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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Eui Oct 08. 2020

정상궤도를 이탈한 정상

이래도 저래도 정상입니다.

 미지의 세계로 쏘아 올려진 인공위성은 정상궤도에 이르지 못하면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없다. 과학자가 계산한 범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공위성은 값비싼 우주 쓰레기가 될 뿐이다.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인공적으로 설계된 기계에게 오차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차가 있는 삶은 오직 살아있는 것의 특권이다.

 한국은 불확실성 회피 성향이 높은 나라다. 모호하고 불확실해 혼란스러운 상황보다 규격에 맞춘 듯 잘 정돈된 상황을 선호하는 사회. 높은 도덕성과 규제를 선호하는 사회. 모든 것이 정상 궤도에서 움직이길 바라는 사회. 즉, 사회가 규정한 정상궤도를 벗어날 때,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

 그래서 우리는 정상궤도에서 멀어지는 것 같을 때, 스스로를 여인간이나 버려진 쓰레기처럼 치부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오차 있는 삶을 사는 것에 자괴감 느낄 필요 없다. 살아있는 것은 기계처럼 목적을 위한 수단일 수 없고 예측 가능하고 통제되는 것이 아니므로 정상궤도를 이탈한다 해도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다.


 전 국민이 새해마다 다 같이 나이를 먹는 이 기묘한 나라에서 개인의 오차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94년 1월에 태어난 나는 빠른 년생으로 93년생과 함께 입학하지 않고 제 해에 맞춰 입학했다. 그 이유로 나는 매년 새 학기 새 친구들에게 1년을 꿇은 것이 아님을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신입생 오티에서 나는 재수한 것이냐는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1~2월생이 같은 년생들과 함께 입학하기 위해서는 발달에 문제가 있음을 입증하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했다고 한다. 내가 비록 6살 때까지 어눌하게 말했을지언정 8살에는 네 살 터울의 형제로부터 배운 욕도 능숙하게 했기 때문에 나의 발달에는 중대한 문제가 없었음은 분명히 하고 싶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식이 다른 학생과 달리 두 달 늦게 입학하는 정당성을 증명해야 했고 처방약을 받듯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어 학교에 제출야 했다.

 우리 사회가 일반적인 행태를 벗어나는 것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비정상으로 규정된 이에게 끝없는 해명을 요구하는 희한한 구석이 있다는 것은 비단 나만의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에서 괜한 반항심에 엇나간 마음으로 살지 않으려면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정상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인데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 것이 특별한 변동變動이 없을 수 있겠는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에게 정상이란 결국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다. 우리 살아 숨 쉬는 한 제각각의 오차를 가지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궤도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사회가 무엇을 정상이라 칭하든 그것은 모범택시처럼 타도, 타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다. 무엇을 타는지보다 중요한 건 자신의 경로를 설정하는 일일 테다. 

*'빠른 년생 입학'은 2008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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