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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세 Oct 28. 2015

해세 하루 - 서른이 오는데 엄마가 사준 군밤을 먹는다

교양있는 생존기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어쩌다 보니 미저리같은 여자가 나오는 공포 스릴러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3월부터 지금까지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고 있다. 내가 오랜시간 심혈을 기울인 문장들이 다음 날 누군가의 한마디에 후즐근한 문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니 몹시 불쾌하고 기운이 빠지고 심지어는 죽고 싶은 기분 마저 든다. 


작가라는 직업은 매일 정신력을 테스트 당하는 일이다. 걸레조각이 된 시나리오를 들고 또 어떻게든 기우고 이어붙여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도 이것이 내일 하루 아침에 쓰레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질문들과 끊임없이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어느새 글쓰기의 즐거움은 퇴색되고 자기 스스로를 희망고문하는 내가 있다. 이번 버전은 틀림없이 괜찮고 인정을 받을 거야, 그리고 운이 좋으면 피디가 알아봐 줄거고, 그리고 더 운이 트이면 투자자가 알아봐 주겠지. 나는 자본주의를 피해 내 순수한 의지를 따라 영화로 피신했건만 영화판은 자본주의의 예술버전이었던 것이다. 나는 역시나 을의 위치였고 내 위로 갑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어디가 끝인지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정신상태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 문제를 파고 들다 보면 답이 없는 내 존재의 문제까지 들어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없는 우울함 속으로 말려들어 내 자존감까지 썩어버리고 만다. 이런 때에는 마침 물들어가는 낙엽을 따라 가자. 그리고 오랜만에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자. 


엄마와 여동생을 따라 포천 산정호수로 향했다. 어제 비가 온 탓에 바람이 유난히 찼지만 글 쓰느라 계절의 변화까지 놓치고 싶지는 않다. 진정한 예술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작품에 매달리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난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나와 가족들이 변해가는 모습,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을 느끼는 것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가가 되고 싶지만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내 개인의 행복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직 예술가와 일반인 사이에서 어물쩡 거리는 것 같다. 예술 쪽으로 치우치기엔 나는 내 일반적인 삶을 사랑하고, 완전한 일반인이 되기엔 내가 너무 서글픈 사람인 것이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나 한참 생각하다가 요즘은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자고 하는 편이다. 가만히 내버려둬도 나는 결국에 되려는 것이 되어 있을 테니까. 


나들이 객이 많아서인지 예상보다 가는 시간이 길었고 그것이 나를 짜증스럽게 했다. 글을 쓰게 된 이후로, 내 모든 시간을 글 쓰는 시간의 기회비용으로 생각하게 된 탓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글 쓰는 것 못지 않게 소중한데, 자꾸 그걸 까먹는다. 조급하고 초조해서 주변 사람한테 짜증을 내게 된다. 작가들이 괴팍하고 이기적인 것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그래도 난 아직 양호한 편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오래 걸려서 도착했기 때문인지 산정호수가 더욱 아름다워보였다. 가을 특유의 을씨년스러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멋이 있었다. 호수 전에 작은 놀이동산을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스산한 낙엽이 쌓인 채 네온 불빛만 번쩍이는 놀이기구들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한물 간 놀이동산은 불쌍해 보였지만, 나는 그대로 좋았다. 지금은 너의 계절이 아닐 뿐이다. 그 뿐이다.


산정호수는 인공 저수지로 아늑한 산에 둘러 싸여 있었다. 물기 가득한 나무들이 울긋불긋 물이 들어 경치가 아름다웠다. 우리는 공원에서 산 군밤을 까먹으며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찬 바람만 아니었다면 더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날이 저물어가고 바람은 차가웠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목구멍이 부어서 감기 기운이 있었던 탓에 조금 조심스러웠다. 일 하는 사람은 아프기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잠깐 아프기를 바랐다. 가끔 끔찍한 병에 걸린 사람들의 허락된 나태함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저 상상일 뿐, 절대 아프고 싶지 않아 하며 그 생각을 떨쳐버렸다.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서글프다. 마음 편히 쉬기 위해 차라리 아팠으면 좋겠다니. 같이 간 엄마가 들었다면 얼마나 몹쓸 생각인가.


사실 나는 나들이 가는 내내 가볍게 우울했다. 나는 나이 서른이 가깝도록 엄마 차를 얻어타고 엄마가 사주는 군밤을 먹고 어디어디에 여행다녀왔다는 엄마 친구들의 이야기를 일부러 건성으로 들어야 한다. 거기서 엄마를 더 가여이 여기면 내 정신력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였다. 엄마의 나이가 저물어가는데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딸이어서 미안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미안하다. 그리고 일부러 그런 생각들을 가볍게 흘리는 나.


지금 다니는 회사를 그만 둬야 할 것 같아. 돌아오는 차 안에서 툭 던졌다. 그 후엔 어쩔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알바 하면서 글 써야지 뭐, 또 툭 던졌다.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다. 

지금은 월 30을 받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누가 강요한 건 아니지만 잘 하고 싶어서 하루 종일, 몇 달을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잘 한다고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했다고 물질적인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많이 지친 것 같다. 누가들으면 고작 그 정도 해놓고 엄살이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라지. 고통과 슬픔은 주관적이다. 오늘만큼은 내가 힘들다고 하는 것을 내가 인정해 주겠다. 매일 쓰레기 글을 쓰느라 고생했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척 하느라 고생했다. 오늘만큼은 그렇게 인정해주겠다.


예쁜 산정호수를 보고 돌아오는데 나도 엄마도 마음이 무거웠다. 계절은 착실히 시간에 따라 옷을 바꿔입는데 나는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엄마도 다 큰 자식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인 것이다. 엄마는 다만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으나, 옆에서 보기에 지치고 가여운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으나 가난과 우울은 숨길래야 숨겨지지가 않는다. 


문득 가을이 가는 것처럼 내 청춘도 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청춘이 가는 것이 슬픈 것은 단지 내 인생에서 가장 젊고 아름다운 순간이 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 더이상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몸이 허물어지면서 대책없이 무모했고 도전적이었던 정신력도 한 풀 꺾이게 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몸의 제약에 나의 꿈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엄마가 사준 군밤.



군밤은 생각보다 퍼석퍼석했다. 궁핍한 시나리오 작가일수록 좋은 것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자연식이 좋다. 얼마나 알찬 음식인가. 산책하면서 하나씩 까먹기 좋다. 나도 저렇게 불 위에서 살살 굴리면서 익혀주면 언젠가는 저렇게 탁 껍찔을 깨고 나올 수 있을까. 엄마한테 얻어먹는 군밤이면서 시덥잖은 생각을 다 한다. 


그러면서 또 알록달록 물든 단풍을 보고 저 단풍이 다 금화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다. 엄마한테 예쁜 꼬까옷도 사주고, 엄마가 가고 싶다는 코타키나발루에도 보내주고, 어쩌면 우리 가족을 데리고 한우집에서 실컷 고기를 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난이 슬픈 것은 내가 춥고 배고파서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뭔가를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내가 주고 싶은 만큼 줄 수 없어서.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돈으로 뱉어낼 수 있다면, 엄마 우리는 부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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