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편함에서 시작해서, AI 시대를 여는 열쇠까지
종종, 들리는 흔한 말이다.
“제품은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품질은 반드시 제품이 책임져야 한다.”
언제나 must라는 강한 어투가 따른다.
나는 여기에 늘 불편함을 느껴왔다.
그 불편의 정체는 먼저 위계였다.
Must라는 말은 단순히 “그래야 한다”는 권고가 아니라, “무엇이 무엇보다 앞선다”는 서열을 전제한다.
그리고 그 서열의 우선순위는 단순한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그 말을 한 사람이 놓여 있던 시대의 가치관, 그리고 그가 겪은 경험과 환경을 반영한다.
내가 특히 불편했던 것은, 이 Must라는 말이
마치 변치 않는 고정된 질서처럼 들렸다는 점이다.
역사와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규범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 법칙처럼 굳어져 다가오는 그 느낌이 거슬렸다.
그래서 오래된 선언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
이 역시 단순한 미학적 구호가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가치관의 언어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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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건축 10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건축물은 견고함(Firmitas), 유용성(Utilitas), 아름다움(Venustas)을 갖추어야 한다.”
그에게 Must는 견고함 유용성 아름다움의 순서였다.
무너지지 않는 구조가 먼저이고, 그 위에 쓰임새가 있으며,
마지막에 비로소 아름다움이 따라온다.
고대의 언어는 분명했다. “안정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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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초고층 빌딩이 솟아오르던 시카고.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고층 사무소 건물의 예술적 고려」에서 선언했다.
“형태는 언제나 기능을 따른다. 이것이 법칙이다.”
이 말에서 Must는 기능이 법칙이고 형태는 종속이라는 산업화 시대의 가치관이었다.
구조적 안정과 효율성이 장식보다 앞서는 것이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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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번의 제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유기적 건축』에서 말했다.
“형태와 기능은 하나가 되어, 영적 결합을 이뤄야 한다.”
라이트는 형태와 기능의 통합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기능 없는 형태는 무의미하다는 기능 우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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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그로피우스는 1919년 바우하우스 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시각 예술의 궁극적 목표는 완전한 건축이다.”
그의 Must는 건축(기능적 전체)이 예술 위에 서야 한다는 가치관이었다.
개별 예술은 건축이라는 완성체 안에 흡수되어야 했으며,
형태는 기능적 건축 속에 통합되는 하위 가치로 위치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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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좋은 디자인의 10원칙”에서 이렇게 말했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그것은 제품을 실제보다 더 혁신적이거나, 더 강력하거나, 더 가치 있어 보이도록 꾸미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가능한 한 적은 디자인이다. 덜 하지만, 더 낫게.”
람스의 Must는 정직함과 절제였다.
형태는 기능을 속이지 않고, 최소한으로 드러내야 했다.
정직성이 미학적 치장보다 앞서는 윤리적 가치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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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은 『일상적인 것들의 디자인』에서 말했다.
“좋은 디자인은 나쁜 디자인보다 알아차리기 훨씬 어렵다. 좋은 디자인은 우리의 필요에 잘 맞아,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우리를 돕는다.”
“디자인이 나쁘면 사람들은 자신을 탓하지만, 잘못은 디자인에 있다.”
노먼의 Must는 사용자 이해였다.
좋은 디자인은 과시하지 않고,
사용자가 기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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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알렉산더는 『패턴 랭귀지』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패턴도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패턴은 다른 패턴들이 지지해줄 때에만 세상 속에 존재할 수 있다.”
알렉산더의 Must는 관계와 연결이었다.
무엇이 더 우월한가를 따지는 대신,
패턴들이 서로를 지지할 때 전체가 살아난다고 보았다.
즉, Must는 위계가 아니라 관계적 가치관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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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를 거치며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불편하게 느낀 Must는 단순한 당위가 아니라,
말에 담긴 관점에 살아 있는, 가치관이었다.
나는 내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이 불편했던 것이다.
이런 흐름과 다양란 가치관을 검토했다. 어떤 시점을 대표하는 관점은, 그 언어가 태어난 시대가 주인인건 그리 어색하지 않다. 가치관은 결국 필요를 충족 시키기 위해 태어난다.
• 비트루비우스: 안정 > 유용 > 아름다움.
• 설리번: 기능 > 형태.
• 라이트: 결합, 그러나 기능 우위 내포.
• 그로피우스: 건축 > 예술.
• 람스: 정직성 > 치장.
• 노먼: 사용자 이해 > 미학.
• 알렉산더: 우위가 아닌 관계와 조화.
그리고 나는 나에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언어는 “관계(상호작용)이 먼저다.”
나에게 Must는, 위계적 질서가 아니라 상호성이다.
내 사고의 뿌리에는 물리학적 상호작용에 대한 직관이 있다. 세계와 나는 끊임없이 인코딩과 디코딩을 주고받으며 이해한다. 그때 그때 다르게.
따라서 내게 중요한 사실은,
그때의 나는 그때에만 존재하듯, 그 상호작용은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
Must라는 표현, 절대 불변의 고정된 법칙이, 혹은 당위, 혹은 지켜야 하는 규율 처럼 느껴지는 그것의 본질은, 각 순간마다 드러나는 관계적 가치의 질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날 불편하게 한다는걸 세삼, 다시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 내가 적는 이 언어, 이 언어에 담기는 것 역시 나의 가치관, 그리고 그걸 태어나게한 어떤 필요(들)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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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열린 질문 — 새로운 Must, 새로운 가치관
요즘 LLM 때문에 이런 저런 상상들을 하게 된다.
그중에는 이런 질문도 있다.
AI 시대의 디자인에서 Must는 무엇이 될까?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는 대화형 인터페이스와 알고리즘 속에서 Must 는 무엇일까? 거기에 이 시대를 열 비즈니스가 있지 않을까?
나의 이 탐색 경험(LLM과 함께한 이 협력적 학습)을 돌아 본다면, 그건 결국 “필요” 혹는 “욕망”에서 출발 해야 하지 않을까?
우월과 열등의 서열 대신, 설명가능성, 신뢰성 같은 것들을 낳은 그 “필요”와 “욕망”은 무엇일까.
내가 그걸 찾는 방법은 아마 “관계들의 상호작용”을 단서로 찾을 거 같다. 마치,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자신의 책(A Pattern Language 에 삽입한 그림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