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근, <서점의 말들>
책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도서관과 서점은 비슷하지만 도서관과 서점은 엄연히 다르다.
첫 번째, 내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도서관의 책은 가질 수 없는 반면 서점의 책은 내가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다. 두 번째, 도서관에서는 대개 십진분류법에 따라 책이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책이나 비슷한 주제를 가진 책을 찾는 건 쉽지만 서점에서는 고개를 돌리다가, 또는 허리를 숙이다가, 반대로 허리를 펴다가, 그것도 아니면 무심하게 책장을 스쳐 지나다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도서관은 오래된 책을 볼 수 있지만 서점은 지금 막 인쇄소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책들을 볼 수 있다.
백화점이 신상품의 천국이듯 서점은 신상 도서의 천국이다. 메인 매대에 올려져 있는 책들은 출간된 지 일주 일밖에 되지 않은 것들도 있고,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보름을 넘지 않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간 그런 신간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차피 때가 되면 도서관에 있을 테니 느긋하게 그때를 기다리다 대출을 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새로운 책이 도서관에 입고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넘게 걸리게 마련이라 나같이 성질 급한 사람은 기다리다 포기하거나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신간 도서의 생명이 2주를 넘지 못한다는 업계의 말을 떠올리면 도서관에 들어가서 내 손에 쥐어질 쯤엔 이미 그 책은 신상의 딱지를 뗄 가능성이 크다.
주머니가 넉넉지 못한 탓에 마음에 드는 신상을 죄다 살 능력은 안되지만 그래도 신상을 좋아하고 또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느끼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새 책을 구경하기 위해 서점에 자주 가는 편이다.
사람들이 서점을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를 꼽자면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그 첫 번째 단계가 준비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보다 완전한 준비를 위해, 정확히 말하면 실패 없는 준비를 하기 위해 책을 산다. 선행 준비, 시험 준비, 취직 준비, 제2 인생 준비 등등,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책을 구입한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문제집을 사고,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상식 책을 사고, 은퇴 이후 제2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일자리 관련 책을 사서 읽는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들은 서점에, 그리고 책에 미래에 대한 실마리나 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로 서점에는, 책에는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있을까? 책을 보면 정말로 괜찮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나는 서점이야말로 우리의 현재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서점엔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담론, 이슈, 관심사를 대변하는 수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적어도 서점에 진열된 책 제목만 보면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새로운 담론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서점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들러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현재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공간이라는 설명이 좀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 유행하고 있는 트렌드나 사회적 이슈를 빨리, 쉽게, 짧게 알고 싶다면 유튜브나 다양한 sns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이들에 비하면 솔직히 책은 느리고, 길고, 어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제작 과정도 유튜브나 다른 SNS 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까닭에(게다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이것들보다 늘 몇 발자국씩 느리다 보니 대중의 손에서 멀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유튜브든 SNS든 이러한 미디어들이 담고 있는 콘텐츠는 부분적, 파편적, 흥미 위주인 데 반해 책은 그 자체로 완성물이다. 또한 다른 미디어보다 질적 양적인 측면에서 총체적, 종합적 지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잘 만들어진 책 한권만 잘 골라 읽어도 유튜브나 다른 SNS를 떠돌아다니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SNS는 이런 재미로 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잘 고른 책 한 권은 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를 찾는 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정확한 방법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출판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동네 책방이 많이 생겨나는 것에 반가움을 느낀다. 지구 상에서 갑자기 공룡이 사라지듯이 책방도 그렇게 사라지는 줄만 알았는데 동네 책방이 유래 없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하지만, 반대로 동네 책방이 트렌드이자 유행이라는 점이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하다. 유행은 언젠가는 지나가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출판 장벽이 진입이 낮아졌다는 것만큼은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는 점은 적어도 책을 읽는 사람은 없어도 책이 사라지지는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 말이다. (책을 가장 많이 사고 또 읽는 사람들의 직업은 작가라는 통계 조사를 생각하면 책을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책을 읽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늘어나지 않을까?)
글쓰기를 교육받은 사람, 등단한 사람, 유명한 사람만이 책을 만들고 출판하는 시대는 분명히 지났다. 맞춤법, 띄어쓰기도 제대로 하지 못해도 책을 낼 수 있고, 등단이라는 제도를 통하지 않고서도 누구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다. (물론 유명한 사람의 책은 적어도 판매 부수를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출판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이란 건 숨길 수가 없다)
북유럽의 어느 나라(핀란드인 걸로 기억한다)는 국민의 약 10%가 글을 쓰고 책을 낸다고 한다. 국민의 10%가 작가라니.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이건 단지 문학을 좋아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만큼 자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무엇보다 자기 철학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또 존경한다. 자기 철학이 있다는 건 신념이 있다는 말이고, 신념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것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철학은 그냥 얻어지거나 생기지 않는다. 나와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애정을 거두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되 타인과 무의미한 경쟁을 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사회는 생각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죽어라 앞으로만 나아가는 사회이다. 사유하고, 곱씹고, 타인과 공유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을 소홀히 하는 사회는 분열하게 마련이다. 책은 많을수록 좋다. 책이 많다는 건 읽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수많은 책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능력도 필요하다. 이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역시나 많이 읽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찾고 싶다면 많이 먹어 봐야 알듯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먹어봐야 하듯이 이 책이 나에게 좋은 의미를 주는지, 도움이 되는지 알려면 우선은 읽어야 한다. 특정한 책을 사기 위해서 서점에 가지 말고 그냥 책을 구경하기 위해 서점을 가자. 그럼 뭐든 보게 되고, 그중에는 반드시 나를 끄는 책이 있게 마련이니. 일주일에 한 번도 많다.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서점에 가는 습관을 들이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유유#유유당#유유당1기#서점의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