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 윈터스를 위한 변명
먼저 쓴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Resident Evil 7: Biohazard, 2017)> 글에서 미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잠시 뒤로 미뤘었습니다. 이제 이 7편과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미아 윈터스(Mia Winters)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이하 바이오하자드 7 혹은 7편)>의 도입부만 보면 미아는 전형적인 "납치당한 공주" 역할입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미아가 사건의 원흉인 이블린(Eveline)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책임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요.
미아는 이블린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던 만큼, 자기가 속한 조직이 결코 선하지 않다는 것 역시 알았을 겁니다. 그리고 자기 직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편 에단 윈터스(Ethan Winters)에게 오랫동안 거짓말을 해왔고요. 특히 7편의 사건이 정리되고 아이까지 태어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이하 빌리지 혹은 8편)>의 시점에 이르러서도 에단에게 진실을 전부 밝히지 않았고, 그 덕분에 에단은 다시 한번 힘든 싸움을 시작하게 될 뿐만 아니라 원수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듣는 입장에 처하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미워할 만도 합니다.
베이커 가에서 일어난 비극에는 미아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빌리지>의 사건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미아가 악인인 건 아닙니다. 미아 윈터스라는 캐릭터의 특징은 본질적으로는 악하지 않은 사람이 악행에 관여했을 때 일어나는 복잡한 심정과 행동에 있습니다. 미아 윈터스는 결코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훌륭한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미아는 진짜 직업은 불법 생체무기를 개발하고 거래하는 비밀 조직 '커넥션'의 특수작전부 요원입니다. 간단히 말해 비밀 특수요원이지요. 8편 빌리지에 가서야 총기 사용이 능숙해졌던 에단과는 달리, 미아가 7편부터 총기를 포함한 다양한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걸 보면 '특수'의 의미가 가볍지 않다는 걸 알 수 있고요. 또 에단에게 무역 회사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출장이 많다는 핑계를 댔다는 걸 생각하면 주요 활동 무대가 조직 외부라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미아는 연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블린의 개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을뿐더러, 마지막 임무를 맡기 전까진 이블린의 존재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때그때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현장 요원에게는 대개 해당 임무에 필요한 정보만 제공되기 마련이니까요.
*: 일부 자료에는 미아가 연구원이로 커넥션에 들어갔다고 나와있는데 다른 자료 대부분에는 첩보원, 공작원 등의 특수요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연구원에서 특수요원으로 부서 변경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 제작 도중에 설정이 바뀐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업무의 종류가 전혀 다르니까요.
미아가 에단에게 보낸 비디오 메시지에서 얼른 이 보모 일을 끝내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이블린 운반'은 미아에게 새롭게 내려온 지령에 불과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 언급되는 '각인 프로토콜'은 임무 수행 때 이블린이 미아를 잘 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 거라 생각되고요. 각인 프로토콜의 존재 자체가 미아와 이블린이 만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예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다면 각인이 필요하지 않거나 각인 프로토콜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웠겠지요. 각인(imprinting)은 처음 보는 대상에게나 적용가능할 테니까요.
또 어머니 역할의 미아와 함께 아버지 역할을 맡았던 앨런 드로니의 최후를 생각해 봅시다. 이블린은 앨런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습니다. 자신을 망할 년(little bitch)라고 불렀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원격으로 죽여버리죠. 반면 미아는 자신을 제거해 버릴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곁에 두려고 하지요. 이블린이 미아를 좋아했다는 흔적은 게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루카스가 직접 기록해 두기도 했고 DLC <Not A Hero>에서 볼 수 있는 소금 광산 속 실험실에는 앞에서 언급한 인형과 함께 미아를 상징하는 듯한 인형도 놓여 있습니다.
그만큼 미아가 이블린에게 조직의 연구원들이나 앨런보다 더 상냥하게 대했던 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드는 부분이지요. 실제로 화물선에서 이블린을 찾을 때 미아는 앨런과는 달리 정말 어린이를 달래는 듯한 어조를 사용합니다.
물론 이블린에게 친절한 척했다고 미아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요. 이블린이 불법 인체 실험과 생체 무기 개발의 결과물이라는 건 알면서도 임무를 수행했으니까요. 심지어 이걸 '보모 일'이라고 묘사하며 남편에게 애정 어린 메시지까지 보내면서요.
