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주는 소외감
연애 품앗이를 아는가?
방금 내가 만들어낸 말이지만 연애 품앗이는 우리네 인간 사교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연애 품앗이란, 연애 대상 스크리닝부터 시작해서, 사귀기까지 썸 과정을 코치해주고, 싸웠을 때에는 누가 잘못했나 판사 역할도 하고, 헤어지고 나서 그의 앞날을 저주해주는 것까지 모든 연애 과정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어제의 내가 연애 때문에 울었더라도 오늘 짝사랑하는 친구 앞에서는 연애 박사에 빙의하여 완벽한 친구의 연애를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나의 연애 품앗이는 현재의 내 남편에서 끝이 났다.
내 친구들과 남편 사이 언어의 장벽이 컸기 때문이다.
영어가 익숙지 않은 친구들은 현 남편과의 만남을 꺼려했기 때문에 내 남편의 평가는 오롯이 내가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내가 그의 로맨틱한 부분을 설명해주면 그는 백마 탄 왕자님이 되었고, 내가 그와 싸우고 화가 나서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어느새 데이트 폭력범이 되어있었다.
이는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는데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나의 말을 막연히 믿어야 할 뿐, 으레 열리는 '어디 내 딸을 데려갈 자격이 있는 놈인지 보자'의 심판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100% 설명해줄 수도 없어 답답한 나의 연애는 점차 이 품앗이에서 열외가 되었고,
어느 날 그의 공짜 맥주를 맛본 친구와 가족들은 그를 가장 중대사인 결혼까지 프리패스로 통과시켜주었다.
한국인은 한국인이랑 결혼해야 한다던 할머니가 유일한 걱정이었는데, 막상 인사시켜드리러 가니
'아유 쟈는 수염 좀 깎아야 쓰것어~ 뭔 털이 저렇게 많이 났댜~~' 하고 털 걱정만 하실 뿐, 돌아가실 때까지 딱히 외국인인지 못 알아보셔서 무사통과되었다.
그래서 슬프게도 내가 결혼을 고민하고 결심할 당시 그 누구도 나를 뜯어말려주지 않아(?) 나는 지금까지도 과연 이것이 잘한 결정인지 긴가민가한 것이다...
남편이 한국어를 빨리 배우면 좋겠지만 원체 언어적 머리가 없는 친구라 진도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내 친지 가족들과의 '진짜'교류는 잠정적으로 보류된 상태이다.
나도 가끔은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내 남편을 불판 위에 올려놓고 친구들의 애정 담긴 충고와 위로를 받고 싶은데 내 친구와 가족들이 내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온전히 알 기회가 없다는 것은 참 속상한 일이다.
나의 부모님도 한 번은 사위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나 그를 알 길이 없기에, 딸이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기분이 드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 혼자 한 결혼처럼 나만 외롭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친구와 가족들에게 나의 결혼이 +1이 아닌 -1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이 참 편치 않았다.
다른 나라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될 때, 언어의 다름은 단지 나와 파트너 사이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했었다.
넘기 어렵지만 한번 극복하고 나면 사랑을 더 돈독히 해주는? 그런 아교풀 같은 역할의.
하지만 막상 결혼까지 하고 보니 이 장애물은 우리 둘 사이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친구들과의 사이에 펼쳐진 장대한 산이었고, 이로 인해 생기는 고립과 소외는 어찌할 수 없이 감내해야 할 부작용이었다.
결혼이란 남편과 아내가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구멍 투성이의 수레바퀴와 같다.
문제가 많아 보이는 현대 사회의 결혼 제도에서 국제결혼이 어느 한 핑크빛 탈출구처럼 자주 언급되지만, 사실은 국제결혼 역시 여느 부부와 똑같다. 언어의 다름은 수많은 구멍들 중 하나일 뿐, 부족한 부분들을 노력으로 메꿔야지만 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다.
남편 역시 아내의 친지 가족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뒤늦은 나이에 아시아 국가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었겠지만 우리의 수레바퀴를 위해 그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더 늦기 전에 우리 가족과 친구들의 품앗이에 다시 들어가는 그 날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