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용설명서
음악은 나의 행복과 건강에 큰 역할을 한다. 적막한 공간이 답답해서 언제나 음악이 공기처럼 흐를 수 있도록 무심코 틀어둔다.
혼자 있거나, 여럿이 어울리거나,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을 때, 뭐라도 하고싶을 때, 설거지할 때, 운전할 때,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계절이 바뀔 때, 해가 넘어갈 때, 즐거울 때, 슬플 때, 화날 때, 지루할 때 그 어느 때라도 음악은 늘 도움이 된다.
흘러간 음악은 나에게 스위치 같은 역할을 한다.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어떤 음악을 들으면 눈 깜빡할 사이 추억이 소환되며 과거 어느 시절의 빛바랜 모든 것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그 노래를 들었던 장소, 만난 사람, 있었던 일, 느꼈던 기분까지도. 그러니 원하는 장면을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음악을 이름표나 책갈피처럼 붙여둬야겠다. 오랫동안 기억되는 순간에는 늘 음악이 있었으니까.
음악은 누군가와의 대화처럼 마음이 여유로울 때 온전히 즐길 수 있다. 마음이 닫혀있을 때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가득 차 어떤 음악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에 넉넉한 공간이 생기면 멜로디와 가사가 들리고 곧잘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열린 마음으로는 요즘 음악도 어렵지 않게 찾아들어올 수 있다. (그래도 라디오에서 불현듯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가 더욱 끌리는건 사실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최신가요에 관심을 갖고, 같이 듣고, 가사를 외우고, 춤을 추다보면 전에 없던 동질감을 느낀다.
10대에는 팝이 좋았다. 국민학교 다니던 나는 화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과 음악을 들으며 사춘기 언니가 된 기분이었다. 당시 내 플레이리스트의 지배자는 동네책방 사장님과 리어카 아저씨. 지나고보니 사장님의 선구안 덕분에 지금은 아이콘이 된 가수들의 시작을 알린 앨범을 들어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곡을 카세트 테이프에 하나하나 담고, 커버를 손수 꾸미던 시절이다.
20대에는 가요가 좋았다. 플레이리스트의 지배자는 싸이월드. 좋아하는 사람이 듣는 음악이라면 좋았고, 여전히 씨디를 모으지만 온라인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30대에는 새로운 음악이 들리지 않았다
40대가 된 지금은 뭐든 틀어놓고 낚이는대로 듣는다. 가수이름이나 노래제목을 외워봤자 금방 희미해지는데다가 그 옛날처럼 레코드 가게나 사모을 앨범도 없고, 음악앱이 취향대로 추천해주는 음악이 내가 직접 고른 음악보다 낫다. OST와 재즈가 좋다. ‘우리들의 블루스’ 음악을 들으면 머릿속에 드라마가 자동재생되며 언제나 기분이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