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_시선으로부터>를 읽고
시선은 항상 변한다. 시선은 언제나 가만히 있지 않는다. 누군가에 의해 바뀌게 되고 누군가를 통해 보게 된다. 그 시선이 옳은지 그른지는 그 다음 문제이다.
등장인물은 심시선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심시선은 이전 세대 사람이다. 보통이라면 이전 세대의 시선을 통해 지금의 세상을 그리고 다음의 세상을 바라보면 큰 탈이 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다음 세대의 저항이 여간 심할 것이다. 하지만 심시선은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시선을 남기고 갔다. 덕분에 등장인물들은 남다른 시선을 가지고 살아간다.
처음 아이들 앞에 섰을 때 아이들은 나에게 형이나 오빠라고 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 호칭은 버르장머리가 없던 게 아니라 나를 아직 본인들의 세대로 감사하게 넣어줬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아이들도 그렇게 부르진 않는다. 철저히 다른 세대일 뿐이다. 그러면 나는 명백히 다른 세대의 사람이고 앞으로 그 세대는 점점 더 멀어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 시선은 항상 변할 것이고 나의 시선은 안녕할까.
내가 걱정되는 것은 내 시선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또 내 시선을 통해 아이들이 세상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조차 오만하지만. 그래서 다른 선생님들이 종종 "아이들이 선생님의 분위기를 닮았나 봐요."하면 칭찬으로 받지 못하나 싶다. 역시 내 시선에 대한 의심을 저버릴 수는 없다.
심시선의 시선에 대해서는 과하게 칭찬할 만 하지만 완벽하다고 할 순 없다. 결국 심시선조차 표현할 수 없었던 상황들에 대해서 현재에는 언어가 생기고 그걸 바꾸는 다음 세대들이 있다. 나는 이 점에 있어 많은 위안을 얻는다. 내가 완벽할 순 없고 내 시선이 때로는 엇나갈지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세상은 향할 것이라는 것을. 심시선의 다음 세대들에서 위안을 얻는다. 손녀 손자인 다다음 세대에서는 또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다만 심시선의 시선을 그리고 심시선의 다음 세대의 시선을 참고는 할 테지만 말이다.
점점 실망만 늘어간다. 좋아했던 작가에게서, 좋아했던 가수에게서, 좋아했던 선배에게서. 좋은 시선을 주었던 사람들에게서 받는 실망들은 퍽 씁쓸하다. 얼마 전 외장하드와 각종 클라우드에 있던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지난 날들을 쭉 살펴보았다.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사진이 줄어들었다. 사진이 넘치던 해의 아이들이 지금의 나를 보면 실망할까. 세대를 관통하는 시선을 가지고도 싶지만 나의 바람은 보다 소박하다. 그냥 큰 실망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어야지 하고 말이다.
2020.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