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어.
아침엔 유난히 높아진 하늘이 눈부셨고,
낮엔 따스한 햇살이 골목마다 흘러내렸지.
해가 기울면 붉은 낙엽이 바람에 흩날려
길 위에 짧은 그림자를 남겼어.
소년은 그 길 위에 서 있었어.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바라보면 금세 사라지는 게 가을빛이었지.
그래서 소년은 다만 눈으로만 담아두었어.
찰나가 주는 선물은 손에 쥐는 게 아니라
가슴에 남기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
저녁이 깊어질 무렵쯤 풀숲에선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어.
옅은 울음이었지만
조용한 마을을 메우기엔 충분했지.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을밤이 영원을 품고 길어질 것만 같았어.
그렇게 소년의 위로 보름달이 떴어.
하얗게 빛나는 둥근달은
지붕 위와 마당, 소년의 눈동자까지 환히 비췄지.
소년은 그 빛을 올려다보며 생각했어.
이 순간도 곧 사라지겠구나.
소년은 달빛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어.
사라질 줄 알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지.
잡히지 않는 순간이지만 그걸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했거든.
가을은 그렇게 찰나를 품고 있었어.
짧았지만 지문에 남을 만큼,
눈 속에, 마음속에 깊이 새겨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