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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신해만 Jun 12. 2016

그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아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이상했다.

아무리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내를 무료 파출부 정도로만 여기는 남편, 

불쑥불쑥 집에 들이닥쳐 냉장고 상태를 점검하는 검사관 시어머니, 


난 이들이 아내와 며느리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남편은 날 사랑하고, 우리 어머니는 좋은 분"이란 얘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벨 훅스의 <사랑의 관한 모든 것>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용기였다. 벨 훅스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정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내가 자란 가정은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모욕적이거나 굴욕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을 마구 내뱉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애정과 배려, 보살핌도 충분히 주는 분위기였다. 그런 탓에 나는 우리 집이 '기능장애 가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어릴 때 세심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랐다. 부모님은 내가 똑똑한 소녀라는 것을 스스로 믿게 만들었고 격려해주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내가 똑똑하다고 너무 자만한다며 계속 그러다가는 미쳐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가족들 누구도 병문안을 가지 않을 거라며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곤 했다. 이처럼 따뜻한 보살핌과 잔인한 몰인정이 공존하는 이상한 분위기는 나의 영적인 성장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에 관한 펙의 정의를 내 어린 시절의 경험에 적용해보면, 솔직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다.
나는 내가 따뜻한 보살핌이 있는 가정에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그러나 사랑을 받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거듭 강조하건대, 보살핌은 사랑의 한 요소일 뿐이다. 단지 보살핌을 주는 것만으로는 상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부모로부터,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해도 "하지만 내 부모님은, 내 남편은 나를 사랑한다"고 방어하는 모습들을 종종 목격한다. 벨 훅스는 학대와 무시 또한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인식이 폭력을 정당화하고 심지어 그것을 사랑으로 여기게 한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것이 사랑이 아니었음을 고백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진실한 자아를 되찾고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인간관계에서 사랑이 부족했다는 점을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사랑이 없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서 그 관계들에서 내가 아무런 관심과 보살핌, 애정과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은 내가 자란 가정에서처럼 나는 여러 연인 관계를 통해 아낌없이 보살핌을 받았으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감정적인 기능장애, 즉 사랑의 결핍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갔을 수 있다.




난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이 인류를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 대신 죽게 했다는 말이 항상 불편했고 무서웠다. 도대체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죽게 한단 말인가? 정말 그것은 사랑인가? 


전도사님들은 아들마저 죽게 한 아버지의 고통과 그 위대한 사랑을 생각해보라고 했지만, 난 그런 아버지 하나님이 무서웠고,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님이 사실은 자신의 아들을 학대했고,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날 괴롭게 했다.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의 고통은 미화될 수 없으며,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한 폭력적인 아버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는 우머니스트 신학자 델로어스 윌리엄스의 용기는 내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우머니스트 신학자들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난 벨 훅스의 고백처럼 사랑의 결핍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 재물로 바치기 위해 아들을 끌고 갔던 아브라함의 행위는 "믿음의 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엽기였다. 천사들을 겁탈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에게, 손님 대신 자신의 딸을 내어주겠다는 아버지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고통스럽게 죽도록 한 아버지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벨 훅스는 '학대와 무시가 있는 곳에서는 결코 사랑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난 일상 속에서,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며 내가 사랑이라 느낀 것들을 한 번씩 돌아본다. 그것은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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