하지만 미아의 직업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비밀을 지키는 것이 특수 요원으로서 미아의 의무니까요. 게다가 배에 올라타기 전 미아와 이블린이 찍은 사진을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이블린은 평범한 소녀처럼 보였기 때문에 미아가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화물선 승무원의 기록을 보면 이블린은 미아나 앨런과 함께 평범하게 선내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블린이 그렇게 위험한 존재일 거라고는 미아도 앨런도 몰랐던 거죠. 그리고 직접 겪기 전까지는 이블린의 위험성을 몰랐다는 건 미아가 이블린의 개발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요.
만약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블린을 무사히 목적지까지 운반했다면 미아를 비난할 수 있는 지점은 불법 생체 무기 개발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인체 실험을 묵인했다는 게 되겠지요. 이건 미아도 어느 정도 감수하고 있는 부분일 겁니다. 직업이 직업이니까요. 옳지 못한 일이라는 걸 알아도 그걸 수행하는 게 자기 일이니까요.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작 자신은 남편에게 거짓말까지 해가며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풍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좌초되자 그 틈을 타서 이블린이 앨런을 공격하고 탈출합니다. 이블린의 탈출이 미아의 탓이라는 얘기도 종종 보이지만 사실 이블린 탈출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건 미아가 아니라 태풍과 앨런의 방심이었던 거죠.
그때부터 미아의 행동이 나아가는 방향이 조금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상황을 수습하려고 하지만 잘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자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미아의 실종 직전 에단이 두 번째로 받은 메시지지요.
에단. 당신이 옳았어. 난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어. 그래선 안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이 이 메시지를 받는다면… 더 알아보려고 하지 마.
날 알았다는 사실조차 잊어줬으면 해. 행복하게 살아줘.
미아가 많은 비난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에단을 이끈 장본인이라는 것 때문인데 사실 미아는 가장 먼저 에단을 끌어들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자신이 그동안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부디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가기를 바라죠. 미아는 에단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겁니다.
이런 미아의 태도는 에단에게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DLC <딸들>에서는 베이커 가족에게 구출된 미아가 그들에게 남긴 편지가 나옵니다.
베이커 가족에게, 제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부디 저에 대한 모든 걸 잊어주세요.
전 그 배의 중요 화물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여러분이 저나 그 화물과 엮이게 된다면 위험해질 거예요. 정말 위험해요.
경찰이나 주 당국에 연락하지 마세요. 그냥 우리가 전혀 만난 적 없는 것처럼 행동하세요.
그리고 절 구해준 보답으로 이 조언을 드릴게요. 배 주면에서 10살가량의 소녀를 발견하면 절대 접근하지 마세요. 그 애가 말을 걸면, 가능한 한 빨리 도망쳐요. 그 도중에 그 애가 화나지 않게 하시고요.
몸이 불편한 것 같은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다면 이미 최악의 상황일 수 있어요. 죽음보다 더 나쁜 운명이 기다리죠.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요. 정말 유감이에요.
하지만 멈출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혈청이죠. 그걸 주입…증상을 멈… (읽을 수 없음)
미아는 자신이 살아남고 도망칠 수 있는 기회임에도 베이커 가족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며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저 친절하고 상냥할 뿐인 베이커 가족 역시 비극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아가 남긴 편지를 미처 보지 못한 잭 베이커가 이블린을 집 안으로 들이면서 비극이 시작되고요. 도입부에서 에단이 받은 미아의 이메일 '나를 찾으러 와'도 사실 미아가 보낸 게 아니었죠.
미아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죠. 결국 에단은 미아를 찾아왔고 베이커 가족은 스스로 이블린을 집 안으로 들였지요.
