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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묘사하기 & 감각 자극 글 쓰기

정윤작가님과 함께하는 소설쓰기 수업 숙제

by 해이

1) 자세하게 묘사하기


늘 그렇듯 퇴근길의 교통체증은 어마어마했다. 눈 앞으로 펼쳐지는 차들이 내뿜는 경적소리와 후미등의 불빛은 귀와 눈을 아릿하게 만들었다. 길게 뻗은 도로위는 하나의 강과 같았다. 차체마다 빨간 지느러미를 달고 물살을 거슬러오르는 듯 브레이크 등이 이어져 붉은 띠를 만들었다. 왕복 8차선 도로의 두번째 차선을 차지한 내 차의 앞유리에는 붉은 저녁 노을이 층층이 겹쳐 번졌다. 그 노을은 곧 내 얼굴 위로 흩어져 발그레한 홍조를 만들었다. 파란빛이 아직 남아있는 하늘의 가장자리, 그 아래로 살구빛과 석류 알갱이같은 붉은 빛이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날씨 예보에서 비는 없을 거라 했으니 이 강은 그저 빛으로만 넘쳐 흘렀다.


오른편 빌딩의 유리마다 노을을 수직으로 쪼개 층층이 나눠 담고 있었다. 몇몇 창에는 사무실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광등 불빛이 노을과 겹쳐지며 미색의 수조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그 수조 속에서 모니터와 키보드 위를 헤엄치고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업무를 마무리하고 비늘같은 코트를 입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그림자가 지는 태양을 업고 인도를 따라 길게 늘어지는 것을 상상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한마리의 금붕어처럼 지친 하품을 내쉬며 눈을 꿈뻑대고 있을 것이다. 곧 도착한 엘리베이터는 사람들을 태워 오르내리며 초록 불빛을 깜빡일 것이고, 그것은 창밖을 비추며 또 다른 별자리처럼 도시에 박힌다.


왼편 빌딩들은 마치 블럭을 쌓아 올린듯 정교한 사각형들이 줄지어 있었다. 로비에서 퍼져 나오는 노르스름한 조명들은 마치 오븐속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나오면 그 조명은 코트의 소매와 단추마다 매달린다. 로비 앞 인도에 잠깐 정차한 오토바이 배달 기사의 검은 헬멧 위로 뒷 차의 헤드라이트가 불빛을 잠시 얹었다 떼어냈다. 헬멧의 둥근 곡면이 빛을 모으고 흩어지며 이곳에서 흐르는 시간이 마치 눈에 보이는 입자처럼 흘러갔다.


운전석 등받이에 깊게 앉은 나는 손을 뻗어 히터를 켰다. 11월로 들어서자 이제는 제법 공기가 차가웠다. 요란한 바람소리를 내며 연신 뜨거운 바람을 내뿜던 히터가 잠시 조용해졌다. 스피커 너머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1월로 들어서자마자 영하의 온도를 기록하는 등 갑작스러운 기온 하락을 보이고 있는데요, 각자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할 때입니다. 이런 기온을 반영하는 듯 대중교통 보다는 자가용의 이용이 대폭 늘어난 모습입니다. 오후 6시 현재, 도로마다 정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꽉 채운 도로만큼이나 딱딱한 아나운서의 발음이 관자놀이를 둔탁하게 때리는 듯했다. 서둘러 라디오를 끄고 차창밖을 바라봤다.


1미터도 채 진전이 없는 도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정면에 위치한 승합차의 선팅이 되어 있지 않은 창문 안으로 한 가족이 보였다.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 아이는 몸을 들썩이며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은 여성은 그런 아이를 보며 박수를 치느라 바빴다. 그들 앞으로 룸미러에 매달린 가족사진도 덩달아 흔들렸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노을 빛이 그들의 은빛 차를 비추며 도로 위로 흩어졌다. 하얀 차선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막혀있는 차들 사이로 커다란 배달통을 매단 음식 배달 오토바이가 쌩 하고 지나갔다. 개조를 했는지, 오토바이의 소음이 귀를 강하게 때렸다. 덜컥거리는 번호판이 위태하게 흔들렸다. 오토바이가 지나가자 소란했던 8차선 도로는 다시 정적이 밀고 들어왔다. 잠시 흔들렸던 공기가 원래의 박자를 되찾았다. 멀리서 신호등이 깜빡였고, 듬성듬성 벗겨진 횡단보도 위로 퇴근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뛰어갔다. "탁탁탁" 빠른 구두굽 소리가 내 차의 본네트 위를 흔들고 지나갔다.

