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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류 신학 입문
by 홍신해만 Jun 09. 2016

여성신학은 빨간약이었다

불편함과 마주한다는 것

전공이 뭐냐는 질문에 여성신학이라고 답하면, 다들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그리곤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인다. 


여성신학? 그게 뭔데? 
남자가 왜 여성신학을 해? 


여기엔 소위 비주류 학문에 대한 생소함과 여성신학을 공부하는 남자에 대한 의아함이 섞여있다. 여하튼 난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되곤 했다.




여성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퀴어 신학을 공부하면서부터였다. 퀴어 신학을 연구하겠다고 지원해 입학했지만, 여성신학을 졸업 논문으로 쓰고 석사과정을 마쳤다.


 페미니스트 신학, 우머니스트 신학, 퀴어 신학은 저마다 강조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인간의 성을 신학적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퀴어 신학은 이성애 중심적인 기존의 여성신학을 비판한 반면, 여성신학으로부터 신학적 방법론들을 빌리기도 했다. 또한 여성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퀴어 신학자이기도 한 레즈비언 신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관계 맺고 있다. 


나는 백인들을 부끄럽게 한 흑인신학, 지식인들을 부끄럽게 한 민중신학처럼, 불편함을 주는 신학이 좋은 신학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여성신학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다. 


여성신학은 내게 "거듭나기"를 요구했다. 그동안 아무렇지도 던지고 웃어온 농담들, 크리스천들과 대화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언어 전반을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여성신학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에서 불편함 없이 살아온 내게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해 준 빨간약과 같은 존재였다.




여성신학이란 빨간약을 먹은 후로는 모든 것이 불편해 보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되는 주기도문부터,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흔한 결혼 주례사와 "여성은 남성을 돕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설교 등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수용하던 말들이 껄끄러워졌다. 그러면서 교회라고 하는 세계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짜인 매트릭스였는지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아마 여성신학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아저씨들의 매트릭스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 혐오 발언을 농담이라며 주고받고 있을 테고, 성차별적 설교와 기독교 관용구들을 아무런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있을 거다. 여성신학은 내가 가해자로 살고 있다는 걸 알려주었고, 죄를 덜 지으며 살아갈 기회 주었다.


난 더 많은 남자 신학생들이 여성신학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아저씨들의 매트릭스가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온전히 개인적인 가상이라면 좋겠으나, 교회라고 하는 이 매트릭스는 가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이고, 누군가를 끊임없이 착취하고 상처 입힌다. 


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참 좋아한다. 내 맘대로 해석하면 이는 우릴 억압하는 매트릭스로 부터의 자유다. 혐오와 차별은 돌고 돌아 언젠가는 자신에게로 향한다. 여성신학은 그동안 굳게 믿어온 종교적 신념에 의문을 던지고 일상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우릴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빨간약을 들지 않는 한 우린 영원히 이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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