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의 금빛 식탁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서 뜨겁게 살아 있었다.
기름이 흐르는 고기, 설탕을 얹은 과자, 눈을 감으면 향기만으로 배가 불러오던 파이.
몸을 삼켜버리던 침대와, 끝에서부터 향기가 올라오던 이불.
하녀들이 웃을 때마다 흔들리던 귀걸이와 보석 소리까지.
그 며칠은 너무도 짧았다.
하지만 짧아서 더 달콤했고, 달콤해서 더 치명적이었다.
전처럼 자유로웠지만, 이제 자유는 배고픈 말이었다.
돌바닥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는 밤마다 그는 생각했다.
한 번만 더 그 자리에 앉고 싶다.
그 자리.
왕좌.
자유보다, 정의보다 먼저 떠오르는 단어.
그는 그 자리를 다시 손에 넣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방법이 필요했고, 방법은 단 하나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으로 해결이 되는 것 같았다.
공작.
멈춰 있는 듯 보이는 눈빛, 언제나 계산을 끝내고 미소 짓던 입꼬리.
그 사람이라면 움직일 수 있다.
거지도, 왕도 아닌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
자신과 비슷한 냄새를 가진 사람.
그는 공작의 저택을 찾아갔다.
하지만 문 앞에서 그는 버림받은 개처럼 내쫓겼다.
"너 같은 거지에게 공작님께서 시간을 내어주실 줄 아느냐? 썩 물러가거라!"
문은 닫히고, 거지는 모욕과 먼지 속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담장을 따라 걸었다.
그날 밤, 그는 저택 담을 넘었다.
손바닥은 돌에 긁혀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황홀하도록 향기로운 장미의 향과 따스한 등불이 마치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허리를 굽혀 정원을 지나 저택의 가장 조용한 곳에 위치한 공작의 서재 아래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공작님."
그 부름에 공작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찾아올 줄 알았다."
거지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저를 왕으로 만들어주십시오."
공작의 눈이 찢어질 듯 좁아졌다.
"왕으로? 그 자리를 버린 건 네가 아니었나."
"버린 게 아닙니다. 빼앗긴 겁니다."
거지는 한 걸음 다가섰다.
"누가 왕인지, 누가 거지인지. 그날은 단순히 출신이 갈랐을 뿐입니다. 하지만 공작님은 알고 계시죠. 누가 더 왕에 어울렸는지."
공작의 입꼬리 근육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렇다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무엇인가"
기다렸다는 듯, 거지는 준비해 온 계획을 꺼냈다.
"왕좌에 앉혀주신다면, 실권은 전부 공작님께 드리겠습니다."
촛불이 작게 흔들렸다. 공작은 말없이 그를 보았다.
거지는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공작님은 왕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왕보다 위에 서면 되는 것이죠."
공작의 눈빛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거지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군대도, 세금도, 법도... 모두 공작님이 움직이실 겁니다. 제 이름만 빌리시면 되는 거죠."
공작은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었다.
"계승권은?"
"제가 왕이 되면, 후계자는 공작님으로 공식화하겠습니다. 저는... 오래 살 자신이 없습니다."
거지는 고개를 떨구며, 침묵 뒤에 단어를 심었다.
"사람들은 저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그 말의 일부분은 진실이었다. 사람들은 왕자였던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왕자'인 그를 좋아했을 뿐. 하지만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공작에게 귀가 열릴만한 말이면 무슨 말이든 뱉어낼 뿐이었다.
"그리고..."
거지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왕족만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들, 지하 문서고의 정보들.. 제가 본 것 중에는 공작님이 원하실 만한 게 많습니다."
공작의 움직임이 멈췄다.
"왕이 되는 것보다 더 큰 권력은, 왕의 비밀을 가지는 것입니다."
거지는 천천히 미소 지었다.
"그 비밀을, 저는 공작님께 모두 드릴 것입니다."
서재 안의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촛대 위의 불꽃만 소리 없이 흔들렸다.
잠시 후 공작은 종이를 꺼내고 펜을 들었다.
"계획을 말해보거라."
그날 밤, 둘은 아주 조용하고, 아주 비밀스럽고, 아주 위험한 거래를 만들었다.
거지는 왕이 되어 돌아오고, 공작은 왕보다 위의 사람이 되는 거래.
양피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적혔다.
거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기 이름을 적었다. 공작은 깔끔하고 위엄 있는 필체로 사인을 남겼다.
그는 성공을 직감했다. 마치 침대의 향기로운 이불이 다시 그의 무릎에 닿는 것 같았다.
드디어 회의의 날이었다. 왕국의 고위층 모두가 모이는 자리.
거지는 밤새 준비해 둔 경로로 궁에 잠입했다. 심장은 전쟁 북처럼 뛰고 있었다.
왕좌 위에는 그가 잘 아는 얼굴이 앉아 있었다. 한때 거울처럼 마주 서서 옷을 바꿔 입었던 소년. 그 소년은 이제 왕의 얼굴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공작이 있었다.
거지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곧 왕좌는 뒤집힐 것이다.
공작이 일어났다. 정적이 회의장을 감쌌다.
"폐하."
왕자가 공작을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역자를 잡아들여라."
수십개의 칼집에서 칼들이 일제히 빠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근위병들이 달려왔다.
거지는 도망칠 틈도 없이 끌려 나갔다.
회의실 한가운데, 공작이 양피지를 펼쳐 들었다.
"이 거지는 왕실을 사칭하고, 반역을 꾸민 죄인입니다!
여기 그의 서명과 함께 그 음모가 적혀 있습니다."
거지가 자랑스럽게 써넣었던 그 문서.
자신이 왕이 되겠다며 들고 간 바로 그 서약이 그를 반역자로 증명하는 종이가 되어 있었다.
왕은 조용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표정도, 말도, 연민도 없는 얼굴.
그러다 아주 짧게, 아주 옅게 미소를 지었다.
이해하는 사람만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네가 다시 올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에게 미리 일러두었지.
예상대로 너는 다시 왔구나."
지하감옥은 처음보다 훨씬 더 차갑게 느껴졌다.
돌바닥은 냉혹했고, 공기엔 습기와 절망 냄새가 스몄다.
거지는 벽에 머리를 기댔다.
하지만 눈 안쪽에서는 여전히 금빛 식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놓칠 수 없는 맛, 버릴 수 없는 향기.
그것들이 그를 이곳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자유는 배를 부르게 하지 못한다.
꾀는 그들의 다른 출발선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리고 부는 한 번 맛보면 평생 따라붙는다.
그는 왕이 되고 싶어 공작을 찾았지만,
공작과 왕은 이미 서로의 자리를 알고 있었다.
이 게임에서 처음부터 바보였던 사람은 그 하나뿐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돌바닥은 거칠었고, 이불은 없었다.
이제 그가 다시는 잊을 수 없는 것은
왕관이 아니라,
향기로우며, 따뜻한 이불이었다.
그것이 부가 남긴 흔적이었고, 그가 치른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