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있는 생존기
시월의 마지막 밤은 할로윈으로 변했다. 작년엔 할로윈인 줄도 모르고 이태원에서 회의를 하다가 엄청난 좀비들과 죄수들, 뱀파이어들을 마주치고 깜짝 놀란 기억이 난다. 그 엄청난 숫자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유령들의 무시무시한 비장함에 더 놀랐다. 일년 꼬박 이 날만을 기다린 것 같은 그 비장함은, 몇 십년 동안 인간으로 위장한 채 살다가 드디어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 뱀파이어의 그것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은 이 도시 곳곳에 숨어 살던 모든 악령들이 해방하는 날인 것이다.
그날 밤 수 많은 악령들은 애처로운 자유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 할로윈이 없었다면 이 어두운 영혼들을 어떻게 했을꼬.
할로윈을 며칠 앞두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스무살 초반에 연락이 끊겼다가 이십대 후반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인데, 외모는 서로를 알아 볼 정도로 변했지만 내용물들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나름대로 머리가 크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자리잡은 탓이다. 동갑이고 사는 지역도 비슷했지만 우리는 주로 쓰는 단어부터 달랐다. 주제는 겉돌면서 군대로 넘어갔고 나는 들어주는 일이 싫지 않았다.
군대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엄청난 규칙들이 있다. 친구의 말대로라면 계급에 따라 건빵을 손으로 부술 수 있는 사람과 방탄모자로 부술 수 있는 사람이 갈리고, 활동복의 지퍼를 어디까지 올릴 수 있는지도 갈린다. 심지어 쫄병은 라면을 먹을 때도 포크수저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도구 사용이 금지되는 것을 보면 군대는 인간이 어떻게 퇴화하는가 보여주는 장소라고 친구는 말했다.
군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는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규칙들이었지만, 친구는 인생을 다 살아본 노인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장병이 되고 보니까 말도 안 되게 느껴졌던 규칙들에 모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거기서 선임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규칙들이 없었다면 계급이 혼란스러워졌을 것이며, 계급을 레벨 업하는 보람마저 없었을 것이라고. 내 친구는 병장이 되어 건빵을 방탄모자로 부수면서 골고루 알맞게 부서진 '건프레이크'를 먹을 때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군인들은 2년여의 군생활을 그렇게 견디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소소한 규칙과 문화를 만들고 그걸 지켜나가는 재미로 시간을 견딘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도 군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년 정도의 수명을 재미있게 견디기 위해, 인간은 이런저런 규칙과 문화들을 만들어낸다.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해서 어떻게 삶을 견뎌낼지는 각자가 정하는 것이고.
나는 예전부터 그런 문화들을 좋아했다. 동지에는 귀신을 쫓기 위해 팥죽을 먹고, 쥐불놀이를 하고, 세배를 하는 일들. 그것도 어쩌면 지루한 인생을 견디기 위한 선임들의 '인생 가이드'같은 것이 아닐까. 요즘에는 그런 가이드들이 간소화되거나 사라지는 추세라 안타깝다. 요즘 읽는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라는 책에서 어떤 할머니는 '인간은 형식이 사라지면 끝이야.'라고 말했다. 나도 형식을 좋아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형식이 없으면 인간은 끝장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형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삶을 견디려 만들어낸 문화나 다름 없다. 그것을 지키고 유지해가면서 인간은 계절을, 한 해를, 한 평생을 견디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까라면 까'식의 폭력적인 문화도 존재하지만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형식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 속옷을 선물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발도장을 찍어 본다. 인생을 레벨 업하면 그에 맞는 형식들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할로윈 역시 우리나라의 새로운 형식으로서 자리잡은 것 같다. 하지만 어딘가 필사적인 느낌이 있다. 내가 할로윈 축제에서 느낌 공포감은 사람들의 분장이 실제처럼 기괴해서가 아니다. 나는 분장을 하고 거리에 나가는 사람들의 흥분과 즐거움 속에서 진짜 괴물을 느꼈기 때문에 무서웠다. 원래 할로윈이 죽은 자들을 쫓기 위한 축제였다면 지금 우리 나라에 상륙한 할로윈은 자기 자신 안에 도사린 괴물을 해방 시키는 축제다. 괴물은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있었다는 것. 사람들은 평소에 괴물을 숨기고 살다가 할로윈 단 하루, 허락된 밤에 그 괴물을 자유롭게 풀어보낸다. 할로윈은 우리 자신이 괴물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하는 날인 것이다.
문화가 생겨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좀비가 되고 마녀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어느 기사에서 괴담을 수집하던 사람이 최근 수집을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현대에는 괴담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변해서 귀신이니 유령이니 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낯설어했다. 그리고 괴담이 태어나서 전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이야기가 점차 부풀려지고 맛깔나게 변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둘러 앉아서 괴담 따위를 듣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괴담이 없는 도시. 그래서 사람들은 스스로가 괴물이 된 것은 아닐까?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는 이 도시가 사람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이 도시가 나는 조금 무섭다. 모든 문화를 집어 삼키고 괴물만 낳고 있는 도시.
시월의 마지막 밤은 추웠다. 괴물들은 스스로 위로해야 했다. 일년 후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감추고 살자. 서로를 서글프게 바라보면서, 내년에 못 보게 되면 어딘가 마음 속 괴물을 감추고 괴롭게 살아가는 당신을 기억하겠다.
(아 그리고 나는 여기서, 할로윈을 '핼러윈'으로 써야한다는 규칙은 무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