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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일리 Aug 19. 2020

너의 냄새까지 사랑할 순 없잖아

주의 : 글에서 냄새날 수 있음

외국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두 말할 것 없이 한국인의 체취 없는 유전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만나기까지는...


으레 한국인들의 세계 여행기에서 늘 화두가 되곤 하는 것이 서양인들의 체취이다.

단순 땀 쉰내가 아니라 왜 사람한테서 이런 냄새가 날까 싶은, 코를 찌르다 못해 코를 때리고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하는 그 폭력적인 냄새.

지인 중 한 명은 영화배우 같은 프랑스 남자와 불같은 연애를 했지만 이 냄새를 감당하지 못해 헤어졌다.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하거나 말리지 못했다.

누구든 여름날 유럽의 지하철을 타봤다면 분명 그녀를 이해했을 것이다.

내가 남편을 사랑하긴 하지만 가끔 입으로 숨 쉬게 만드는 그 냄새는 우리 결혼생활에서 나의 단골 구박 거리이다.


이 체취는 씻고 안 씻고의 문제가 아니다. (안 씻으면 더 심해지긴 한다)

나는 남편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틈만 나면 샤워실에 밀어 넣어 샤워시키고, 샤워를 틀린 방법으로 하나 싶어 샤워 방법도 개편해보고, 오만 향기로운 샤워 제품도 사주고, 큰 욕조에서도 뜨거운 물에 좀 불려도(?) 보는 등 삶기만 안 했을 뿐 빨래처럼 열심히 빨아봤지만 이 냄새를 없애기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과한 샤워와 샤워 제품으로 피부에 아토피가 생긴 억울한 남편이 내가 너무 냄새에 민감한 거라며 이 냄새를 없애려면 자기의 유전자를 바꿔야 된다고 했다.

그랬다. 유독 한국인들이 체취에 민감한 것은 한국인들이 체취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ABCC11이라고 불리는 유전자는, 젖은 귀지를 만들고, 겨드랑이의 땀샘에서 나오는 땀을 냄새가 나는 프로틴으로 바꿔 체취가 나는 박테리아를 생성한다고 한다.

이 유전자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많고, 아시아로 갈수록 적은데 특히 한국인의 비율이 아주 낮다.

바스락거리는 귀지를 갖고 있다면 이 유전자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땀만 잘 씻어내고 로션만 발라줘도 향기를 뿜어내며 다닐 수 있다. 한국 생활용품 시장에서 데오드란트가 상위권이 아닌 이유이다.


이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양인들도 이 체취를 가리기 위한 많은 대안들을 갖고 있다. 왜 유럽이 향수로 유명하겠는가? 특히 데오드란트는 필수 생활용품인데, 샴푸 브랜드는 몰라도 각자 사용하는 데오드란트 브랜드는 꼭 있으며 데오드란트 안 쓰는 사람은 사람 취급하지 않을 정도이다.

이 체취의 유무는 인종을 가릴지언정 체취의 폭력성은 만국 공통인 듯하다.

샤워를 해도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박테리아들이 활동을 시작하는지 체취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나서 바로 겨드랑이 부분에 데오드란트로 바퀴벌레 사살하듯 충분히 뿌려줘야 그나마 주변 사람들이 안전하게 숨을 쉴 수 있다.

그 데오드란트도 한국에서 사용하는 그런 데오드란트는 안될 일이고, 서양 남성 전용 제품이 나오는데 거의 겨드랑이를 조져놓듯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기에 이 데오드란트 향으로 내 남편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한 번은 한국에 우리 부부를 보러 방문하신 시어머님과 택시를 탄 적이 있었다.

한국의 살인적인 폭염으로 에어컨 빵빵한 택시가 천국 같았는데, 우리가 타자마자 택시 기사님이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여는 것이 아닌가? 창문을 닫아달라고 부탁했더니 택시기사님은 이 외국인 여자한테서 나는 노린내 때문에 운전을 할 수가 없다며 택시에 냄새가 배일까 봐 걱정이니 청소비를 받아야겠다며 화를 내셨다.

코를 휘어잡는 제스처로 어머님이 소란의 원인을 눈치채셨는지 혼자 다른 곳에 볼일 볼 곳이 있다며 먼저 내리셨고 그 뒤로 만날 놈이 없어서 저런 냄새나는 사람들을 만나냐는 기사님의 한마디는 내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로 남편이 그런 소리 듣게 하는 것이 싫어 더욱 남편의 냄새에 예민해졌다.

나도 내 남편과 가족들에게서 늘 꽃향기가 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생긴걸 다르게 생겨먹어서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게다가 사실 이 체취라는 것이 꼬집어 말하기 참 조심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초반에는 나도 늘 남편에게 어떻게 하면 상처 받지 않도록 상냥하게 냄새나는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요즘에는 그냥 데오드란트를 상비해 다니며 냄새 파괴자의 악역을 자처하고 있다.

원래 자기 스스로의 입냄새라던가 정수리 냄새 등을 잘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처럼 그들도 그 냄새에 휩싸여 돌아다니다 보면 누군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자각하기 어려운 듯하다. (어떻게 그 냄새를 왜???)


주변에 강렬한 체취를 뿜어내는 이로 인해 고통받는 코들이 있다면, 이 친구 어지간히도 안 씻는구나 하고 눈을 흘기기보다는 우리 축복받은 한국인 유전자를 남겨주신 선조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에게 너그럽고 친절하게 넌지시 알려주거나 데오드란트를 선물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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