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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Nov 26. 2019

조국, 한국사회의 민(民)낯을 드러내다.

시사 #01

'조국 교수는 한국사회의 민(民)낯을 드러냈습니다.'


한국사회는 정치적 각성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2017년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대통령 탄핵을 이뤄냈습니다. 이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시민들은 대통령 한 명이 바뀐다고 나라가 바뀌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정치 수준은 높아졌습니다. 정치인의 말 한마디가 가지는 의미, 즉 레토릭을 읽어내고 언론사 기조를 파악하고 기사를 검토하면서 의도를 알아냈습니다. 조국 교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춰낸 측면도 있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희망적인 시민들의 민(民)낯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 "조국 법무부 장관 오른손에 케이크 들고 집으로 퇴근"(2019.09.26.) 중앙일보>


과거에 '내가 신문에서 봤는데..'와 같은 말은 강력한 근거로 활용했지만 이제 되묻습니다. 어느 언론사이고 기자는 누구인지. 기사가 의도하는 바를 파악하고 자기 관점을 가지고 기레기의 찌라시인지 사실에 근거해 보도한 취재 기사인지 판단합니다. 언론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진실 혹은 사실을 보도한다는 언론은 교과서에 나오는 글 한 줄에 불과합니다. 시민사회의 수준은 높아지고 있는데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고 자처했던 집단은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1. 권력기관 개혁의 대표적 이슈인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와 같은 이슈는 시민의 일상과 거리가 먼 내용입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과 경찰의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고, 공수처는 최대 5,000명 이내의 고위공직자를 대상으로 독립적으로 수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19년 여름,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의 픽션을 논픽션으로 목격합니다. 수사 경과를 언론에 흘리는 검찰과 독점 보도에 사활을 걸고 있는 언론이 만들어낸 코미디를 3~4개월째 지속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독립성은 검찰이 원하는 수사를 원하는 만큼 하는 것이고 원하지 않는 수사는 일체 시작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윤석열 체재 검찰을 두려워하던 보수 정당은 응원하고 중도 진보 정당은 검찰을 비판합니다. 검찰의 독립성의 근간은 법과 원칙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행위이고 법 기술자들이 어떻게 권력을 수용하고 활용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시민들은 이것을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목격하고 비판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2. 언론사 수준에 대한 객관적 평가입니다. 일각에서는 언론사의 하향평준화가 진행되었고 이제 그것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거짓입니다. 원래부터 언론은 딱 이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햐향평준화가 아니라 지금까지 뻥튀기되어 있었습니다. 보도자료가 없으면 한 줄도 쓰지 못하는 기자들이 넘쳐납니다. 쓰지 말라고 하면 쓰지 않고, 쓰라면 쓰고. 제목 장사에 올인했습니다. 진보적 위치에 있던 언론도 동일합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언론사 보도는 100만 건에 육박합니다. 대선 D-30 정도에 차기 유력 대권주자에 대한 보도량보다 많습니다. 비정상적인 과열 보도입니다. 여과 없이 언론의 수준이 드러났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은 신문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신문을 읽으면 글쓰기가 늘고 관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언론은 대체로 권력에 고개를 숙였고 돈 앞에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러합니다.


3. 가짜 목사와 보수 정당의 로맨스가 가져온 재앙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종교는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폭발적 부흥기를 지나며 정치권력과 깊은 관계를 가집니다. 군사 독재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유용한 도구가 기독교였고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불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수 정당이 개신교와 연결되어 설교 중에 정치적 이슈에 대한 내용을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버무려져 왜곡된 정치적 견해를 가지게 합니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보다 사회적 강자의 고개 숙임에 달콤함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상, 한국교회 90%는 이런 달콤함도 느낄 수도 없고 100명 미만이 출석하는 교회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한국교회 1~2%에 해당하는 대형교회는 사회적 강자, 그들만의 리그, 세습 등으로 점철되고 있습니다.


조국 교수가 앞으로 얼마나 큰 정치적 영광을 누릴 것인가. 혹은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인가에 대해서 예측하기 힘듭니다. 혁신을 통한 변화를 시작하니 기존의 이해당사자들(stakeholder)의 저항이 거세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기존의 체계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부 혁신의 진짜 시작은 사람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고 사람을 바꾸는 명분은 시민들이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국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고도화되고 있고 역동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안되면 우리가 한다라는 의식은 이제 기본적인 정치적 정서입니다. 청문회에서 흔히 나오는 '국민 눈높이'라는 말은 조국 교수를 통해 드러난 한국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극복하는 진정한 민(民)의 낯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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