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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누가 진짜 야수였는가

by 해이




성 밖 어느 마을에서 벨은 늘 같은 말로 설명되곤 했다.


"예쁘지만, 조금 이상한 아이."


사람들은 그녀의 책 읽는 습관을 이상하게 여겼다. 벨은 그 평가를 즐겼다. '조금 이상한 사람'은 언제나 남들보다 먼저 면죄부를 받는다. 서툴러서 그랬겠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랬겠지. 벨은 그 틀 안에서 실수와 악의를 섞어 썼다.


아버지가 늙어갈수록 그는 더 자주 벨에게 사과했다.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도.


"내가 어제 또 소리 질렀니? 미안하다, 벨."


벨은 미소를 띄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버지. 많이 피곤하셨잖아요."


어제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잠들었으니까. 누가 소리쳤는지는, 벨만이 알고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알고 있었다. 말 몇 마디면 어제의 사건은 쉽게 다른 모양이 됐다.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옮겨 붙고, 피해자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벨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걸 지루해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숲 속 성으로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벨은 망설이지 않고 그곳으로 갔다.

그게 걱정이 되어서가 아니라, 흥미로워서였다.


"괴물의 성이라니."


괴물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자신보다 더 능숙한지, 아니면 미숙한지.


성 안에서 그녀가 처음 마주한 야수는, 소문과 달랐다.

커다란 몸, 발톱, 이빨. 겉모습은 분명 괴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벨은 눈을 먼저 봤다.

두려움에 익숙한 눈이었다. 상처를 내기보다, 입을 다물고 물러나는 쪽을 택해온 눈.


"아버지를 돌려보내 주세요."


벨이 말했을 때, 야수는 생각보다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대신 남는다면."


조건은 간단했다. 이 성에 머무르기.

그 대가로, 늙은 남자는 살고, 젊은 여자는 갇힌다.

겉으로 보기엔 잔혹한 거래였지만, 벨은 속으로 계산했다.

늙은 아버지는 이미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성은, 이 괴물은,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벨이 성에 머물기 시작하자, 야수는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벨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야수가 길게 준비한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웃어 보였다.


"이 성은 생각보다 따뜻하네요."


야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따...뜻하다고?"

"네. 저를 잡아둘 계획이 이 정도라면, 충분히 상냥하신 편이죠."


그녀는 "잡아두다"라는 단어에 웃음을 섞어 얹었다. 농담처럼 들리도록.

야수는 그 말의 어떤 부분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했다.




며칠 뒤, 벨은 성의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수님이 어젯밤 또 악몽을 꾸셨어요. 소리 지르시더라고요. 혹시 예전에도 자주 그러셨나요?"


야수는 그날 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잤다.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몇 번 그러셨던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의 기억은, 방향을 제시해주면 그쪽으로 기울었다.

벨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야수가 식사 자리에서 포크를 떨어뜨리면, 벨은 가만히 길게 한숨을 쉬었다.


"괜찮아요. 일부러 그러신 건 아니니까요."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야수가 실수했다'는 사실만 확실하게 남겼다.

야수가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에는 벨은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또 화나셨나 보네요. 제가 잘못했어요.."


야수는 당황해했다.


"난 화난 게 아니야. 단지..."

"괜찮아요."


그녀가 말을 잘랐다.


"저한테 화내셔도 돼요. 어차피 이 성에 갇힌 건 제 선택이니까요."


그날 밤, 야수는 처음으로 스스로를 의심했다.

정말로 자신이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던가.


날이 지날수록 벨은 자신의 그림자를 조금씩 넓혀갔다.

꽃을 모아오라는 부탁은 청이 아니라 명령이 되었고, 산책 동행 요청은 보고 의무처럼 변했다.

하인들은 점차 벨의 얼굴빛을 먼저 살피고 움직였다.


"벨 양이 또 속상해 보이네. 야수님이 뭔가 실수를 크게 하셨나..."


입 밖으로 나온 추측은 곧 사실이 되었다.


"제가 예민한 건 알아요."


벨은 야수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무서워요."

"내가... 널 무섭게 한다고?"


야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아니에요. 그냥,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예민해서 그럴 거예요. 그래도... 제가 울면, 성 사람들은 항상 당신이 큰 소리를 냈을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전 절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녀는 사실을 말했다.

그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울기 전에 적당한 말을 골라두었을 뿐이다.


어느 날, 야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벨, 내가 그렇게 나쁘냐?"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대답보다 무거웠다.


"아니에요. 당신은... 상냥하세요."


말과 말 사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공백이 길게 드리워 있었다.

야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상냥한 괴물인지, 숨은 폭군인지.

결국 그는 자신이 괴물이라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그 편이 벨을 덜 다치게 할 것 같아서.




어느 겨울밤, 성에 마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횃불을 들고, 창을 세우고,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외쳤다.


"괴물에게 홀려 잡혀간 마을 처녀를 구하러 왔다!"


그 말에 벨은 놀란 듯 야수 뒤로 숨었다.

하지만 눈빛은 침착했다.


얼마 전, 그녀가 마을 청년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리면 충분했다.


"성 안에는 끔찍한 괴물이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 안에도 좋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아니면 아무도 그걸 보지 못하겠죠."


귀를 기울이고 있던 청년은 분노했다.


"그놈이 널 가두고 있는 거냐?"


벨은 곧장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를 떨었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제 선택이에요."


그 대답이 분노를 완성했다.

사람들은 '자기 탓을 먼저 하는 피해자'를 가장 잘 믿었다.

성 앞에서 마을 사람들의 외침이 커질수록, 야수는 몸을 웅크렸다.


"벨, 난 그들을 해칠 생각이 없어."

"알아요."


벨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걸... 그들이 어떻게 믿게 할 수 있죠?"


그녀의 말은 칼날이 아니었다.

단지 사실을 묻는 질문처럼 들렸다.





성문이 부서지고,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야수는 마지막까지 발톱을 세우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맞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순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창끝이 몸을 꿰뚫고, 피가 바닥에 번져갈 때까지도 그는 한 번도 포효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괴물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벨에게만은.


야수가 쓰러진 뒤에야, 벨은 그에게 달려갔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이제 괜찮아요, 벨 양. 괴물은 죽었어."


사람들이 말했다.

벨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그는... 괴물이었어요."


잠시의 침묵 후 한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저에게는,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어요."


그 말은 야수를 위한 변호처럼 들렸다.

그러나 뇌리에 남는 건 "괴물이었다"는 한마디였다.


사람들은 돌아갔다.

어떤 이는 그녀를 동정했고, 다른 어떤 이는 그녀의 용기를 칭찬했다.

괴물에게서 살아 나온 아름다운 여인은 언제나 영웅 쪽에 가까웠다.


성에 혼자 남았을 때, 벨은 야수의 차가운 손을 잠시 잡았다 놓았다.

그의 눈은 감지도 못한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거기엔 어떤 비난도, 원망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당신은 끝까지 좋은 사람이었네요."


벨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죽은 거겠죠."


창밖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떠나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괴물은 사라지고, 미녀는 살아남았다.

이야기는 그렇게 전해질 것이다.

벨은 깨끗한 손으로 촛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미녀도, 피해자도 아니었다.

가장 조용한 괴물 한 명이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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