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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Jan 15. 2020

노회찬을 기억하다.

시사 #05 노회찬은 말이 없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통과되어도.

누구나 악기 하나는 다룰 수 있는 사회를 꿈꾸던 정치인 노회찬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납니다. 저는 그를 열렬히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회의원 노회찬의 주장에 자주 동의했고 정치인으로 보인 행보는 여느 정치인과 다른 점이 분명했습니다.


노회찬은 달변가였고 무엇보다 어록으로 남을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TV토론에서 보수당 후보가 당시 민주당과 정의당이 서로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똑같은 당이냐고 비꼬며 비판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과 일본도 친하지 않지만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연합하지 않겠나?  


방청객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상대당 후보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고 대꾸를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 노회찬은 합리적이었고 사리에 맞았으며 무엇보다 따뜻했습니다. 2018년 국감장에서 사법 농단으로 인해 사법개혁의 거센 바람이 불던 시기에 소년범의 아버지 천종호 판사에게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또한, 국회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통해 전화 한 통으로 서민들의 연봉 이상을 벌고 있는 검찰의 전관예우 관행을 비판하며 어록을 남깁니다.


과연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합니까? 만 인만 평등할 뿐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 전화기를  
다른 한 손에는 돈다발을 들고 있을 뿐입니다.


한 편으로 마음이 무거운 것은 정치인 노회찬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에 수 십 명을 부당하게 인사청탁을 하고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정치인을 매일 보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입니다. 이 땅의 역사가 처참히 망가진 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었던 민초가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힘과 권력을 가진 집권층의 무능과 부정부패 때문입니다. 그런 부당한 기득권 세력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수많은 이들은 반역자로 낙인찍혀 역사 교과서 구석에 허름한 흑백사진 한 장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 노회찬이란 사람을 잃은 작금은 또 다른 상실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가 있었던 정치 바닥은 이미 똥물 튀기지 않고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고 정치만큼 잔인한 것이 없기에 죽음으로 책임질 수밖에 없었던 그의 완벽한 자기 검열과 도덕성이 이해되고도 남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시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서 똥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냄새나고 역겹단 소리를 들어도 살아내시고 버티시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앵커 브리핑 '노회찬에게 작별을 고합니다.'를 통해 대학에서 강의하며 정치인 노회찬을 학생에게 이렇게 소개했다고 밝혔습니다.


노회찬은 앞과 뒤가 같은 사람이고 처음과 끝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출처: 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 브리핑>


자신에게 너무나도 엄격했던 정치인 노회찬이 애처로운 것은 그와 같은 정치인이 생소해서 찾을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정치판이기 때문입니다. 유머 있는 풍자를 하면서도 상대를 쉽게 무시하지 않았던 그가 더욱 특별해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가 오늘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진행자 : 나중에 여유가 생기고 일을 열심히 하셔 가지고 뭔가 큰 성과를 이루시고 은퇴를 하셨을 때 그때는 어떻게 지내고 싶으세요?


노회찬 : 예, 그 저는 정치가 아닌 영역에서 자그마한 일 그러니깐 봉사하는 일, 다른 분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예를 들면, 무의탁 노인들을 목욕시켜주는 일과 같은 것들이 많거든요.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하고 있기를 소망합니다.



# 더하는 말

진보당에서 정치인 생활을 했던 그는 꽤 추운 시절이 많았습니다. 굴곡진 정치 인생에서 그가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던 이유를 아래의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참 많이 와 닿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많은 난관이 있어도 쉽게 극복할 수 있어요. 겨울에 추운 데서 얼음 뚫고 낚시하는 사람 보세요. 싫어하는 사람한테 돈 줄 테니까 하라고 하면 아무도 안 해요. 좋아하니까 하는 거지. 추운 데서 벌벌 떨고 있어도 좋아서 하는 사람에게는 그게 낙이죠. 좋아하는 일을 하면 악조건도 악조건이 아니게 됩니다.  - 경향신문 (2012. 11. 16.)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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