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은 언제나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전시는 늘 화이트 큐브 즉,
흰 벽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조명이 정돈되고, 작품과 작품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다.
그래서 전시는 늘 ‘준비된 공간’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시간,
푸른빛 위에 분홍이 얹히고,
그 위에 다시 회색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색은 분명 바뀌고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변화인지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색은 언제나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라데이션은 가장 조용한 변화다.
눈에 띄게 흔들지 않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다만 조금씩, 분명히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다.
햇빛이 창가에서 바닥으로 옮겨갈 때,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이 벽에 머물다 사라질 때,
모든 순간에도 그라데이션은 존재한다.
전시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그라데이션은 색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는 장면들에 시선을 둔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속에도,
설렘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감정에도,
좋아함과 무심함 사이에도 그라데이션은 있다.
우리들도 늘 어떤 상태의 ‘중간’에 있다.
하지만 그 중간은 애매함으로,
혹은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쉽게 밀려난다.
그라데이션은 그런 순간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도 괜찮다고 말하는 듯하다.
명확한 결론보다는 서서히 바뀌는 것들의
움직임이 그라데이션처럼,
이 연재는 특별한 작품을 소개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 곁에 있지만,
전시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던 장면들을 모아 본다.
온 세상이 갤러리라면,
그 첫 번째 전시는 조용한 변화,
그라데이션(Gradation) 이다.
2023 - 2025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