미아 역시 에단이 찾아오기까지 3년 동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거릿 베이커가 만드는 끔찍한 음식들을 먹고 이블린에게 조종 당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인을 저지르면서요. 사랑하는 남편이 직접 찾아왔는데 그를 미처 탈출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공격하고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후반부의 묘사를 보면 이블린에게 조종당하는 와중에도 본인의 의식은 남아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걸 생각하면 에단의 손목을 자를 때 미아가 느꼈을 슬픔은 손목이 잘려나간 에단의 고통에 결코 뒤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로도 자신을 희생하며 에단을 구하려고 합니다. 이 점은 미아와 조이 중 누구에게 혈청을 주느냐의 분기점에서 조이를 선택할 경우 더욱 두드러집니다. 남편이 아내인 자신이 아닌 고작 몇 시간 전에 처음 만난 다른 여성을 살리기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아는 위기에 빠진 에단을 구하기 위해 난파선까지 찾아와 이블린과 맞섭니다. 이블린에게 지배 당해 다시 에단을 공격하면서 결국 사랑하는 남편에게 최후의 일격을 받게 되지요. 그 순간 의식이 돌아와 그 망할 년(little bitch)을 없애버리라며 유언을 남기고 산산이 부서집니다. 분기점에서 미아를 선택했을 때도 에단을 구출하고 이블린과 맞서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다만 미아는 죽는 대신 완전히 지배당하기 전에 스스로를 가두지요.
조직의 악행을 묵인했고 에단에게 거짓말을 해왔다는 점에서 미아에게도 분명 잘못과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를 줄이기 위한 미아의 노력과 베이커 농장에서 보내는 3년 동안 미아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그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까지만 보면 사실 미아는 좋은 사람이었다-로 끝날 것 같기도 하지만 미아의 캐릭터는 후속편 <빌리지>에서 더욱 입체적으로 변합니다.
<빌리지>에서 미아는 여전히 에단에게 솔직하지 못합니다. 에단의 몸에 대한 진실을 끝까지 감추고 있었지요. 그런 와중에 무책임하게 딸 로즈를 낳기도 하고요. 만약 일찌감치 에단이나 크리스 레드필드에게 사실을 말했더라면 <빌리지>에서 벌어질 비극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빌리지> 후반부에서 크리스가 미아를 구출해 줬을 때, 미아는 크리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따집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가족을 지켜줄 거라고 했는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내 남편과 딸은 어디 있냐고요. 적반하장이 따로 없죠. 게다가 이미 말한 것처럼 일이 이렇게 커지고 비극적으로 흐른 건 미아가 솔직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빌리지>에서도 미아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요.
이번에도 미아에게 어느 정도 잘못과 책임이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파고들어 보면 미아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에단의 몸 상태에 대해 미아가 처음부터 알았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블린의 변종사상균에게 완전히 감염되었던 미아 본인의 몸도 완전히 치료가 되었다고 들었기 때문에 남편 에단의 몸에 이상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을 겁니다. 그렇기에 임신까지 결심할 수 있었을 거고요.
하지만 출산 이후에 에단의 몸이 평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겁니다. 실제로 <빌리지> 속 회상 장면을 보면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묻는 에단에게 미아가 '내가 걱정하는 건 당신이다'라고 말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바로 이때쯤 미아가 어떤 계기를 통해 에단의 몸 상태를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이제 와서 걱정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미아는 이미 자신이 속해 있던 비밀 조직 커넥션이 10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 아이에게 어떤 짓을 저지르고 그로 인해 어떤 비극이 벌어졌는지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목격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에단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미아로서는 충분히 상상이 갔을 겁니다.
미아는 커넥션의 정보를 크리스가 속해 있는 바이오테러 보안조직 BSAA에 제공하는 대신 에단과의 삶을 보장받고 있었습니다. BSAA의 적이자 국제적인 생체무기 암거래 조직 커넥션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있는 거죠. 그렇다고 BSAA를 무작정 안심하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7편의 사건은 BSAA가 커넥션 급습에 실패하면서 벌어진 일인 데다, BSAA는 이후에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베이커 농장의 사건을 은폐해 버리기까지 했으니까요.
미아의 이런 우려는 부분적으로는 맞았지만 또 부분적으로는 틀렸습니다.
BSAA는 실제로도 믿을 수 없는 조직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아의 가족을 보호해 주던 크리스는 그렇지 않았어요. 크리스 역시 BSAA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요.
커넥션은 실제로도 미아의 가족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커넥션과 그 배후에 있는 마더 미란다가 노린 것은 에단이 아닌 그들의 딸 로즈였습니다.
