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근처의 아파트 단지가 재건축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80년대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인데 옆 동네에 지어진 신축 아파트의 깔끔함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보도블록이나 아스팔트는 거의 깨져있고 화단은 관리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이 오간 지름길이 나있다. 벤치의 페인트는 다 벗겨져있고 이사를 갔거나 온 이들의 폐가구가 화단 쪽에 잔뜩 쌓여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아직도 이런 아파트가 있냐며 신기해했을 정도다. 우리집에서 지하철 역을 가려면 이 아파트 단지를 지나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냥 낡고 오래된엄청 큰 아파트 단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근래 역 근처에 갈 일이 잦아 이 아파트 단지를 자주 지나다니게 됐다. 그 사이 나는 낡고 오래된 것의 매력을 알게 됐다. 이 아파트는 초록이 무성하다. 정말 울창하다는 표현이 딱 맞게 봄이 되고 여름이 오면 아파트 단지 전체가 울창한 숲이 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화단에는 잡초와 벌레가 생기고 울창한 나무를 집으로 삼는 새들이 삼삼오오 모여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고 지저귄다. 나는 역을 가려는 것뿐인데 어떤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나 새들의 지저귐을 가만 듣게 된다. 오래된 것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지으면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새 것은 관리를 받고, 사람의 관리를 받으면 울창함은 사라진다. 빈틈없이 잘 맞춰진 보도블록 사이로 이름 모를 잡초의 꽃이 필 수 없고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가지가 잘린 나무들은 새들의 안식처가 될 수 없다. 새로운 것은 깔끔하지만 낡고 오래된 것에는 자연이 깃든다. 우리는 콘크리트 위에서 태어나지만 땅에 발을 붙인 이상 자연이 주는 안락함을 거부할 수 없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처분 대상이다. 허물어지거나 혹은 새로운 것을 위한 좋은 투자처가 된다. 나는 시간의 한 틈에 살아가며, 허물어질 것을 그리워하고 새로운 것을 기대할 것이다. 단지, 때때로 그 간극에서 어찌할지 몰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멈춰서 주어진 것을 있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언젠가는 오래되고 낡아질 것을 애틋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