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너에게
안녕!
오늘은 일찍부터 너를 볼 수 있어!
우리의 아지트였던 봉천동을 먼저 가기로 했지.
내가 두고 온 물건들 때문에 너를 괜한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아침 일찍 너 몰래 먼저 다녀오려고 했어.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일찍 일어난 너한테 딱 걸리고 말았지.
차를 운전해온 너.
차를 타자마자 뒷좌석에 놓인 선물을 건네며 보라고 했어.
내게 전에 선물한 가방이 무거워서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고, 이번에는 가벼운 가방을 가져왔다는 너를 보면서 고마웠어.
빈 손인 내가 너무 미안하기도 했지.
가방 안에는 편지와 앨범이 있었어.
물론 다른 선물들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좋았던 선물은 편지와 앨범이었어.
너는 매번 내게 이렇게 선물을 한가득 안겨줘.
네가 선물인데 말야.
그렇게 혼도 나고, 선물도 받고, 너와 마지막으로 봉천동에 다녀왔어.
이제 봉천동은 우리에게 안녕이었지.
볼 일을 마친 우리는 파주로 갑작스레 드라이브를 떠나게 됐어.
날씨가 너무 좋아서, 코로나를 피해서 우리는 파주로 향했지.
옆자리에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너랑 함께 있으니 너무 행복했어.
점점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우리는 네가 종종 이야기하던 돌짜장을 먹으러 왔어.
맛있긴 했지만 우리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돌짜장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같이 밥을 먹는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나 봐.
그거 알아?
우리 내내 웃고 있었던 거?
우리의 드라이브는 식사후에도 계속 됐어.
나는 내내 운전하는 너를 보면서 얼른 운전에 익숙해져야겠다는 결심을 했지.
박사과정 첫 학기가 지나고 나면 반드시 차를 사야겠다는 결심도 굳혔어.
사소하게든 크게든 너는 내게 새로운 생각들과 결심을 하게 해.
그리고 너는 내게 늘 어떤 일이든 동기를 주고 결심을 하게 만들어줘.
이런 일이 내게는 쉬운 일이 아닌데, 너는 참 대단해.
나는 사실 고집이 세서, 내 생각을 이해시키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일이 잦은 내가 네 생각을 먼저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해.
그런 내가 신기하기도 하면서 이런 모습이 내가 꿈꾸던 사랑의 모습들이 아닌가 싶었어.
어디선가 읽었는데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또 하나의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하더라.
나는 너를 만나면서 너라는 또 하나의 우주를 받아들여가고, 그렇게 스며들고 있어.
너와 함께하는 지금,
우리는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어가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