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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Dec 30. 2019

아프면 말씀하세요. 참지 말고.

에세이 #21 참는 것은 (치료를) 안 하니만 못합니다.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뒷목, 어깨가 불편했습니다. 머리를 좌우, 상하로 돌리는데 통증이 심했고 뒷목은 특히 더 아팠습니다. 한의사는 이것저것을 묻고 몸을 만지고는 몇 마디 했습니다. 스트레스가 많다고, 무리하게 몸을 사용했다고, 휴식이 필요하다고.


한의원에 오면 언제나 듣는 이야기라 내가 좀 무리를 했구나, 또 몸이 신호를 보내는구나.. 싶었습니다. 한의사의 말을 차분히 듣고 진료실로 향했습니다.


뜨거운 찜질을 먼저 하고 물리치료를 받았습니다. 물리치료가 끝나고 다시 한의사가 전기치료와 침 치료를 함께 한다고 이야기하고는 침을 놓고 한 마디하고 나갔습니다.


'아프면 말씀하세요. 참지 말고. 참는 것은 (치료를) 안 하니만 못합니다.'


대체로 한의원에서 치료 중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의례상 하는 말일 수 있지만 왠지 그 날은 다르게 들렸습니다. 그 순간 어린 시절부터 아주아주 많이 들었던 말이 막 떠올랐습니다.


조금만 더 참아라.
지금 더 견디면 앞으로는 더 낫지 않겠냐.
동생이 뭘 알겠냐. 니가 참아라
니가 참아야 집안에 큰소리가 안 난다.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아픈 치료마저 참고 괜찮다고 말하는 게 이전에는 당연했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건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잠잠히 침을 맞으며 곱씹으니 참는 게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말이 나를 가둬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참아, 참으면 지나가고 참으면 해결돼.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x소리는 그냥 짖는 소리라고 무시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해보면 아프고 힘들어서 누군가를 찾아갔는데 상대방이 위로한답시고 한다는 말이 누구나 다 인생은 고통스러운 거야..라는 말이라면 미쳤다고 그걸 듣고 앉아있냐고. 그리고 참는다고 해결된 것이 뭐가 있었는지. 참아서 해결한 게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견디며 버틴 끝에 해결한 것이지. 그저 참으면 호구밖에 더 되겠냐고.


아프다고 말도 못 하게 하고는 참으라고.


아픔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견딜 때 견디더라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 오래 견디는 것인데, 아프다고 말도 못 하게 만들어놓고 견디라는 일방적인 말의 폭력을 겪고 자란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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