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들었던 경주 "황리단길"에 처음 다녀왔다.
유명세에 걸맞게 거리에는 온통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우리도 거리를 둘러보기 위해 주차를 해야 했는데 마침 공영 주차장도, 유료 주차장도 아닌 곳에 차들이 빽빽하게 세워져 있었다. 얼핏 봤을 때 빈자리가 보여서 우리도 냉큼 주차를 했다. 그러고 나서 앞을 보니 거대한 고분이 우뚝 서있었다. 그것은 '쌍상총'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역사 시간에 줄기차게 배웠던 '호우총'도 있었고, 안쪽으로는 '금관총'도 있었다. 그랬다. 이 일대는 고분군과 첨성대가 위치한 역사유적지구였던 것이다.
그런데 반대쪽 황리단길의 북적거림과는 다르게 고분들에는 외롭고 쓸쓸함이 감돌았다. 늦은 오후까지도 햇빛이 쭈욱 내리쬐고 있었으나 (역시 풍수지리에 따라서 양지바른 곳에 묫자리를 잘 썼다) 고분에는 까마귀 떼가 새까맣게 모여있을 뿐. 마치 옛시조에서 나라 잃은 슬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했듯이 적막감이 감돌았다고 해야 할까?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시절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듸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길재 (1353년 ~ 1419년)
맥수지탄: 고국의 멸망을 한탄함.
딱 이 정서가 내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비록 지금은 신라도, 이 시조가 지어진 고려 시대도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 아마도 길 건너 핫플레이스들과 비교가 되어 더욱 그랬겠지?
황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예시로 대표되는 곳이기도 하다. 비교적 낙후되었던 곳에 자본이 들어와 거대한 상권이 되면서 임대료가 올랐고, 기존 임차인 내지 주민들은 가격 상승을 감당하지 못해서 그곳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지역 경기에 활기를 불어넣긴 했지만 그 이면에는 연고지를 하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말았다. 외부인이 들어와 말뚝을 박으면서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 이것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식사를 하러 황리단길 안에 들어가 보았다. 아기자기 예쁜 집들과 기와지붕이 멋있는 한옥 주택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정통 한옥이 아닌, 현대식과 일제 양식이 혼재한 그런 신축 건축물들이었다. 겉만 그럴싸하게 기와만 올려진 모습에서 또 한 번 씁쓸함이 느껴졌다. 자본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신라 고유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이질감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힙하고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왜 불편해하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게 말이다. F라서 그런가? 아님 프로불편러라서? 과거가 현재가 공존하는 곳에서 인생무상을 느끼다 보니 자본주의의 폐해까지 논하게 돼버렸다. 사실 입소문 난 황리단길 맛집을 찾아갔다가 형편없는 음식에 마음이 식어버려서 그랬다는 편이 훨씬 더 솔직하리라.
경주만이 가지는 특색이 부디 희석되지 않기를 바란다. 선조들이 남긴 고유의 문화유산들이 현대에서 더욱 빛나길! 경주를 사랑하는 이의 염원이다.