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다시 잡은 스케치북

마흔둘에 다시 돌아온 그림 이야기... 3개월 만에 굳은살이 생겼다

by 해온

나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 열여덟 살의 봄에 미술을 시작했다. 문예창작과 순수미술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내게 친구 하나가 물었다. "같이 미술 해볼래?" 그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image.png ▲나의 미술 도구 / 드로잉북과 두 개의 펜, 두 개의 알콜 마카. 19년만에 다시 시작한 그림 그리기 실력은 여지없이 엉망임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이 시간이 행복하다.


당시 내가 하던 미술은 흔히 말하는 입시미술이었다. 이젤 위에 도화지를 올려두고 석고상을 연필로 그려 넣는 작업이었다. 아그립파, 비너스, 줄리앙부터 시작해 아리아스, 시저, 카라칼라, 호머까지. 이름도 낯선 석고상들을 하루 종일 바라보며 형태와 인체의 구조를 익혔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2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방학이 되면 미술학원에서 하루를 보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학원에 도착하여 아침을 해결한 후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점심과 저녁도 그곳에서 해결했다. 종일 연필을 쥐고 있다 보면 손끝은 흑연 가루로 새까매졌다. 연필심이 닳는 속도만큼 시간도 함께 지나갔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석고상을 그리면 결국 자기 자신을 닮게 그린다고. 신기하게도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깡마른 여고생이었는데, 내 도화지 위의 석고상 역시 어딘가 마른 모습이었다. 반대로 통통했던 친구의 그림 속 석고상은 묘하게 통통했다. 우습기도 했고 재미있기도 했다.


지겹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선생님은 우리가 지루해할 때쯤이면 가끔 수채화 수업을 해주었다. 연필 대신 붓과 물감이 등장하는 날이면 강의실의 분위기도 조금 달라졌다. 덕분에 백일장에서 상을 받거나 사생대회에서 수채화를 그려 수상하기도 했다.


그 시절 나에게는 작은 로망이 하나 있었다. 화구통이었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고 다녀보고 싶은 그 둥근 통 말이다. 사실 그 안에 특별한 도구가 들어 있는 건 아니었다. 잘 깎은 4B 연필 몇 자루와 지우개 몇 개, 칼 하나, 수채화 붓과 물감이 전부였다.


굳이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시골의 작은 미술학원이었기에 화구통을 학원에 두고 가도 누가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들고 다녔다. 어쩌면 그것은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일종의 자부심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갔다. 산업디자인과였다. 그때부터 그림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무와 바위 혹은 석고상으로 채워지던 도화지 위에는 자동차와 휴대전화 아이디어 스케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4B 연필은 마카로 바뀌었고, 물감은 파스텔과 색연필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사회로 나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되면서 손으로 그림을 그릴 일은 거의 사라진 것이다.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움직이며 작업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손으로 느끼던 스케치북의 요철, 겹겹이 쌓아 올려 만들어내던 색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을 몇 번이고 찢어 다시 그리던 열정과 스트레스. 그런 것들은 컴퓨터 속 포토샵에는 없었다.


포토샵에는 대신 '실행 취소' 버튼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ctrl + z'를 눌러 되돌리면 된다. 선 하나가 틀어져도 바로 지울 수 있다. 편리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그래도 바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 기억들을 그리워할 여유는 없었다. 그렇게 미술은 서서히 내 삶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렀다. 무려 19년이었다. 이제 나는 연나이로 마흔둘이 되었다. 2025년, 출판사와 책 계약을 하게 되면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내 글 속에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반스케치 풍이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부담감과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어반스케치라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막막했다. 19년이라는 시간 동안 굳어버린 손과 감각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기보다 검색만 했다. 잊어버린 미술 도구의 이름, 종이의 종류, 펜의 굵기, 수채화 용지의 두께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나는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반스케치의 기본이라는 펜과 300그램짜리 수채화 용지를 주문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지출이 내게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 당장 이번 달 지갑 사정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처음으로 내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올 책이었다. 출판사에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부족한 돈은 부업을 더 해서 채우면 된다고 생각했다(물론 원고 작업과 그림 작업을 하느라 부업은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그림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 그린 그림은 엉망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엉망진창이다. 아직도 나는 초보다. 20여 년 전의 경험은 그저 기억일 뿐, 손에 그대로 남아 있지는 않았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은 나에게 어반스케치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도구를 쓴다거나 컨트롤이 어려운 도구를 쓰기보다는 어릴적 사용했던 도구들을 다시 사용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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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와 Muchcute 파인라이너 그리고 피버카스텔 수채색연필, 엔미아크릴마카, 코픽마카를 쓰고 있다. 중고 물품 거래 앱을 들락거리며 좋은 컨디션을 가졌지만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녀석들로 마련해두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이 녀석들은 내 손가락에 작은 선물을 하나 남겼다. 굳은살이었다. 예전에도 굳은살은 있었다. 석고상을 그리던 시절, 연필을 쥔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항상 작은 단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컴퓨터 작업을 하면서 그 굳은살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대신 마우스를 잡는 손목만 점점 더 굳어갔다.


그런데 요즘 내 손에는 다시 작은 굳은살이 생겼다. 펜을 오래 쥐고 있으면 손가락이 묵직해지고, 종이 위를 긁어가는 잉크의 마찰이 손끝으로 전달된다. 컴퓨터 화면 위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감각이다.


image.png ▲내 책에 들어갈 삽화로 그렸던 그림들이었지만, 채색된 그림은 책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결국 그 그림들은 책 대신 내 서랍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image.png ▲수정할 부분이 많이 보이지만 그림을 그린 후의 뿌듯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색연필과 펜 사용)


말했듯 포토샵에서는 "ctrl + z" 버튼 하나로 바로 전의 작업이 사라진다. 하지만 종이 위의 선은 그렇지 않다. 한번 그어진 선은 그대로 남는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조금 비뚤어져도, 그 선은 다음 선과 함께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 선을 조금 더 천천히 긋는다. 예전처럼 잘 그리겠다는 욕심보다는, 그 선 하나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림을 시작하며 나는 새로운 미술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감각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의 질감, 펜촉이 긁히는 소리, 잉크가 마르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했다.


어쩌면 그림은 손으로 기억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지금은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잘 그리겠다는 마음은 사람을 조급하게 만들지만, 계속 그리겠다는 마음은 사람을 오래 앉아 있게 만든다.


나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종이 위에 나의 시간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위 기사는 2026년 3월 10일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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