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겨울이 조금 더 따뜻하길 바라며
갑자기 찾아온 한파는 일상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올해 초겨울은 비교적 따뜻했지만, 최근 며칠 사이 기온이 뚝 떨어지며 찬바람이 매섭게 불기 시작했다. 이런 날씨 변화는 특히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신체 활동이 제한된 독거 어르신들에게 더 크게 와 닿는다. 외풍이 들이치는 낡은 집은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한겨울이었다.
며칠 전, 동네에서 알음알음 모여 지내는 주민 몇 명이 함께 봉사 활동을 하기로 했다. 특별한 단체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똑부러지는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도와드릴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마음이 모여 시작된 일이었다. 나 역시 평소 부업으로 문풍지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참여했다(관련 기사 : 문풍지 부업으로 보내는 계절, 삶의 바람도 막아주길).
뜻을 알리니 사장님께서도 흔쾌히 문풍지를 내어 주셨다. 일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부업도 하며 버티는 내 일상은 고단하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움직이고 살 수 있는 몸'이라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우리 동네의 많은 어르신들은 그렇지 못하다. 거동이 불편해 겨울 준비를 혼자 하기 어렵거나, 난방비 걱정만으로도 마음이 추워지는 분들이 많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홀로 사시는 할머니의 집이었다. 현관문은 오래되어 덜컥거렸고, 창문은 틀이 틀어져 있어 외풍이 심하게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집 안에서도 내복에 옷을 두 세 겹 더 껴입고 계셨다. 난방을 해도 크게 효과가 없는 구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겨울을 덜 춥게 할 수 있다면
▲같이 봉사하러 가셨던 행동파 김씨아저씨의 부지런한 손놀림. / 창문을 깨끗이 닦은 후 부착하였다. ⓒ 해이
우리는 우선 낡은 문틀부터 살폈다. 문풍지를 붙여 외풍이 덜 들어오도록 정리하고, 창문에는 에어캡을 덮어 한 겹이라도 방한 효과를 높였다. 현관문과 창문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막을 순 없었지만, 직접 손을 대고 나니 체감 온도가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옆에서 지켜보시던 할머니는 우리의 등을 연신 손바닥으로 쓰다듬으셨다. 함께 참여한 이웃 한 분은 직접 뜨개질한 털모자를 건넸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고맙다"라고 반복하며, 안그래도 굽은 허리를 더 구부리며 연신 감사 인사를 하셨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그곳은 비교적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고, 살림살이도 깔끔한 편이었다. 하지만 따뜻함 만큼은 깔끔하게 챙겨지지 않았다. 창문이 오래된 단창이라 겨울에는 특히 춥다고 하셨다. 검버섯이 가득한 손등으로 악수를 건네셨다.
이번에도 내가 평소 부업으로 사용하던 문풍지를 꺼내 창문마다 꼼꼼히 붙였다. 문이 흔들리는 부분에는 얇은 틈새용 소재를 덧대고, 작은 홈도 하나씩 메웠다. 한창 작업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제법 지났을 즈음, 할아버지가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누룽지를 뜨겁게 끓여 인원에 맞게 그릇에 담아 내오셨다.
"늦게까지 고생하는데, 이거 조금이라도 먹고 가."
퇴근 후부터 진행한 작업이라 시간이 많이 늦어져 얼른 인사를 드리고 나가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끝까지 누룽지 그릇을 내미셨다. 그 진심을 거절할 수 없어 숟가락을 받아 들었고, 누룽지 특유의 고소함과 따스함이 목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 맛은 단지 음식의 맛이 아니라, 혼자 사는 겨울을 견디는 마음에서 건네진 따뜻함 같았다.
이번 봉사 활동은 규모가 크지 않았고, 하루에 방문한 집도 두 곳밖에 되지 않았다. '봉사활동'이라 부르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어르신들에게는 결코 작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붙이고 간 문풍지, 에어캡 한 장이 어느 누구의 겨울을 덜 춥게 만들 수 있다면 그 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번에 함께한 이웃들은 저마다 사는 방식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다. 하지만 '추운 겨울을 혼자 버티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힘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마음만은 동일했다.
겨울이 깊어갈수록 날씨는 앞으로 더 추워질 것이다. 뜨거운 난방 기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립감과 경제적 부담 속에서 많은 독거 어르신들이 또 한 해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봉사 활동은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크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움직일 마음과, 그분들을 떠올리는 마음이면 충분한 것 같다.
위 글은 12월 4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