차 안의 공기는 여전히 탁했고, 겨울로 향하는 온도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도시의 온도는 그렇게 한 시간 사이에도 몇 번이고 바뀌었다.




2) 감각 자극 글쓰기


밀려드는 업무는 관자놀이를 쉬게 두지 않았다. 으슬으슬한 한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더니, 날카로운 도구로 두개골을 찍어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서랍 깊숙이 묵혀두었던 타이레놀 두 알을 꺼내 삼키고 나서야 겨우 잦아들었다.


거울 속의 나는 꽤 볼 만했다. 씻자마자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젖은 머리로 잠든 탓에 한쪽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고,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은 며칠째 이어진 전쟁의 흔적처럼 두텁게 새겨져 있었다. 찬 공기가 스며드는 방 안에서 여름 내내 넣어두었던 경량패딩를 꺼내 들었다. 옷자락에서 장롱 냄새가 났다. 오래 닫아둔 서랍을 여는 듯한 쿰쿰하며 비릿한 냄새였다. 누렇게 색이 바랜 캡모자를 집어 들자 손등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와 함께 맞췄던 커플 모자였다. 유행을 따라가겠다며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날의 소음, 사람들의 웅성임, 그리고 그의 웃음소리까지. 영원할 것 같던 건 너무 쉽게 사라졌다. 하지만 몇 해가 지나도 가슴 한쪽에 자리잡은 추억 비슷한 것이 아직 남아 있었다.


냉장고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 계란 서너알, 바닥만 채운 물 한 병. 문을 닫자 낡은 고무 패킹이 찌걱 소리를 냈다. 배 속에서 공기가 끓는 듯한 소리가 났다. 커피와 삼각김밥으로 버텨온 며칠 동안 허기와 피로가 뒤섞여 몸이 기울었다. 패딩을 걸치며 숨을 내쉬자 장롱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집 밖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 바람이 이마를 스치자 살짝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외투를 여미며 걷다 보니 국물 냄새가 어디선가 흘러왔다. 파와 마늘의 향, 끓는 소리, 김이 서린 유리문.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식당 안은 북적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뜨거운 물수건이 손에 닿았다. 손등을 데우는 따뜻한 물수건을 이리저리 문지르고 있자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빛 속에 익숙한 실루엣이 서 있었다. 훤칠한 키, 넓은 어깨선, 걸음걸이.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던 여자.

그녀의 짙은 버건디색 코트에 금단추가 반짝였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웨이브 머릿결이 조명빛을 받아 윤이 났다. 코끝엔 달콤한 향수가 닿았다. 그 향이 기름기 낀 공기 사이를 뚫고 들어와 잠깐 머리가 멍해졌다. 그는 여자의 코트를 받아주고 의자를 빼주며, 물컵을 먼저 채우고 수저를 가지런히 놓았다. 익숙한 듯한 손놀림이 어딘가 따가웠다.


식탁 위 전등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노랗게 물들이고, 그 빛이 유리잔에 부딪혀 반짝일 때 내 젓가락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그는 함께 있을 때 늘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사람이었다. 식탁 위 음식보다 게임 화면이 더 중요하던 사람. 하품을 하며 나를 흘끗 보던 그 얼굴이, 지금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상대의 말에 집중을 하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을 맞추고 있었다. 그 눈빛을 따라가다 시선이 멈췄다. 여자의 손톱은 유리잔보다도 투명하게 빛났다. 그 손끝이 그의 팔에 닿자 그는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 웃음 소리가 공기를 따라 퍼지며 이윽고 내 귓가에 닿았다.


식탁 위 국물이 팔팔 끓었다. 김이 얼굴로 밀려들었다. 뜨거운 김이 이마를 덮자 눈이 잠시 시큰했다. 수저를 들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국을 한 입 떠 넣자 혀끝이 데였다. 입천장이 화끈거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내 앞의 그릇은 아직 반도 비워지지 않았다. 식당 천장의 형광등이 유난히 밝은 흰빛을 퍼뜨렸다. 그 빛이 내 모자챙 위로 떨어져 눈이 부셨다.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잠시 내 입술이 마른 공기를 가르며 떨렸다. 냄비 뚜껑이 덜컹거렸고, 그 소리에 덮여 내 심장의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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