넘어가는 문턱.




관에 새겨진 ‘ERROR’ — 실패의 기록이자, 이찬혁의 예술 선언


이 곡의 퍼포먼스에서 가장 강력한 상징은

뛰쳐들어간 관에 새겨진 ‘ERROR’라는 글자다.


관은 보통 완결을 의미한다.

하지만 ‘ERROR’가 새겨진 순간, 관은 완결이 아닌 로그 파일이 된다.


이찬혁에게 ERROR는


실패


오해


미성숙


괴짜


이해받지 못함



그 모든 것을 통칭하는 단어다.


그리고 그는 그 ERROR를 숨기지 않고,

가장 극적인 무대의 중심에 전시한다.


이건 말한다.

“나는 오류였고, 그래서 예술이었다.”




지드래곤 따라 한다”는 조롱에서 갈채로 — 왜 반전이 가능했는가


초기 이찬혁은 종종

‘지드래곤 천재성의 변주’,

‘컨셉 과잉’,

‘아이디어형 아티스트’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지드래곤이 스타의 정체성 확장을 예술로 삼았다면,

이찬혁은 존재의 불완전성 자체를 무대로 올린다.


〈장례희망〉에서 그는

멋있으려 하지 않는다.

비극적이려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슬퍼 보이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말한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이 문장이 조롱을 갈채로 바꿨다.

천재 흉내가 아니라,

미완의 인간이 자기 자신을 해부하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 종교가 아니라 존재의 환호


할렐루야 /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여기서 ‘할렐루야’는 신앙 고백이 아니다.

이것은 오류를 통과한 존재에 대한 환호다.


꿈의 왕국은 천국이 아니라

“더 이상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춤추고 뛰며 찬양하라는 가사는

슬픔을 밀어내는 명령이 아니라,

불완전했던 삶을 승인하는 의식이다.




이찬혁의 예술세계와 퍼포먼스의 멋짐


이찬혁의 퍼포먼스는 항상

멋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멋있다.


관에 들어가고,

ERROR를 새기고,

자신의 장례식을 노래하며,

마지막엔 축제를 요청한다.


이건 스타일이 아니라 태도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


삶이 엉망이었어도, 그 자체로 기록할 가치가 있다



그 태도가 관객에게 전염되는 순간,

조롱은 갈채로 바뀐다.




마무리 — 이 장례식은 끝이 아니라 허락이다


〈장례희망〉은

“잘 살았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오류였던 너도,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이 노래의 장례식은

죽음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살아 있었던 모든 미완에게 보내는

가장 관대한 박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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