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거듭된 진화로 뛰어난 두뇌를 얻었지만 때문에 불행 또한 짊어졌다. 삶과 죽음만이 존재하는 자연에서 우리는 그사이의 낭만을 꿈꾸게 된 것이다. 안락과 행복, 사랑과 우정, 꿈과 희망. 나는 때때로 그러한 낭만이 실은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듭된 진화로 비대해진 뇌는 우리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의 깊이가 층층이 나뉜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생각은 경고음도 없이 우리를 삶의 본원적 질문에 도착시킨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지 이 행성의 다른 생명과 같은 삶과 죽음이란 것을 망각하면서 그사이의 의미를 찾기 위해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불안과 긴장을 야기하고 삶을 그 자체의 의미보다 심각한 것으로 둔갑시킨다. 생각의 과잉은 삶을 만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삶과 죽음으로 풍족한 이 성스러운 행성의 저주를 받았다고 믿는다.
인간의 비참함은 사랑을 갈구함에서 비롯된다. ‘나는 사랑 따윈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받고 싶지 않은 인간은 없다. 그래서 때때로 사랑은 우리를 구질구질하게 만든다.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못한다고 느끼면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에 매달리다 보면 결국 자신조차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행복을 위한 당위 조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적 한계 때문에라도 영원한 사랑은 존재할 수 없고 사랑으로 이뤄진 행복 또한 영원할 수 없다. 그래서 영원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랑은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그렇게 사랑은 형태도 없이 우리를 옥죈다. 우리가 그러도록 두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과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은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가르치고 배운다.
나는 사랑을 ‘태초적 외로움에 대한 생명의 반기‘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은 외롭다. 아니, 이 행성의 모든 생명은 외롭다. 외롭다는 것은 혼자여서가 아니라 홀로 서야 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상태이자 감정이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존재해야 하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부모와 형제, 친구와 애인 그 어떤 관계 속에서도 인간은 결국 홀로 서야 존재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혼자가 아니더라도 외롭다. 사랑은 그러한 태초적 외로움을 상쇄시켜 삶을 지속시키려는 생명의 노력이다.
사랑은 노력이다. 그뿐이다. 생사의 필수 조건도 행복을 위한 당위 조건도 아니다. 외로움의 전제 조건도 아니다. 그냥 살아가려는 노력의 일부다. 그러니 사랑으로 인해 외로울 필요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외롭고 살아있어 외로운 것이다. 따지면 생각보다 단순하고 별 것 아닌 것이다. 추우면 떨고 더우면 땀이 나는 것처럼 생리적인 것이다. 거듭된 진화로 비대해진 우리의 뇌는 실제 현실이 그러한 것보다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외로움도 그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