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이 부족한 건 내 탓이 아니었다
각종 미디어에서 보는 ADHD는 정답이라도 있는 양 모두 같은 모습일 것만 같은데, 실제로는 저마다 참 다른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ADHD 커뮤니티 내에서도 '그런가?' 내지는 '나와는 참 다르군' 하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나의 ADHD는 등급으로 매긴다면 어느정도 심한걸까, 이런 증상은 ADHD일까 아닐까? 내가 궁금한 것처럼 커뮤니티 내에서도 많이들 궁금해서 '~~인 건 ADHD 증상일까요?', '님들은 ~~하신가요?' 라는 질문이 자주 올라오는데, 사실 모든 것에 속 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병원에 가서도 딱 떨어지게 이렇다 말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약을 처방받는 것도 ADHD여서가 아니라 ADHD가 생활에 불편을 일으켜서 상황 개선이 필요할 때 라는 전제로 받는다. 거기다 약의 효과도, 부작용도, 사람마다 다 달라서 자신의 몸으로 생체실험하듯 약효를 체크해가며 조절해야 한다. 그러고보면 병원마다 같은 사람을 놓고도 ADHD니 우울증이니 의견이 분분한 것도 이해가 간다.
그렇기에 이렇게 나의 ADHD에 대해 써나가는게 사실 조심스럽다. 더구나 1년이 넘게 치료를 해나가다보니 또 처음과는 다른 무언가를 깨닫게 되어 관점이 계속 바뀌니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런 기록들이 모여 조금의 실마리라도 되길 바라며 글을 남겨보려한다.
지난 1년 간 치료를 시작한 뒤로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모든 변화가 ADHD 치료의 효과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후로 내 생활이 나아진 것만은 사실이다.
가장 먼저 좋아진 것은 이전 글에서 말했듯 운전이다. 평생을 초보운전으로 살았는데, 치료 받은지 얼마 지나지않아 초보티를 벗게 되었다. 시내운전을 피하려 항상 전철로 다녔던 병원도 이제는 운전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문제는 단순히 운전을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운전이 집중할 수 있다 없다였던 듯 하다. 그간 운전을 해내기엔 내 주의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모든 것이 자극이 되었던 탓이 크다. 멀리서 지나가는 차에도 인영에도 깜짝 놀라니 운전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건 어찌보면 당연했다. 전방 시야와 신호들을 살피는데 집중해야함에도 내 정신은 항상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그 흔한 라디오 하나 듣지 않고 정적 속에서 두 손에 핸들 꽉 틀어쥐고 붙어 앞만 바라봤음에도 말이다.
약을 먹고나선 시야가 좁아지고 관찰 속도가 줄었다. 생각도 더는 꼬리물지 않았다. 그러자 주의를 뺏기는 빈도도 줄어들었고, 주의를 뺏기더라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이전에 비해 쉬워졌다. 단점이라면 더는 스치듯 지나가면서도 정보를 캐치해내지 못한다는 것이지만, 그 정보의 활용도는 대체로 오지랖인데다 자주 정보 과부하로 인해 생각만 하다 탈진했기에 가끔 아쉽긴해도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현 상태에 대한 내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드디어 나도 흐린 눈을 할 수 있게 되었어!'다. 이후로 나는 남의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아주거나, 새로 생긴 건물을 빨리 발견하는 것과는 멀어졌지만, 남편에게 쓸데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엔 두리번거리는대로 모든 것에 관심이 쏠렸다면, 지금은 내가 보고자하는 것에 관심을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보고자하는 것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의 생활에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로는 생활의 일관성이다. 그동안은 꾸준히 같은 것을 반복하고 싶은 의지가 충만해도 이내 새로운 생각과 관심사가 튀어올랐고 그러다보면 생각들이 뒤엉켜 끝까지 지속하는게 힘들었는데, 약을 먹고 난 이후로는 생각의 양도 줄었지만 그 정보들을 구분하여 우선순위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의 양이 줄어서 우선순위 설정을 할 수 있게 된 것인지 뇌의 기능이 올라가서 우선순위를 '느끼게'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선순위가 있는 삶이란 것은 내 생활을 상당히 풍요롭고 만족스럽게 해주었다.
이제는 당장 하고싶은 것에 밀려 해야하는 것을 미루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조급한 마음에 동동거리며 해야할 일들을 놓치는 것이 줄었다.
이제는 하나를 하다 다른 일로 옮겨가 일들이 잔뜩 쌓이는 것이 나아졌다.
이제는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반복해서 검수하는 일이 줄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중간에 버려야할 일과 끝까지 해내야하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안되는 건 과감히 포기했고, 마무리 해내는 일은 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제야 일들의 해결방법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완료인지, 어느 정도의 완벽성을 기해야할지,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인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제대로된 루틴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보통'과 비교하면 부족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평생 '보통'이 어떨지 알 수 없기에, 현재 내가 비교하는 건 단순히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일 뿐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다이어리나 알람, 리마인더, 남편의 잔소리 등 다양한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전엔 그러한 도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흘러가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명확히 내 등을 떠밀어주고 있음을 느낀다.
아직도 이것 저것 일을 늘리는 것이나, 하나를 하다 다른 하나에 관심사가 옮겨가는 일이 잦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달리 일을 정리하고 버리고 순서를 정할 수 있고, 일을 작게 쪼개어 관심이 있는 동안 하나씩 마무리해나가는 식으로 나의 ADHD에 맞게 방향을 찾아 나가고 있다.
현재는 이 글쓰기도, 블로그도, 여러가지 배우는 것들도 내가 할 수 있는 경계와 우선순위에 맞춰 꾸준히 해나가는 중이고, 너무 내달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있다.
건강관리도 신경써서 가끔은 무너지는 날도 있지만 수면습관도 (사실 나는 올빼미족이었다. 현재는 늦어도 12시에 자는 생활을 하고 있다.) 기상도 운동도 꾸준한 루틴으로 해나가고 있다.
수량적으로 본다면 나는 약을 먹고 난 이후, 조금 느리지만 글을 몇개월에 한개씩은 꾸준히 써나가고 있고, 운동도 꾸준히하고 밥도 잘 챙겨먹어서 건강하게 50kg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으며, 내가 하고싶은 일을 위한 자격증도, 과정이수도 열심히 해나가는 중이다. 아이 또한 큰 기복없이 일정한 루틴으로 생활습관을 잡아가도록 잘 키우고 있다. 전쟁통같던 집도 하나씩 비워내어 점점 정리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