그리고 미아는 힘겹게 손에 넣은 행복을 뒤흔들 수 있는 이 일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몰랐지요. 미아는 로즈가 태어난 이후에야 에단의 상태에 대해 알았을 거고,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기도 전에 <빌리지>의 사건이 일어나니까요.
하지만 미아가 몰랐던 것들은 미아 입장에서는 정말 알 방법이 없었던 것들입니다. 미아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정말 진심으로 걱정하고 고민을 했을 뿐이고요.
결국 <빌리지>의 사건은 세부적인 디테일에는 차이가 있더라도 실제로 미아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래서 크리스가 자신을 구해줬을 때 자기 남편과 아이가 어디 있냐며 따지듯이 묻는 건 크리스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이블린의 안전한 확보에 실패하고 베이커 농장 사건의 책임을 은폐한 전적이 있는 BSAA에게 묻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정말 크리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했다면, 이후에 로즈의 양육권을 크리스에게 양보하지 않았겠지요.
미아도 <빌리지> 사건의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남편 에단에게는 사실을 말했어야 했죠. 하지만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가족일수록, 아끼고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쉽게 말하기 어려운 비밀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게다가 미아는 이미 7편의 사건에서 에단이 자기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를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한번 에단을 비극에 빠뜨릴 수 있는 사실을 쉽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겠지요. 그 고민의 대답이 미처 나오기도 전에 <빌리지>의 사건이 벌어진 거고요.
미아는 커넥션에서 일을 했고 많은 거짓말을 했으며 중요한 비밀들을 감춰왔고 그런 행동들이 많은 비극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아는 3년 동안 지옥 같은 대가를 치르고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가족과 무고한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은 뒤, 미아는 세계적인 규모를 가진 조직의 특수요원이었던 과거를 버리고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되었습니다. 자기가 속해 있던 조직의 악행을 인정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BSAA에 제공했고요. 그리고 고향을 떠나 낯선 이국으로 이주해 감시와 위협, 보호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오직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요. 자기 스스로도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죠. 이기적인 면모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지난 일의 여파로 인해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게 된 영향인 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러지 않을 사람도 없겠지요.
그리고 결국 크리스에게 로즈를 맡겼다는 건 그때까지 일어난 많은 사건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로즈가 자기와 함께 있을 때 더 위험하다는 걸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아 윈터스는 결코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과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통해 굉장히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어요. 흑도 백도 아니고, 그렇다고 플랫한 회색도 아닌, 얼룩진 회색 같은 캐릭터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훌륭한 캐릭터일 수는 있는 거죠. 다만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과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에단 윈터스이고 그의 서사에 집중한 덕분에 훌륭한 이야기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미아 윈터스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잘 드러나지 않지요. 특히 <빌리지>에서는 시작과 끝, 그리고 에단의 회상에서만 잠깐 등장할 뿐이고요.
그렇기에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다음 작품에 미아가 다시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주인공이라면 더욱 좋고요. 미아는 이미 에단보다도 먼저 총을 다룰 줄 알았잖아요. 가족을 위해 총을 버렸던 미아가 그동안 얽히고설켰던 양심과 죄책감, 잘못된 선택의 연쇄를 완전히 해결하겠다고 결심하면서 다시 총을 들고 등장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에단의 회상 속에 등장했던 미아의 대사를 다시 보면 미아가 걱정했던 건 에단의 몸만이 아닙니다 (게임 속 자막 번역은 조금 다릅니다만).
에단: 그럼 도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미아: 우리가 문제야, 에단! 당신이 문제라고!
Ethan: Well then, what are you worried about?
Mia: We matter, Ethan! YOU matter!
미아 스스로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고 있었던 거죠. 에단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BSAA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미아의 몸 역시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미아의 몸도 에단의 몸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그렇기에 미아 윈터스가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돌아온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해지네요.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와 DLC <섀도즈 오브 로즈>를 통해 아버지 에단 윈터스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어머니 미아 윈터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빌리지>의 에필로그 영상에 숨겨져 있던 에단 윈터스가 함께 돌아와도 좋겠지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캐릭터를 한 번 쓰고 버리는데 망설임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지만요.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 골드 에디션의 커버 이미지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은 (아마도) 미아 윈터스입니다. 미아의 관점에서 7편과 8편을 다시 곱씹어 보니 이미지 속 미아의 슬픔이 더 깊게 다가오네요.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